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첫짝꿍

황금횃대 2006. 10. 8. 20:08

추석날 오후에 친정갔세요

고스방은 다리가 저래서 못가지요

여편네 혼자 날 이렇게 외롭게 놔두고 친정간다고 고스방이 간간 눈 흘깁니다

그러나 나란 인간은 그런 것에 측은지심만 조금 남겨놓을 뿐

친정행을 포기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시험준비기간이라 외갓집에 못 간다네요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혼자 자유부인의 나들이

싸~~~아악 빼입고 친정갑니다.

저번에 재활용 상점에서 핸드빽도 하나 샀거등요 오천원 주고

모양이 이뻐서 저걸 들고 언제쯤 외출하나..하고 목빼고 기둘렸는데.

검은색이 올 가을 유행색이라죠?

유행하고는 상관없이 상갓집용으로 장만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쩔그덕거리는 목걸이도 하나 걸고 나서니

제법 뽀대가 납니다

까만 구두 신었다가 벗어 덴지고

8센티굽 보라색구두를 신었세요

허이고...키가 훌쩍 커져서

제법 길다랗게 보입니다

그러나 통 무시다리는 어쩔수가 없네요 어흑

 

대구 도착해설랑 옷 벗어 놓고 친정동생내외와 같이

시네마M에가서 <타짜>라는 영화를 봤재요

낮에 울 친정엄마 아부지랑 같이 가서 보자고

동생이 이야기했는데

울엄마가 영화 제목을 듣고는

"그기 내용이 뭔데?"하고 물어봤재요

"노름꾼 이야긴데 재미있데요"

동생 대답에 고만 어머님은 손사래를 치면서

우린 안 보러갈란다. 느그 아부지 그거 보고 또 화투치면 우짜노

울 아버지 젊었을 때

섰다판 도리짓고 땡판 안 가보신데가 없재요

나이롱뻥은 기본이구요

영화보고 집에 와서 저녁먹고 하니 아쉬운 추석이 다갑니다.

막내 동생은 길이 밀린다고 12시 다된여개에 길을 떠났구요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토요일

저녁에 초등학교 동기모임이 있었세요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초딩동기카페 운영자를 맡고 있는터라

그라고 여자친구 향란이가 나온다하기에

참석을 했지요

 

모르는 애들 반, 아는 애들 반..이렇게 보쌈을 먹으며 소줏잔을 기울입니다

어허...술 한 잔 할 일이 자주 생기는군요

근데 막판에 두 놈이 들어서는데

아~ 이게 누구랍니까

내 초등학교 일학년 입학해서 처음 짝을 한 정원이가 왔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참 잘했세요

뾰조록한 입으로 발표도 잘하구요

진짜 졸업하고 31년만에 봅니다.

내가 니 초딩 일학년때 첫짝꿍이야..하고 이야기하니

그 애는 첨에는 잘 모르다가 나중에 이야기합니다

"자꾸 보니까 그 때 얼굴 있다야..생각 난다."

 

저녁먹고 노래방가서 노래하는데

담배 연기때문에 목이 아파서 밖에 잠깐 나왔더니

정원이 짜식이 따라 나왔어요

분위기 때문에 술 기운이 상승했는지

때 아니게 자기꿈 이야기를 합니다

"내 꿈은 광고카피라이터였는데 경제학과를 갔네, 지금은 이렇게 (손으로 계산하는 시늉을 하면서).."

녀석은 대구의 한 은행의 지점장이랍니다.

광고카피라이터...그거 나도 참 하고 싶었던 일인데

꿈이란게 원래 그렇잖아

이루지 못해서 더욱 애절한고야

어쨌거나 나는 가끔 널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다

어디 보자 니 얼굴..

노래방에서 나는 몇 번이고 몰래몰래 그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재요

뒤통수 머리카락 가장자리로 하얀 머리가 테두리처럼 돌아나왔네요

니나 내나

이제 머리 쉴 나인갑다.

 

 

실컷 잘 먹고 잘 놀고 헤어지는 길

다른 동창놈하나가 날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니는 술집 마담하면 딱이겠다"

허거걱...

나한테 그런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 놈은 지금도 그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단다

처억 보면 안 단다

널 보니까 딱 그 직업이 어울리겠단다

내가 너무 널푼수없게 놀았나 ㅎㅎㅎ

 

허기사,

그 직업을 가져 쓸쓸하고 힘든 사람 어깨 쓸어 안고

같이 술잔을 기울여 주는 것도 괘안은 일이겠지

그러나 어쩌누

나는 이미 농사꾼의 길에 들어섰는걸.

 

그라고 또 한 놈은 날보고 잠깐 밖에서 보자더니

길 가에 쪼그리고 앉아 제 사랑 이야기를 한다

어이구...

내가 자기의 답답한 심정을 잘 들어 줄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나

동기카페에 글을 잠깐씩 올렸는데

그걸 읽어보고는 확신이 섰단다

"야...아무것이야...사랑은 말야, 옛날에도 내가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건말야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구

이다, 아니다의 문제라고 알았냐 쨔샤"

ㅋㅋㅋㅋㅋ

 

술이 과해서

나도 헛소리 좀 하고 왔다.

보름에서 하루 찌운 달이 훤하다

새벽 두시에 띵똥하고 초인종 눌러도

엄마 딸이라고 모두 용서가 되는

이래서 친정이 좋다는것이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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