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사진을 받고서

황금횃대 2004. 7. 13. 22:23
전에 정선 행님과 같이 문수전을 올랐을 때다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산길에 몇 발짝 앞서가는 부부가 있어
문수전에 다다라 우리가 경치를 보며 감탄할 때
그 지긋한 부부도 같이 감탄을 하면서 산들을 둘러 보았다
아주머니가 법당에 절을 하러 갔고
아저씨는 우리 곁에서 이십년 전에 들른 이 석천계곡이 평생을 들어 눈에 밟히더라고.
우린 하냥 고개를 끄덕이며 산빛을 보고 물빛을 가늠하고 날아가는 흰새를 보았다.

절을 다 하고 아주머니가 나오자 아저씨는 사진을 찍으셨는데
각자 따로 찍으시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두분 같이 찍으세요 제가 찍어 드릴게요
그들이 찍고는 아저씨가 우리도 한 컷 찍어 주시겠다고

 


행님은 체구가 작고 나는 좀 듬직하니 크지 않는가.
아, 그런데 행님이 내 어깨에 손을 척 올리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내 왕팬임을 감안할 때 그 정도는 뭐 어떨라구
그렇게 배시시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한 장 찍구는
아주머니가 사진을 보내 주시겠다고 주소를 알려 달란다.
그래서 내가 집 주소를 적어 드리니 꼭 보내주신단다.

 

 

이틀전,
어눌한 낯선 주소의 싸인펜 글씨체로 편지가 한 통 왔다
뜯어보니 사진이 들었다.

 

안녕 하세요.
사진 기다리다 이제는 잊어 버렸죠?
그날 두분 다정한 모습 정말 보기 좋았어요
오래 오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이렇게 간단한 안부를 쓰고 사진을 편지 속에 넣어서 보내왔는데
사진 보는 일은 여벌이다. 어찌나 고맙던지

 

 

이즈음 날로날로 발전해가는 디지털 시대에
어디가도 사진 찍히는 일은 빈번한데 정작 사진의 실체는 메일이나 컴퓨터 자료실에 떠돌뿐
이렇게 인화를 해서 보내 주는 일은 참 드물다

그리고 필름이 들어가는 것은 한 통을 다 찍어야 인화를 하는데
평상시 가정집 아날로그 사진기에 필름 한 통 다 찍을라면 아이가 어리면 몰라도 다 컷다면
한 통 소비하는데 적어도 몇개월은 걸릴 것이다.
나중에 그걸 빼서 인화하여 사진을 쭈욱 보면 웬 낯선 사람들이 있는지라
아하..싶어 보내 주려고 주소를 찾으면 임시로 적어 놓은 주소는 이미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고 사진만 띵그러니 남게 되는데.

 

 

사진을 찾아 편지를 쓰고 봉투에 잃어 버리지 않고 간직해둔 주소를 옮겨적고 우표를 붙이고...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기실 마음이 쓰이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행님 얼굴보고 아이들에게도 정선행님이다라고 소개를 하고.
사진이 내 손에 오게된 사연을 이야기 해 준다.

 


나도 편지와 한지를 오려붙여 시를 쓴 엽서를 같이 넣어서 보내다

마음과 마음이 훤하게 소통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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