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일기 7/4

황금횃대 2004. 7. 4. 21:20

어머님 생신이 끝났다.

달랑 당일 식구들 끌고와서 아침, 점심을 먹고는 서둘러 제집구석 일을 해야한다고

돌아간다

그렇게 가는 차 뒷트렁크에 어머님은 이것저것 실어주기 바쁘다

모르는척한다. 하는 짓들을 봐서는 실어 놓은 것도 빼앗고 싶지만, 그렇게 해봤자 나만 치졸한 사람이 되고 만다. 어제 음식하면서부터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들을 나는 심정에 소금를 뿌리며 거품을 삭히고 있다.  그렇게 다들 하라지. 저희들이 하는 대로 나는 갚아주리라. 이빨을 옹실물고 다짐을 하건만, 이 못난 여편네는 그걸 또 쉽게 잊고 만다. 갈수록 나는 속이 좁아지는 듯하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이리 작은 것에도 서운한지. 아주 속이 뒤집어진다.

 

편지지를 꺼낸다

아는 언니에게 그림을 그려 엽서를 보냈더니 그걸 또 카페회원에게 가볍게 자랑을 해서 어떤 사람이 자기도 그거 받고 싶다고 주소를 보냈다.

사진으로 그 사람의 몰골은 이미 봤지만, 그저 게시판 글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사는지 짐작을 할 뿐이다.

개망초꽃을 그리고 이미 시작한 7월 달력을 그려넣는다.

칸칸히 서른하룻날이 빼곡히 들어선다. 제헌절이라고도 써 넣고, 초복, 중복이라고도 써 넣는다. 달력이 어디 없으리요마는 이렇게 한달 그려서 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뒷면에다 간략하게 편지를 쓴다.

 

이즈음이면 척박한 이 땅 우에 계란노른자같은 개망초가 피어 조선 사람 누구라도 그꽃에 대해 입을 달삭거려 한 마디하고 싶은데,  비를 맞고 서 있던, 자전거를 타고 달빛 아래 그 꽃을 보든 처연한 심정이 되긴 매 한가지라.

굵지도 않고 비척마른 그 꽃대궁을 보면 사진으로 본 그대의 모습처럼 여위어서 사뭇 마음 한 자락 열고보면 당신 생각도 나는지라.

이런 삐리리한 멘트에도 시덥잖은 반응을 하면 당신은 프로라.

그냥..이 여편네 쌩까고 있네 하고 넘기면 그것으로 그뿐.

 

태풍 민들레가 느릅나무를 휩쓸고 지난 다음, 닭장 아래로는 느릅나무 이파리가 처걱처거 달라 붙어 내 양미간을 찌푸리게 하는데,

여우같은 서방은 그걸 어찌나 빨리 눈치를 챘는지 지청구 한마디 하네.

 

"글쓴다는 여편네가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도 저리 양미간을 찌푸리면 그게 뭐하는거야  행여 어디가서 그런 소리 말어?"

 

사는게 그려. 그러니 내 사는게 마냥 구라 아닌가.

 

보고 싶네(안녕이라고 말하는것보다 훨 뽀다구 나지?)

 

 

-끝_

 

 

하얀 봉투 끝을 얌전히 접어 풀을 붙이고 수신인의 주소를 쓰고 내 주소를 쓴다

어디로도 달아 날 수 없는 주소 한 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마산리 387번지 전상순

 

우표를 붙이고 빗속을 걸어...가랑잎처럼 걸어 우체통에 넣고 온다.

 

그리 삭히고 사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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