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새벽 염불

황금횃대 2004. 7. 5. 21:59

1

달팽이의 껍질


여름 날,
배추밭에 가면 이슬을 먹을라고 달팽이들이 여린 배추잎 사이를
마~악 돌아다닌다. 살며시 떼어내 땅바닥에 놓아 줄라면, 내 손가락의
힘이 우찌 그리 센지 고만 달팽이껍질이 파삭 부서지고 만다
이일을 우얄꼬...... 여리게 잡아도 부서지는 것들.

오전에 대전을 가서, 삼년 전 그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여전히
나는 아랫도리를 내민다. 정기검진이라나 잠깐 껍질을 벗었는데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뼈속 추위가 따라 붙는다.
그 달팽이는 집을 잃고 어찌 살까. 맨살, 휑한 아랫도리로 그 여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마주치는 이빨을 겨우 추스려 매점 앞에 선다


2

커피 하나 주세요 따뜻한 걸로


멀건 깡통 커피를 정오에 마셨는데, 깡통은 따뜻해도 커피는 죽은 놈
이맛살처럼 미지근하다. 오랜만에 마신 커피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 미지근함에도 데일 무엇이 있단 말인가. 설 전에 빌려 온 오아시스
비디오 테이프가 다 돌아 가도록 나는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다
첫 닭은 벌써 초성을 내지르고, 장닭보다 더 걸판지게 스방의 코고는
소리가 천정을 울린다. 다들 아무 일 없이 잘 자는 밤


3

일전에 타다 놓은 감기약 몇 알을 삼킨다. 약기운이 퍼져 손가락이
떨린다. 음, 그렇군. 이제는 서너 알의 약 기운도 힘에 부치구나
손가락은 자꾸 트레몰로다 다그르르르...탁구공이 탁구대 위에서
보이지 않는 치맛자락을 휘돌리며 돌 때의 그 몸짓.
웅크리고 본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몸짓을 나도 그새 배웠는가
자판 위에서 헛손질이 심하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나도 그녀처럼
체공시간의 길이를 늘려 본다. 높이 올리지 않아도 공중은 있는 것

잠 자긴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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