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가을 편지

황금횃대 2004. 7. 15. 16:47

님,


아랫지방은 온통 물에 잠겨 낙동강 칠백리 그 끄트머리가 흙탕물로 몸살이랍니다. 그래도 내가 누운 방바닥 위쪽 반듯한 창문 너머로는 소란치 않는 빗방울이 토닥토닥 떨어져 내 가심 속 심장 박동 리듬과 똑 같은 음역의 높낮이로 밤이 깊어 갑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비 오는 밤에 이렇게 볼펜을 붙잡고 마음 속에 떠 오르는 생각을 또박또박 적어 본지가요.
귓바퀴를 돌아 머리 속으로 쑤시고 들어 오는 소리는 세 종류 입니다.
가까운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마찰음과 빗소리-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그리고 어제가 입추였으니 나, 당당히 울겠노라 벌레 소리 입니다


저 벌레들은 어디서 기별을 받은 것일까요? 알게 모르게 제 몸의 온기를 식혀 가던 밤공기한테서 뽀얀 날숨 낙인이 찍힌 기별을 받은 것인가요? 아님 그런 호외로 발행하지 않아도 계절이 한꺼풀 넘어가는 기색을
겨드랑이 밑으로 느꼈던 건가요. 아마 제 생각에는 너 오늘부터 울어도 된다는 허락의 언질이 없어도, 미묘한 서늘함으로 한계단 낮은 발걸음을 옮기는 밤공기의 발자욱 소리를 들은 거지요. 이미 그들은 태초에 약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 풀벌레들은 사위가 조용한 밤에 저리 목 놓아 울어대는게지요.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저들의 울음으로 나는 늦가을 어느 한 날의 상념에 젖습니다
그 상념의 끄뜨머리에 언제나 님이 환히 웃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희미해져버렸지만, 그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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