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여편네의 가을은 어디서 오는가

황금횃대 2004. 7. 5. 22:17



누구는 가을이 떨어지는 낙엽의 빛고운 색상에서 온다하고
누구는 허옇게 쇠어버린 귀밑머리의 서글픔에서 온다하고
또 누구는 잔고가 마이너스로 돌아선지 오래인데 그 숫자가
줄어 들지 않는 꼴을 보면 인생의 가을을 느낀다지만,
나, 이 촌아짐마는 가을이 냄편 가심팍이나 디러운 인상에서
온다.

평상시야 스방놈 의자에 앉았으면 그 다리 새 낑기 앉아가지고
이것 좀 좝솨봐여 저것 좀 마시봐요 하면서 살가운 눈웃음을
팍팍 지어가며 잠시 애첩 수준의 애교도 떨어보지만, 허이고
엊저녁 같은 기분이라면 옆에서 우박에 맞아 '억'하고 씨러지는
소리가 나도 눈도 돌리기 싫은 형국이라

울 스방이 승질이 디러운거는 내 쪽팔림을 감수하고라도
여러번 이런 게시판을 통해서 알린 바 있건만(근데 왜 읽는
사람은 그걸 사랑싸움이라 하는쥐...글 쓰는 의도를 제대로 이해
못하시는거 같어) 오늘 또 아침밥을 콩나물 밥으로 해서 맛나게
비벼 먹고 설거지거리도 처 담가 놓고 입에 게거품을 무느냐...하믄,

벼 농사 착실히 지어 열한말 들어간다는 새 푸대까정 사가지고 와서
잘 마른 나락을 동실동실하게 묵어 보기도 좋게 아랫채 들마루 햇살
얌전히 잘 드는 쪽에 날라리미 쌓아 놓았다
한 줄은 푸대 궁뎅이 쪽으로, 또 위에 한 줄은 푸대 묶은 아구리 쪽으로
줄도 맞게 쌓아 놓았는데 어제 오후답부터 비가 실실 내린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온 고스방,
"야, 쪼뱅이!(쪼뱅이는 쪼다방맹이의 준말로 사이버가 아닌 현실세계의
내 닉에 해당한다) 비 들이칠지 모르니 나락에 비닐을 좀 덮어 놓던지.."

이러면서 말꼬리를 단단하게 여미지 않길레, 나도 뭐 노는 일이 좀
바쁜 사람인가 비가 와도 곱게 올줄 알았지 저리 미친듯이 바람까지
몰고 댕기면서 몰아 칠 줄 알았나
밤에 퇴근하고 들어 온 고서방, 벽력같은 고함을 질러댄다

"이 새꺄, 사람말이 말 같잖냐? 나락 좀 덮어 노라했디만 뭐하노"

늦은 밤 빗줄기는 어데서 비아그라라도 두어알 삼켰는지 그 오줌발이
장난이 아니게 굵고 세차서 홑껍데기 옷을 입고 나갔다가 홈빡 젖어
버렸다.
비닐도 찾으니 마땅한 것도 없고 그래서 포장을 하나 펴서 들마루 앞을
다 칠려고 하는데 워낙 이 포장이 큰 것이라 혼자는 들어 만지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래도 홱 돌아간 스방놈 인상을 보니 죽을 힘을 다 해서라도 그걸
펼쳐 고리를 처마 밑에 못 박아 놓은데 끼워 넣어야할 판이다
비는 몰아치지 나락가마니는 젖었지...흐이고 그래도 나 역시 승질
있다 함시롱,
"그걸 내 혼자 우째 친단 말이고?"
하면서 포장 접은 것을 갠신히 풀어서 한 쪽 끝을 스방 손에 쥐어주고
나는 이쪽 처마 끝으로 가져왔다

이제 포장 고리를 못에 걸 차례였는데 들마루 아래는 포도 따고 미처
치우지 못한 콘티 박스랑 뭐 고무다라이, 그 위에는 아침에 알타리
무우 다듬고 무 껍데기랑 시레기 훑은거, 마늘 깐 껍데기를 담아 버릴
려고 얹어 놓은 플라스틱 다라이 까지...여튼 좀 복잡하게 많았다
그런데 승질을 북북 내면서 일하면 꼭 신상에 해로운 일이 생긴다
그렇게 화를 내며 고리를 걸로 올라갔던 고서방이 하필 발을 내리
딛이면서 나락 펴 주는 쇠를 밟아 버린 것이다

촌에서 살은 사람들은 그 모양을 짐작을 하겠으나 도시 사람들은 그
모양을 영 모르리라 어떻게 생겼노 하니...

네모모양의 철판을 세워서 거기에다 철판 중앙에 직각 방향의 손잡이를
달아서 나락을 펴서 말릴 때 그걸로 이리저리 나락의 높이를 조절하며
펴서 너는 농기구다

고서방이 발을 내 딛이면서 밟은 쪽은 세워져 있는 철판 부분을 밟았는데
약간의 각이 있는 철판을 밟았으니 그게 발딱 서면서 손잡이 자루가
날아온 빠나나처럼 뻘떡 서는 바람에 그 손잡이 끝이 면상에 정면으로
딱 뚜드리 맞은 것이다
순간,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 연장을 잡아다 아닌 밤중에 마당에다 때기나발을 치더니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데 피가 나는 모양이다
헉!
얼매나 다쳤는고 내가 들다봐야하는데 우띠 나도 승질이 있는대로
뻗친지라 고만 내 할일만 하고 말도 안했다 나도 그런거 보믄
참말로 몬땠다

그 연장을 때기나발 치는 걸로 승질이 다 풀리지 않았던지 스방놈은
고무통 위에 얹힌 무 씨레기 들은 다라이를 마당에다 또 차 버리는것이
아닌가
마당에는 허연 무 껍데기, 마늘 껍데기 그야말로 껍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비를 맞고 척척 엎어졌다
아......머리에 김 올라 올라칸다


나는 그 비를 다 맞으며 씨레기를 손으로 줏어 담았다
옷은 이미 다 적었고...추워서 덜덜 이가 딱딱 마주친다
이 비 다 맞고 감기나 팍 걸려서 한 사나흘 디집어쓰고
앓아야 속이 다 풀릴거 같았다
그러기나 말기나 쏘가지 못땐 고서방 저혼자 우산을 쓰고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들어간다 (승질 났다 이거쥐 ..)


다 치우고 방에 들어오니 날 보고

"야, 휴지 갖고 와!"
휴지 갖다 받친다
(휴지도 하나 못 찾는 위인이 승질은 왜 내냐?)
"야, 연고도 가져 와!"
(코 앞에 갖다 주고 약은 안 발라 준다)

그러고 들어와 이불 깔고 잤더니 혼자 새벽녘까지 티비 틀어
놓고 거실에서 코 골고 한 삼태기도 안되게 오구리고 잔다

차마 못하는 마음

잠 자는 스방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별로 많이 다치지는 않했구만 딴에 억수로 열받을끼라

정신없이 자는 놈 깨워서 방에 들어가 자랬더니
얼래?
나는 방문 쪽으로 머릴 두었는데 무슨 반항인가 내 발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는다. ㅎㅎㅎㅎ
아무리 싸와도 등 돌리고 자기 없기
이건 신혼 초 부터 지켜온 불문율인데 저이가 그걸 거역할 수는 없고
아예 머리를 돌려서 반대방향으로 자는 구나


ㅎㅎㅎㅎ
내가 그 밤에 서방놈이 좀 귀엽게 화를 냈다면
그런 자세로 자는 놈에게 69포지션 작업 한 번 했을낀데

저나 나나, 사는기 피곤하고 갈 수록 얼음짱 같은 힘겨루기만
해대니, 끌끌.....







여편네의 가을은 어데서 오는가
남편, 혹은 스방이라는 저 깊고 깊은 가심패기에서 오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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