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내 노래 들어 볼래요

황금횃대 2004. 7. 4. 22:00

지난 6/21부터 6/23까지 분당 새마을 중앙 연수원에서 새마을지도자 기본교육 연수가 있었다.

촌구석에 사는 여편네가 '부녀회장'이란 동네 부녀회 완장을 찬지는 몇개월 되지 않았는데, 면 단위 총무로 뽑히고 보니 이런 교육연수도 다녀오게 되었다.

 

이박삼일 일정이 어찌나 빡빡하게 돌아가던지. 나중에는 짜증이 다 나고 허리며 어깨가 아파서 몸살이 슬슬 왔다. 강의를 듣던 중에 하도 몸이 편치 않아 밖에 소파에 앉아 웅크리고 쉬기까지 하였으니. 마흔 넘으면 하루밤 잠 설치는 일도 체력에 몹시 영향을 미치는갑다.

 

대강당에서 강의를 들을 때는 핸드폰이 전혀 되지 않았다. 핸드폰을 끄라고 누누이 이야기해도 분임조활동 시간에는 몇번이나 벨이 삐리리 울리고  도대체 그 물건 없을 때는 우리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살았냐싶게 시도때도 없이 그것들은 소리를 내었다.

 

강의가 끝나면 밤 열시가 다 되었는데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면 열두개의 침상이 놓인 군대 내무반 분위기라도 자유함을 느꼈다.

 

사람이 구속감을 느끼는 공간의 크기는 어느정도 일까..뭐 이런 계산은 집어 치우고 10시 이후에는 자유통화가 된다는게  그렇게 해방감일 수가 없다.

둘쨋날인가? 저어기 우리 동네 옆의 삐리리面 새마을회장이 전화가 왔다.

이 사람은 얼마전 나와 모종의 이야기가 오간 사이기도 하다.

자기도 여기 와서 교육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내가 현관로비며 이런저런 환경을 이야기 하니 눈 앞에 보이는 듯 선하다고 말한다.

 

10시반이 넘으니 숙소는 모두 소등을 해 버린다.

컴컴한 복도에 앉아 전화를 받는데 비는 와아아아아 내리지 분위기가 거시기했다.

그는 지금 상가집에 와 있다고. 비도 오고 들어갈 곳도 마땅 찮아서 차 안에 있다면서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디적디적 덜거득 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하는 말,

"내 노래 들어 볼래요?"

 나훈아의 노래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햐아앙역...

 

노래 들려주는 사이 해석도 한다.

옛날 노래방 처음 생겼을 때 자기 노래 녹음해 주는 곳에 가서 녹음해 온 것이라며

오래 됐는데 마음에 들어서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며 가끔 틀어 본다는.

 

옛날, 옛날 기억이 떠 오르지.

연애하던 시절,  친구 애인이 기타 치면서 유선 전화기 세워놓고 노래 불러 주던 이야기.. 누구나 이런 풍경 하나쯤 가지고 있으리라. 별.밤을 들으며 좋은 노래를 나오면 그걸 들려 주고 싶은 한 사람을 떠 올리던 일.

세월은 참...하릴 없이 흘렀구나

전화기가 뜨끈뜨끈해 진다.

 

뭐랠까...이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시간은 누가 뭐래도 제 앞만 보고 성큼성큼 걸어가  시절을 속절없이 만든다고 는 하지만  그 당시에 이뻣던 풍경들은 생각만 하면 터럭만큼의 손상도 없이 원형 그대로 내 옆구리에 다정히 앉는다.

 

비가 쏟아지는 밤, 깜깜한 계단 복도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저 멀리 몇백리 밖에서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듣는다 노래를.....종일 메마른 강의만 듣다가 이 얼마나 달콤한 시간인가.

설령 그와 내가 삐리리한 감정을 휩싸이지 않는다 하여도 이런 시간은 귀하고 귀하고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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