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꼭 내 자랑같지만, 한 때 나는 정모번개후기 전문 작가였다 믿거나 말거나.
허기사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예고하는 초성이 횃대 위에 올라 앉은 달구새끼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열심히 정모와 소위 벙개라는 깜짝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모임에 다녀온 후에는 남보다 먼저 후기 올리기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얻은 왕관은 정모벙개후기 전문작가! (왕관 이름도 길다)
예전처럼 카페 모임이 활성화 되어 국토의 중간 쯤 대전 계룡산 부근의 식당들이 주말이면 온통 동호회나 카페 모임으로 발 딛일 틈이 없을 때 나도 댓개의 카페에 가입을 해서 뭉떵그린 모임 후기를 쓰거나 혹은 각개 회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글들을 남발하였다.
이렇게 개나소나 마구잽이 후기를 쓰다봉깨로 더러 주옥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이 언제냐 하면 두이노 비가에 가입하고서이다. 맹 먹고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 걸로 모임의 순서를 치르는 카페 모임에서 말로만 문학, 종교 이야기 하면 때리쥑일뿔끼다 하면서 모임을 갖는 문학카페 정모에 참석하다보니 자운영님 말씀따나 서당개 삼년이면 개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생겼듯이 나도 제법 정모 후기를 문학적 방식에 접근해서 쓰기도 했다.
몇 년전 만리포에서 가진 첫 번째 정모후기를 다른 카페에 올렸더니 대구사는 우유배달 아저씨가 그 글을 읽고 절망감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절망감이란 달리 절망감이 아니고, 맨날 시며 책이며 골싸매고 문학 소양을 쌓아도 자기는 그런 글을 못쓰는데 이녀르꺼 포도농사 지이가며 맨날 스방 욕하는 재미로 사는 여편네가 대뜸 만리포 한 번 다녀오더니 자기는 꿈에서라도 쓸 수 없는 실력으로 모임 후기ㅡ를 쓴다는데 절망을 했던 것이다. 이 또한 믿거나 말거나.
<우리집 머슴은 밥도 안 먹고 일을 잘해> 하며 주인이 칭찬 한 마디하자 그 말을 뭣같이 섬기며 밥 안 먹고 일만 죽을똥살똥 하다가 죽었다는 조선 중기의 어떤 머슴처럼, 정모 후기 참 잘 쓴다는 얘기 한 번 듣고는 이 여편네 정모후기에 목숨을 걸었다. 모임에 갔다오면 밥도 안 묵고 모임의 열기를 전하느라 붉은 눙깔에 핏발을 곤두세웠던 것이다. 그러나...그것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없다.
문학이고 뭐고 그런 건 내 생각에서 멀어진지 오래이고, 자판 두드리며 넋두리 하는 일도 이제 시들하고 보니 모임에 다녀와도 후기 쓰는 일이 영 귀찮아진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늙는다 늙는다 하는가 보다.(돌미 날라온다 ㅎㅎㅎ)
그래도 카페지기가 참석한 모임인데 모임 후기를 안 쓰면 모양이 벨로 안 좋을끼고... 쓴다.
정모 닷새 전.
시증조할머니제사였다 하루종일 부침개를 굽고 밤 열두시에 제사를 모시고 치우고 자니 두 시다.
정모 나흘 전
보름 전부터 아버님이 가슴이 아프시다며 통증을 호소 하시다.
제사도 모셨으니 병원으로 직행
관상동맥조영검사를 하니 동맥 두 군데가 막혔단다. 스텐트 시술하고 중환자실로 직행
정모 사흘 전
일반 병실로 가려고 했는데 병실이 없어서 하루 더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그 사이 집에 가서 하룻밤 고스방하고 자다
정모 이틀 전
퇴원하는 줄 알고 갔더니 피수치, 콩팥수치가 몹시 나빠서 수혈을 하시다. 퇴원은 커녕 입원실로 직행
집에가서 이불이며 짐보따리 챙겨오다. 정모는 이틀 남았고 내가 다시 집으로 올 수는 없고 아버님 드실 반찬 챙기랴 뒤안에 가서 포도주 담아 택배로 부치랴 없는 부랄에 요령소리가 난다 딸랑딸랑..
정모 하루 전
토요일 정모 가기 위해 동서에게 하룻밤 부탁하는 전화를 하다.
회진을 도는 의사가 토요일에 퇴원해도 된다는 것을 오 노!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이왕 입원하신것 한 이틀 더 쉬셨다가 월요일에 퇴원할게요 ㅎㅎㅎ
토요일에 퇴원해서 집에 가면 나는 정모고 뭐고 빠져나오기 힘들단 말이예욤 -이건 내 속의 생각.
사악한 횃대의 잔머리는 돌풍뎅이 뒤집어 돌리는 것처럼 왱왱 소리가 난다.
드디어 정모의 시간이 다가와서 로즈님과 나는 대전에서 만나 고속버스를 탔다.
뭐 두시간 정도 걸리는 대전 서울간의 거리.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며 우리는 버스 속력에 버금가는 수다를 조용조용 떨었다.
내리자마자 <작은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모임이 있는 곳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거기서 안건모씨와 다른 구독자들과 만나서 한 아줌마가 써온 일기글을 살아온 이야기로 듣는다.
서른 일곱살인 아지매가 제주도에서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나와 살아 온 이야기를 군데군데 듣는데
로즈님과 나는 눈을 마주치며 작게 속삭였다. 우린 참 헐렁헐렁하게 살아 왔고만...
또 한 사람이 더 발표를 하고 작은책을 두 권 넣어서 온다.
다시 전철을 타고 계속 이바구 하다가 정거장을 두 개나 지나쳐서 인사동에 도착했다.
종각역에 내려서 두리번 거리다가 인사동 길을 찾아내고 식당입구에서 마중나온 아고타님을 만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파서 밥 부터 시켜 먹고 카푸스님 오셔서 막걸리를 마신다.
--오! 카푸스
그 잘생긴 인간은 가마이 있으면 우리가 어련히 잘 생깄다고 얘기해줄까, 말끝마다 <잘 생긴 나를>이란 말을 갖다 붙이다가 말미에 아고타님한테 한 소리 들었다. <재수없는 놈>이라는.
거기다 숲..까지 재수없다고 해서 카푸스님은 술도 안 취해서 고만 뒤집어졌다.
술상이 너무 무거워 그게 안 뒤집어진게 다행!
자자, 그러지 말고 막걸리 한 사발 땡기자, 카푸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편재가 시계부랄처럼 두 모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사이 인사동의 밤은 깊어 간다. 물컵에 따뤄놓은 포도주가 한 잔 두 잔 비워질 때마다 조용한 풍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편재가 저짝 모임에 갈려고 인사를 하자 풍경의 일갈이 터져나왔다.
"야! 시발놈아 너 나 책임져야지 어딜간다는고야."
--편재는 이뻤다.
내가 처음 편재를 봤을 때가 언제였지? 그래 갑사모임에서였다.
그 땐 편재의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들었는데 이젠 잘 알아듣는다. 편재의 포도주를 내가 얼마나 챙겨 갈라고 노력을 했던가? 뭐 다른 회원들이야 그녀르 포도주 안 멕여도 된다 뭐 그리 물고빨고 이쁜 구석이 있따꼬..ㅎㅎㅎ 그러나 편재는 다르다. 편재는 이뿌다. 그래서 내가 약속한 포도주를 꼭 주고 싶었다.
병원에 있다가 집에 안 가도 되는데 그놈의 포도주 때문에 갔다. 어머님 몰래 뒤안 수돗가에서 피이티병을 씻는데 물이 차가와 손가락 떨어지는줄 알았다. 그래도 편재, 편재의 포도주를 챙겨야했다. 살그머니 포도주 항아리를 열어 편재의 포도주를 담는다. 젖 먹던 힘까지 끄집어 내서 병마개를 비틀어 돌린다. 병원 짐하고 들고 갈 수가 없어 또 살곰살곰 오토바이를 타고 카푸스님 웨딩홀로 택배를 보낸다. 편재야. 니 포도주 은파리아짐마가 잘 챙겨갔다고. 걱정마래이.
--저 불쌍한 꼴을 어쩔꼬...
숲..이 술을 못 마신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건강도 챙길겸 잘 됐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어이구...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숲..이 술을 못 먹다니.
--역시 자운영님
나는 두이노에서 이 여인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못했노라.
흥...대문에 걸린 그 공주모델? 아놔.
마음이 진짜 이쁘다.
고백하건데 oo님, 저를 보고 침이 마르도록 이쁘시다 하시지만 자운영님의 마음이야말로 진짜 이쁘답니다.
서울의 토요일 찜질방은 그야말로 돛대기 시장보다 더 시끄럽다고 다시는 두이노의 식구들을 찜질방에 데려가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는 자운영님.
우리는 그녀의 집에 가서 폭신한 목화솜 요대기를 깔고 사랑스런 공주와 발가락을 붙이고 구름 위에 잠을 잔듯이 그렇게 포근하게 잤다. 한 숨에 한 밤을 보내고 나서 일어나니 병원 보조침대에서 구겨자던 내 몸은 오리속깃털처럼 가벼워져서...
--아고타여,아고타여
그냥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동생같고, 내 손아래 시누이 같고, 동서 같고.
내복 위로 드러난 쇄골이 내 부러움의 전부였다는.
공주님도 그걸 봤는가 집에 오는 도중에 내게 몇 번이고 자신도 살을 빼겠다는 다짐을 두었다.
특정 부위만이 아니 전체적으로 슬림하게...헐, 그러나 마의 44고지를 넘을 수 있을란지.
내가 보기엔 아고타는 44사이즈더만. 안될걸 공주님. 퍼뜩 포기하소 고만.
--샛서방 아닌 새서방
그녀는 새서방님 땜에 숲..이 일어나는 기미를 보이자 풍경을 옆구리 꿰차고 일산으로 사라졌다.
그녀들이 사라지는 인사동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반짝반짝, 밤하늘 가로등 사이로 한껏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떨어지는 눈은 부시게 아름답다
자꾸 쳐다보니 눙깔에 눈이 들어가서 부시다 못해 따굽다.
서울의 눈은 공해가 심헐거야
새서방 다독거리기 위해 일찍 일어선 그들을 보며 나는 샛서방이 생각났다.
강남 어느전철역 부근에서 편의점을 한다는 샛서방. 성씨가 참 특이하다 우리나라에 <샛>이라는 성씨도 있나? ㅎㅎㅎ 한때는 내 애인이였다가 다른 여자에게 장개 가서 이젠 서방이 되었으니.
혹시 서울 강남 어느 편의점 명함에 주인이름이 샛씨이면 옛날 횃대의 애인이였다는 것만 알고 계시라.
-- 눈 내리는 풍경
여태 서울 살았어도 모범택시는 첨 타봤다는 카푸스
오랜만에, 실로 갑사모임 이후 오랜만에 단 둘이가 되었다.
택시비 19,000원 나오도록 타고가는데 두이노역사 이야기하니라고 손 밖에 못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이왕 잡은 손, 따뜻한 김에 뜨거운 목소리로 사랑한다..이런 말 하면 좀 좋은가 그런데 지기럴..그의 목소리는 고래고래 썰렁했다.
자운영님 집 앞에 막걸리집에 도착해서 모둠 찌짐 한 채반에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켜놓고는 둘이서 또 옛날 애기를 한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횃대하고 카푸스 하고 살았는데 ...'
눈은 가는 전선 위에도 쌓이고 나무 위에도 소복소복 쌓이고
공주의 인사동 패션 어깨 위에도 쌓이고 자운영의 빵모자 위에도 쌓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고타의 머리 위에도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헤어지는데도 카푸스는 뒤돌아 가는 우리의 등때기에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비가를 부른다.
"나랑 노라줘~~ 나랑 노라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