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달 스무이틀이 결혼기념일이래요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 몇 년을 같이 살았능가 세알리 볼라면 열 손가락으로는 모질라요
한 씹팔년 살았나벼. 그러다보니 결혼기념일 이런것도 시들햐.
옛날에는 스방이 이 날짜를 기억하고 있나 잊아묵었나 이런 것도 좀 신경 곤두세우고 그랬는데
내가 알기로는 고스방이 결혼기념일을 잊어먹고 그냥 넘어간 적은 한 번도 없시요
그러니 내가 뭐 짜드라 고스방한테 언질을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낀데 여자란게 또 요물이여
아침 밥 해놓구서는 딸래미 교복 셔츠 다림질 하면서 문득 생각난 듯 쇼를 하며
"아고, 여보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네...하마트면 그냥 몰르고 지나갈 뻔했어"
"으구 여편네가 또 저렇게 복을 까불어여. 가마이 있으면 다 알아서 해줄낀데"
'잉? 뭘 해줄건가...아는 척 하지 말고 가마이 있을걸 잘못했네 그랴' 속으로 뜨끔할 즈음
그냥 아침에는 밥 먹고 나가요.
저녁이 되자 슬슬 궁금해집니다 뭔 이벤트가 있을까...하고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얘길했죠. 오늘이 엄마아빠 기념일이라고
벌써 일년이란 시간이 흘렀냐고 놀랩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케익을 사고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식구들이 같이 보러 갔잖에요.
딸래미 저녁밥 먹는데 나도 배가 고파서 똑 죽것어요. 그런데도 밥을 안 먹었세요
"엄마 밥 같이 먹자"하는데도 나는 혹시 나가서 먹을지 모르니...하면서 숟갈을 들지 않았재요
꿈도 야무집니다.
저녁 일곱시쯤 되자 고스방이 들어와요
그런데 손에 흰 봉다리를 들고들어오는겨. 뭔가 하고 봤더니 송어회라요
식구들 놔두고 둘이만 나가서 먹는 것도 그렇고...하면서 회를 사 가지고 왔어요
마침 천덕 송어 양어장 옆을 지나게 되었다며
싱싱한 송어회를 보니 밖에 나가 먹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침이 츠르릅 흐르는게..그래서
송어회 두어 살점, 마늘, 땡초 얹어 된장 발라 먹으니까 씹도 않고 지절로 넘어가요
먹고 나니 응근히 부애가 나. 밖에서 좀 맛난 것 사주면 때바리 날낀데..하는
그래도 뭐 이만하면 괘안아요. 식구들 모두 송어회 한 쌈씩 싸서 잘 먹었응께
저녁먹고 영화 한 편 보러 가자...이럴 줄 알았는데 주저 앉아요
그럼시롱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하는 말이
"내가 저녁 늦게 혼자 테레비 홈쇼핑에 여자들 속옷 파는거 유심히 살펴 봤는데 상민이하고 못난이(상순이)하고 입을 만한 디자인이 없어. 그래...내가 오만원 줄팅게 내중에 상민이하고 둘이 나가서 맘에 드는거 사입어래이"
좀 있으면 주몽하니까 그것도 봐야허고
현금을 보자 뭐 영화고 드라이브고 암 생각 없십니다. 오만원 받아 챙기고는 앉아서 실실... 30일이면 상민이 하고 내하고 생일인데 그 때 상민이 속옷 사줄래면 한 이만원 더 있어야 하는데...하고 흘립니다.
고스방,
없는 주머니 먼지까지 탈탈 털어내며 이만원을 더 줍니다.
"때앵~~~큐!"
나중에 그래요
"여편네가 말이야, 아침에 암말 않고 있었으면 내가 지녁답에 살짝 나오라캐서 직지사 델고 갈라캤구만.."
직지사가 뭔 얘긴지 다 아시쥬?
그나저나 이젠 직지사 가는 것도 버겁고 겁나요
나이를 묵긴 묵었나봐요
고스방 말마따나 상순이가 좋아서 응앙응앙 울어보는 일도 이젠 세월따라 요원해진거 같어
그져 편하게 푹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드니 말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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