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더워 뒤안에다 텐트를 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야영 갈 일이 없어 우리집 텐트는 녹이 슬고 있다
딸아이가 이러다 텐트 치는 방법 잊어 먹겠다며 집 뒤안에다 텐트를 쳤다
올 초봄에 보도블럭을 주워와 뒤안에 깔았더니 지악스럽게 올라오던 풀들이
보도블럭 아래로 묻히고 제법 깔끔한 꼴을 갖추었다
감꽃이 떨어져서 한 동안는 대빗자루로 감꽃 쓸어내기 바빴다.
텐트를 쳐 놓고는 그리로 살림살이를 하나씩 갖다 놓는다
베게가 제일 먼저 옮겨지고, 왕골자리가 돗자리 위에 깔리고, 선풍기가 놓여지고
저녁시간에도 아이들과 딩굴기 위해 낡은 스탠드도 옮겨놓다
오랜만에 확보된 낯선 작은 동굴에 에어컨이 있는 마루도 마다하고 나는
수시로 그 동굴을 들락거린다
색연필과 파스텔을 가져가고, 와트만紙를 가져가 그림을 그려 달력을 만들고
뒷면에다 편지를 쓰고 봉투를 챙겨와 주소를 쓴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자리 위에 배깔고 누워 편지를 쓰자면, 팔꿈치는 왕골 자욱이 박히고
보라색, 혹은 볼펜으로 쓰여지는 사연은 별 것 아니라도 구구절절이다.
편지를 쓰다 눈을 들어보면 반원으로 들락거리는 텐트 입구 망사 문짝 앞으로
대대로 물려 쓰는 장꽝이 눈에 들어오고, 무성한 이파리를 달고 살구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소릴 듣는다.
담벼락을 따라 손을 내미는 담쟁이 덩쿨의 작은 움직임을 잡아 내고
왼종일 지악스레 울어대는 매미 소릴 귓전에 가득 담는다
텐트 안 쪽에는 작은 망사 주머니가 있어 거기다 정선에서 온 편지를 꽂아 둔다
정선 총각은 며칠 전 도보 여행을 떠난 다고 편지를 보내 왔고, 오늘은 동네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는 동안 편지를 쓴다며 소식을 보내왔다
빠르고 간편한 메일을 접어 두고 매번 이렇게 우표를 붙인 편지를 보내고
나도 살뜰이 챙겨 답장을 써서 보낸다.
부러 편지를 부치러 나가는 골목길에는 호박넝쿨이 무섭게 뻗어 나가고
세번 피었다 지면 나락을 먹는다는 무궁화도 길 가에 호젓 홀로 한 나무가 커서
연보랏빛 國花를 피웠다.
비록 텐트 안이지만 편지가 꽂힌 풍경이 좋아서 나도 몇몇 사람들에게 그 행복한
기분을 나누고자 부지런히 편지를 쓴다.
더위에, 혹은 살아내면서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솟아 타는 눈길을 어디다 둘 줄을
몰라 쩔쩔맬 때, 내가 보낸 어설픈 그림으로 한달을 포장한 달력을 보면서
속상한 마음이 풀렷으면 하는 바람을 얹어본다.
그렇게 이 더운 여름 나를 세상 밖으로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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