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엽편
잠깐 눈 감고 지내보자.한 시간이 몇 개월이나 지났다
동안도 눈 감은 눈꺼풀 안에는 꿈 같은 소식들이 날아오고
몸은 거기서 달음질쳐 떨어져 있어도 기억들은 그리 되지 않는다
수시로 앳된 풍경을 살려내어 소줏잔을 부딪게 하고 살가운 웃음살 퍼지게 하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그게 습관이든 몹쓸 동경이든 확실치는 않지만
아릿하고 속을 후벼파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 일기장 뒷 표지에서 불쑥 그 날의 편지가 떨어진다. 그 때...그러니까.
4월말에 5월의 달력을 만들어 그대에게 부치면서 쓴 편진데 다음날 봉투에 넣으며
읽어보니 나잇살이나 먹었다는 여편네가 이렇게 감정을 못 추스리나 싶어서 편지는
빼놓고 달력만 보냈더랬지
툭, 떨어진 한 장의 편지 그것을 다시 읽어보고 나는 내도록 괴롭다.
괴로운 동안에도 마음은 따스함으로 물결친다
오늘 도보 여행을 끝내고 정선으로 돌아간다고 버스를 기다리며 전화를 걸어준 정선행님도
생각나고, 귀여운 귀걸이를 달랑거리던 토루도 생각나고, 그대는 물론이거니와 그대의 토끼같이
이쁜 딸과 아들도 생각이 나고.....나고.... 모두다 내게 환한 얼굴로 다가온 사람들이였네 하고
고개 끄덕여 보는거지. 딱 한 놈만 빼고.
시간이 지나면 낫지 않는 생채기가 어디 있나...하지만, 생의 어떤 것은 지겹게도 그 자리가 아물지 않고 덧나는 것이 있어 쓸쓸한 웃음을 짓게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아문 상처에 붉고 맑은 새살이 이뻐서 잊고 지내게 된다.
나이 들수록 두루두루 용납하여도 흉이 안 될 것인데 뭐땀시 그걸 못하고 이렇게 지난 일에
괴로운 한숨을 토해내는지..
그대는 그리 늙지 말길 간곡히 부탁하면서, 애들 아빠에게도 촌 아지매 안부 전해주시게. 그럭저럭 살고 있는가벼....하면서.
안녕..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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