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심심한 동네에서 열린 투호경기

황금횃대 2004. 8. 17. 11:39
촌빨날리는 이 심심한 동네에도 광복절은 있어
군수며 면장이며 대동하고 빛나는 기념식은 없어도
8.15광복 기념 리.동 대항 조기축구대회가 열렸다

무슨 일이든지 이장을 끼고, 부녀회장의 후광을 입어보고자
용쓰는 이 심심한 동네에는 역시나 그들을 선수로 끼워넣은
투호대회가 열렸다. 말이 투호대회지 뭐 고무 바께쓰에 먼지털이를
던져 넣는 대회...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다.

투호 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부터 이장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옛날에도 말했듯이 심심한 우리 동네 이장님은 나와는 7촌아저씨뻘이 되고
한 때-젊은 시절-는 가수가 되기 위해 집문서를 들고 튈 요량까지 생각한 아저씬데
이즈음은 술이 너무 좋아 술에 함몰 당할 위기에 쳐해있다.

그래도 한바탕 술바람에 휩싸일 때만 그랬지 평상시에야 그렇게 상냥하실수가 없다
조카며누리인 나에게 만면에 웃음을 띄고 만나면 반가와 하시는데, 투호 경기까지
같이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시겠나. 우린 저녁마다 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고무 바께스가 하룻밤에 하나씩 작살이 나도록 투호를 하였다.

"그것 참, 아무리 전쟈서 잘 뗀지도 안 들어가네 그랴"
"에고...팔에 힘을 쫌 빼서 뗀지바. 호용이네 성님은 저녁으로 멀 잡솼기에 저리 힘이 넘치노"
"아고...그래도 안 들어가네"

별똥별이 쏟아진다는 그 밤에도 우린 연습에 몰두 하느라 별똥별이 어느 방향에서 빛꼬리를
매달고 떨어졌는지 아무도 몰랐고, 대신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에 발등께나 아팠다는 소리만
호호호..웃음 속에 양념으로 섞이였다.

금방 먼지털이같이 생긴 막대기를 네개나 꽂아 넣었어도, 그 다음에는 한 개도 안 들어가는게
이 게임이 아이러니다.
사람의 가늠이 머리에서 시작이 되지만, 손끝 말초신경에서 그것이 날아가 바께쓰에 들어가거나 혹은 바깥으로 떨어지기까지는 무수한 힘의 공식과 공기의 저항, 바람의 세기, 별빛의 꼬라봄, 달빛의 헛기침, 풀벌레의 울음소리, 나뭇잎의 살랑거림, 기찻길을 지나가는 새마을의 씩씩한 돌진...뭐 이런것들이 매 순간 던진 살(막대기)에 작용을 하는 것이리라. 각설하고

빰빠라빰빰, 빰빠라...(쌍 비읍이 많이 들어가네)
만국기도 없는 중학교 운동장에는 첫아침에 내린 빗방울들이 먼지를 잠재우고
느티나무 아래 쳐진 내빈석 포장 안에는 선수만큼이나 많은 내빈들이 자리하고 운동장 안으로는 연신 솥단지와 아이스박스를 실은 봉고차가 들락거린다.

어쩌구저쩌구 심심한 동네의 유지들이 한 마디씩 하고, 말의 맺음 끝에는 여지없이 화음이 들지 않는 박수 소리들이 와와 쏟아진다.
축구 경기에 앞서 투호가 시작되었다. 고무바께스에서 정확하게 3.5미터가 간격으로 흰 줄이 하나 더 쳐저 있고, 심심한 동네의 구석구석마다에서 선발된 투호 선수 다섯 명이 줄 앞에 날라래미 섰다.
세개의 연습분량이 있은 뒤 바로 본 경기로 들어 왔는데, 마음 먹은대로 막대기가 잘 들어가지 않음은 물론이고, 기막힌 것은 어쩌다 들어간 막대기가 그 다음 들어간 막대기로 인해 쓰러져 밖으로 나오면 먼저 들어간 것도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안팎으로 항의가 많았지만, 투호의 기본 규정은 난계예술제의 투호 규정에 맞춰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츠암내, 그것도 뭔 한 단계 높은 곳의 규정이 적용이되나?
난계예술제는 군(郡)단위에서 치뤄지는 경기이고, 지금은 면(面) 단위에서 하는 경기이니, 당연히 규정은 군단위로 따라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린 언제부터 길을 들여왔는건지.

심심한 동네에서는 그냥 재미있게 심심한 동네의 규정으로 맞춰 진행하면 될 것인데, 그걸 윗선에 맞춰야 한다고 모가지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쉽게도 세개를 넣었는데 두 개가 팅글리나오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한개를 넣었고, 다른 아지매들이 잘 해서 우리 동네는 열한개를 넣었다.
구교리에서 열개를 넣어 바짝 우리 뒤를 추격해왔지만, 어허...그것이 뒤집어 질리가 없지

그 달밤, 그 별빛, 그 풀벌레 소리, 그 기차의 기적소리며, 그 나뭇잎의 떨림이 있는데 절대 그렇게는 안되지.

간장 종지만한 금박의 우승컵과 상금 십오만원, 그것도 빳빳한 신권으로다 만원짜리 열다섯장!

더운날 밭에가서 땅 파기 보다 낫군. 십오만원이라니..

모두 한 마디씩 한다. 내년에는 전종목 경기가 치뤄지니 일찌감치 선수 선발해서 일등을 해야지
우리의 이장아저씨는 내년 경기를 대비하는 각오가 새롭다 못해 어금니가 빠스라질 지경이다.

내년에는 나이 마흔셋이 되어도 심심한 동네의 새댁이란 칭호를 어깨에 걸머지고 나는 또 씨름선수로 뛸 것이고, 그 씨름판에서도 이겨볼라고 시동생에게 기술 몇가지 배워야지 하는 야무진 꿈을 지금부터 꾸고 있는 나도 한심하기는 매 한가지...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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