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마지막날 동네 윷놀이를 했재요
이장님이 엊저녁에 회관에서 한 잔만 하신다는게 떡이 되도록 마셔서 방송을 못했시요
우리 이장님 동네 방송하는거 한번 들어보면 참말로 멋뜨러져요
따악 종이에다 정서를 해 와서는 정확한 발음으로 동네 노인들이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방송을 하재요. 방송 시작하기 전에 틀어주는 트롯트 노래테잎도 이장님이 꼭 챙기시져.
슬슬 회관 앞마당에 멍석자리가 깔리고, 말판 놓을 사람이 앉아 있을 돌멩이와 감귤박스, 나무상자
들이 멍석 주변에 놓아집니다.
우리 동네는 철길 옆동네라, 자주 기차가 지나가요.
가끔 생각키를, 저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이렇게 모여 즐거운 맴으로다 윷놀이 하는
풍경을 보면 월매나 부러울까..혼자 생각해 보쥬. 뭐 까짓꺼 안 부럽다해도 괘안쿠요.
윷을 던지면서는 누구나가 소리 한 자락 합니다. 뭐 넘어가는 노랫가락이 아니고, 무엇이 나와주었으면
좋게다는 염원을 윷가락에다 거는거쥬.
"모로모로모로...."하며 모가 나오길 바라는 주문을 거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이 주문을 들으면 고서방은 옆에서 <모 좋아하시네 흥!>합네다. 나는 바로 눙깔을 까재비처럼 모로 뜨고
스방을 흘겨봅니다요.
윷놀이하자면 먼저 편을 갈라요.
화투장을 사람 수대로 엎어 놓고, 띠끝짜리 디끼는가 아니면 십끝짜리 띠끼는가 보고는 편을 갈라요.
주로 띠끝편, 씹끝편이라고 하죠. 작년에도 이야기 해 드렸지요?
띠끝편은 검은 바둑돌이 말이 되고, 십끝편은 흰 바둑돌이 말이 됩니다. 백마와 흑마는 서로 잡아 먹기도 하고 업어 가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고 앞서기도하면서 달려 갑니다.
그렇게 바람 부는 앞마당에 서거나 혹은 앉아서 윷을 던지며 웃고 고함지르다 보면 목이 말라요
그럼 우리의 민석이 아줌마가 오랜지를 얌전하게 썰어서 오봉에 가득 담아 배달 옵니다.
소주도 한 잔 해야 윷이 잘 던져진다면서 술도 권하죠. 사진의 오른쪽 할머니는 덕기 할머니래요
얼마나 멋쟁이신지. 여름에도 한복을 입고 다니십니다. 시조도 배우시고 그러지요, 영동까지가서
대단한 열의입니다. 그 옆에 팔짱 끼고 보는 아재매는 수미아줌마. 수미가 시집 갈 나이가 다 되었는
데도 꿈쩍도 안 한다고 실쩌기 걱정을 하더만요.
민석이 아줌마야말로 억척이래요.
세호아저씨가 교통사고로 졸창지간 돌아가셨는데도 그 많은 농사를 혼자 꿋꿋이 지어내요.
작년 겨울에 아들이 또 교통사고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는데도 늘 밝은 얼굴입니다.
이노무 윷은 모도, 윷도 할 줄 모르는가 나오느니 개요, 또라.
개또밖에 모르는 윷가락이라고 윤경이 아줌마가 아주 질색을 하네요.
그래도 수미 아줌마는 두 모에 윷 개를 한몫에 했습니다. ㅎㅎ
그러니 윷놀줄 모르는 사람 윷가락 나무랜다는 말이 나오쥬.
윷을 놀다보면 반드시 모만 좋은 것도 아니고 윷만 좋은 것도 아녀. 그 길이 탁탁 맞아 떨어지게 가야 좋은거지 윷말판을 빙빙 둘러가면 늦기도 하거니와 뒤따라 오는 말에게 잡혀먹기도 쉽지요.
윷판 하나도 잘 들여다보면 세상 사는 이치가 들어있어요
그러나 뭐 사람 사는 일이 그 이치에 딱딱 맞게 떨어지는 것인감?
이리갈까 저리갈까...윷말 서는 사공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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