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영동할아버지 맞은 편에 씨러질 듯 앉아 계시니 다른 사람 순서를 젖히고 울 엄니부터 먼저 봐조요. 할마이는 왜 어디가 편찮으셔?/아 그기 당최 밥맛도 없고, 밥을 못 먹으니 사람이 깔아져 죽것어요/어디보자 맥 좀 짚어 보게/어허....노환이네/ 내 눈치를 흘끔 보더니 노환이야 노환.../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전신만신 다 아프지만 그래도 밥을 좀 먹으면 어찌 전디볼긴데 우짠셈인지 입에 대면 써서 못 살긋어요/그래요...그게 할마이..갈 때가 되서 그런겨/
말을 마치자 아버님을 또 흘끔 보시더니 할머니보고 요새들어 꿈을 꾼게 없냐구 물으신다.
"꿈은 뭐 별다르게 꾼건 없고 잠을 자면 뭔가가 흐터분하게 지나가는게 있구만.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흐리하니 지나가요"
"그래,그래 그거야 할머니. 놀랬구만."
"그게 뭔데요"
"뭐긴 저승사자지. 요 머리 위에까지 지금 저승사자가 와서 널름거리고 있어. 그러니 무얼 못 먹지. 얼렁 방책을 해야지 안 되야."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더니
"그래도 할마이가 영감님 살아 있을 때까지는 수발을 해야지. 그래야 자네가 편해. 저 승질을 할마이는 받아주지만 할마이 죽고 없으면 누가 받아줘 그러니까 아직은 안 돼."
어허, 이런 이 할아버지는 저승사자도 물리치는 술책을 가지고 계신단 말인가. 날 보고 잘 들으라며 방책을 할려 주신다.
"지금 바로 큰 약재상에 가서 사향소반을 구해와. 많이도 말고 꼭 귀파는 귀이개 거기 하나 들어 갈 만큼 그 정도로 적은 양이며 되야. 꼭 구해와 그래야 자네 시어무이가 살어."
"사향이라면 궁노루 배꼽인가 뭔가 그거 아닌가요?"
"맞어 맞어. 잘 아네. 이렇게 똑똑하다니깐. 사향 쓸개를 구해와야하는데 얼릉 가봐. 그거 구해서 나한테 다시 전화해"
온 식구가 그 집을 나와서 칼국수 집에 간다.
윗뜸에 민정이 할무이가 회관에 와서는 걸핏하면 영동 천주교 성당 넘어가기 전에 그 칼국시 집에 참 맛나게 한다고 얘기하던데..하며 어머님이 늘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어머님 소원도 풀겸 아버님 차도 움직였겠다 내가 그리로 가자고 했다.
곁들여져 나온 김치가 맛있는지 잘 드신다.
아버님도 좀체 김치를 잘 안 드시는데 그 집 김치는 참 맛나다고 잘 드신다. 김치가 아니고 겉절이더만.
마음 같아서는 겉절이만 좀 사 가지고 가고 싶은데 그 말을 입 밖에 못 꺼내고 나는 영동역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대구 약전골목으로 냅다 달렸다. 기차야 달려라.
봄을 맞이 하는 들판은 사뭇 빛깔이 다르다.
개천가에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는 이제 연두빛 웃음을 머금었다. 바람에 한 뭉터기씩 쏠리는데 그제 흔들리던 그 빛이 아니다. 옅은 연두빛. 연두색이 아닌 연두 기미, 그래 낌새다. 연두 낌새!
어이고 이럴 땐 말도 참 잘 하지. 탁월한 단어 선택이여 ㅎㅎㅎ
일요일이라 몇 군데 열어놓은 한약방을 방문하여 사향에 대해 물어보지만 다들 대답이 신통찮다.
친정올케에게 전화하니까 아는 한의원에 전화를 해서 아모 한약방에 가면 있을 거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 집을 찾아가니 일요일이라 문이 굳게 잠겼다.
할 수 없이 친정집에 가서 일박하는 동안 연신 집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걸 속지 않고 사야할텐데...하시는 아버님.
또 고스방은 이럴 때 특이하게 극성스럽지 아니한가.
친정 엄마랑 사과를 먹으며 전화를 받으니 울 엄니 한마디 하신다.
어련히 알아서 구해갈까 저렇게 전화를 해 쌌노.
이런거 보면 한 다리가 천리다. ㅎㅎㅎㅎ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약전골목에 가서 사향 얘기를 하니 가격이 고가란다.
얼마나 고가이냐하면 일그램에 십만원.
귀이개 하나 될 만큼만 사 오라고 하셨으니 그거 반 만 달라고 얘기하니 주인이 선뜻 그리 응해준다.
영점오그램에 오만원 주고 하얀 약봉지에 담아 오는데, 거참...금 보다 더 비싼게 이거더만.
집에 와서 할아버지 시킨대로 방비를 하는데 조밥을 두 그릇해서 담고, 막걸리 두 잔을 부어서 조밥 그릇 위에다 십원짜리 동전 세개를 세워서 꽂고 엄니 누워 계신 머리 맡에 놓아 두고는 저녁 여섯시에서 아홉시까지 그렇게 놓아 두래.
그래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해 두었는데 아버님 퇴근하셔서 저녁을 드시잖여. 시엄니는 가만히 방에 누워계시니 기운이 없어 그러시는 줄 알고 자꾸 엄니에게 밥 먹으라고 성화를 하셔. 어머님은 또 그런거 할 때 정말로 온 정성을 다 하시네. 그러니 말도 잘 안하시는데 자꾸 아버님이 저녁 먹으라고 말씀하시니
조금 있다가 먹는다고 손사래를 치셨거등. 근데 아버님은 발근 화가 나셔서 <그렇게 손을 휘저으면 어떡하느냐고 밥을 먹어야지>하며 버럭 하셨네. 그러니까 엄니도 화가 나셔설랑 고만 돌아 누우며 <아이 몇 분만 참으면 될 것을 그걸 못 참아서 이렇게 성애(성화)를 지기느냐고 발끈 한 마디 하시네. 승질 불 같은 울 아버님 비릉빡에 지대고 앉아서는 티비를 만땅 크게 틀어놓고 보셔. 울 시엄니께서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 한 이십분 뒤에 내가 들어가서 그걸 다 그릇째로 봉지에 담아서는 아구리를 꽉 짜매구는 엄니 등이며 가슴을 쓸어 드리고 배끝에 내다 버렸재요. 그걸 경상도 말로는 양밥을 한다고 하는데 여긴 뭐라하는지 몰것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다 하고 저녁을 드실래니 화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니 밥이 넘어 가시냔 말이지. 아버님 어떡하시는가 보니까 티비 끄고 주무셔. ㅎㅎㅎ으이고 염장을 질르시는구만.
엄니가 봄동 생절이 한 것 넣고 된장에 한 숟갈 비벼서는 결국 못 먹고 내 놓으시네. 어쪄 또 내가 비벼 먹었지. 양념 묻은 밥을 그냥 놔 두면 버려야하니까. 그거 참 내가 비벼 먹으면서도 사람 사는 일이 어찌 이리도 팍팍하게 돌아가냐 싶지.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는, 참, 저녁 무렵에 작은 시누형님이 오셨네. 설 쇠고 엄니 보러 오신게지.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나 하여간 오랜만에 친정에 울 형님이 오셨는데 그 날이 장날이여. 친정어무이 아파서 누워 있는 걸 보니 속이 아프재요 딸이니까.
식사도 잘 못하시고, 그러니 설운 마음에 딸에게 그동안 며느리 서운하게 한거, 영감님이 서운하게 한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들었는데 또 이 늦은 저녁에 아버님이 그렇게 별나게 그러시니 난감하지.
그래도 나는 그런 내색 안 해요. 형님 얼굴이 자꾸 굳어지는데 부러 명랑하게 형님에게
"형님, 어머님 손칼국수 좋아 하시는데 형님이 좀 밀어주세요. 나는 당체 그걸 못해요. 내가 오늘 호박도 사왔응께 형님이 조금 밀어 주세요. 끓이는건 내가 낋일팅게"
울 형님 금방 밀가루 반죽해서 계란하나 깨 넣구는 조물 조물 반죽 덩어리를 두개 만들어서 칼국수를 미는데 정말 잘 하시네. 얼릉 하나 밀어서 가늘게 썰어서는 물 끓여 김치 송송 썰어 넣고 호박 채 쳐 넣고는 국수를 끓이 드리니 대접으로 한 그릇 잡수시네. 흐이고..
그 때 일 마치고 고스방이 들어와서는 국수 미는 걸 보더만. 내가 할 줄 알면 진작 해 드렸을텐데 못해서 오늘 형님 오셔서 국수 밀고 있다고 하니까, 등신그치 그걸 못해? 허며 자신이 해 보겠다고 달라 드는겨.
문디 아 낳아서 씻어 조진다더니 그거 민다고 고스방이 손을 몇 번이나 씻어.
그러더니 밀가루 반죽을 마른 가루 위에 탁 놓구선 중간부터 밀어 나가야하는데 그냥 가장자리부터 밀어. 형님이 젤 먼저 중간 부분을 화왁 홍두깨로 밀어 내야 한다고 조언을 했건만 다아 자기 깐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며 밀어요. 으샤으샤..혼자 투닥거리며 미는데 ㅎㅎㅎ
나중에 마른 가루 뿌리고 홍두깨에 감아서 두깨 조절을 하며 평수를 늘여가야하는데 그냥 냅다 둘둘 감아서 홍두깨를 굴리더니 나중에 촤르륵 펴 놀래니 그게 펴져? 같이 달라 붙어설랑.. 아이구 와이래 덥노 하면서 떼내는데 두께가 고르잖으니 빵구가 나잖여. 내가 얼마나 웃었던지.
껠껠 아주 한 고개 넘어감씨롱 웃었네. 결국에는 빵구난거 다시 척척 접어서 형님이 새로 밀고.
잘 한다고 큰소리치던 고스방, 그까이꺼 홍두깨로 실실 밀면 되지 하던 고스방. 스스로도 쳐다보니 참담한 밀가루 밀판을 보고는 실쩌기 웃으며 부엌을 나온다. 저렇게 겸연쩍에 웃을 때 보이는 고스방의 산쁘라 치아틀.
그렇게 칼국수를 끓여서 엄니는 겨우 한 술 맛나게 드셨다. 엄니. 이제 양밥도 했으니 내일 할아버지가 약 드시는 방법 알려 주신다 했으니 그거 드시고 차차로 깨어 나셔요^^ 아무래도 아버님한테는 이 지게작대기같이 무뚝뚝한 며느리보다 엄니가 그래도 훨 편하시지 않겠스요? ㅎㅎㅎ
"그까이꺼 대애충 국시방맹이로 밀면 되지"하며 달려든 고스방
중앙부분부터 확 밀어야한다는 조언을 무시한채 가장자리부터 요령소리나게 밉니다
처음에야 힘대로 밀면 되니까 이정도까지는 대략 무난하죠?
바닥에도 마른 밀가루를 뿌리고 밀어야하는데 그냥 밀다가 식탁바닥에 반죽에 딱 달라 붙어 안 떨어질라는걸 조심조심 떼며 감아갑니다
살째기 펴 놓을려는데 홍두깨에 밀가루가 달라붙어 ㅎㅎㅎㅎ 이 시점에서 등때기 땀납니다 삐질삐질..
신중한 고스방 좀 보세욤 밀가루반죽을 보석 다루드키..
이번에는 마른 밀가루를 좀 낫게 뿌려요
또 감아서 자꾸 얇게 밀어야합니다.
아뿔사 옆에서 여편네가 앉아 웃기만 하고 마른 밀가루를 쳐주지 않았다고...드뎌 삑사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거이거 생각대로 쉬운게 아니래요. 나는 대략난감한 이 끄트머리 부분을 보고 배를 움켜쥐고 웃습네다
상처뿐인 영광!
빵구난 반죽은 수제비밖에 안되지요? ㅋㅋㅋㅋ
고만 척척 접어서 프로이신 형님이 다시 반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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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어머님이 한 달 정도 앓으셨지. 꿈 자리가 싸납고, 뭔가 흐터분히 지나가면 사람이 정신이 혼미한게 입맛이 하나도 없고 못 먹으니 자꾸 가라앉아 누우면 땅 속으로 꺼지는거 같다고 하시네. 병원에 입원하시자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도리질을 하시더니, 지난 일요일에는 병원 가기 전에 영동 할아버지한테 가서 좀 물어 봤으면 좋겠데. 그래서 아버님하고 나랑 같이 영동 할아버지댁에 갔지. 일년 신수 보러 온 사람들이 거실에 가득햐. 어머님이 씨러질 듯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니 그 할아버지는 우리집을 잘 알잖여. 그래서 엄니를 끌어 당기시더니 <할무이는 어디가 펜찮으셔서 오셨어>하고 물으시능겨. 그래서 울 엄니 저간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할아버지가 실쩌기 웃으며 대답을 하시네 <그건 말여 저승사자가 할무이 델러 온기야. 조오기 머리 위에까지 내려왔어>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이야기를 들어.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날 쳐다보고는 <할아버지보다 할무이가 먼저 가면 자네가 힘들어져 안 되지>그럼시롱 뭐라뭐라 양밥할 것을 알케조요.
그러고는 처방을 내리길...지금 바로 조선 팔도 어디를 가서든 <사향>을 구해 오라네
그게 젤 급하니 그거부터 구해 놓고 뭐 다른 것을 이야기 하자며 서둘러 일어나서 가라고 그래
그래서 점심으로 칼국시 한 그륵 후르륵 마시고는 넵다 대구로 달려서 약전 골목까지 왔재요 (아, 물런 기차를 타고 갔지) 일요일이라 한약방마다 문을 다 닫았네. 간혹 문 열어 놓은 집으로 찾아가 사향을 얘기해보니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네. 구해도 그게 진짠지 가짠지 알 수 도 없구..하며 말꼬리를 흐리는겨. 참 암담해여. 금방 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게 그렇게 구하기 힘들 줄이나 알았겠어? 하여간 내일 월요일이면 약전골목 한약방은 모두 문을 열테니 구해봐야지하고는 친정가서 하루 자고 담날 어찌어찌 구했어. 사향 일그램에 십만원이래네.
그걸 구해서는 할아버지 시키는대로 양밥을 하고 다음 날, 사향을 가지고 영동할아버지 집에 갔어.
그 할아버지 내 팬이시잖여. 날 보면 맨날 니가 고씨집에 보물이여 하면서 듣기 좋은 말씀을 하시잖여.
구해 온 사향을 할아버지께 보여 드리니까 날 보고는 <너 참 극성이다>이러는겨. 속으로 그랬지. 이왕 사는 내 인생 극성으로 살아야지 하고.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지. 그냥저냥 시적부적 살다가 내 명 닿이는 곳까지 퍼뜩 살아버리자 싶지. 그럴 땐 의욕도 없고 살아봐도 별 뾰죽한 수가 없응께 하는 말이지. 그러나 가끔 이런 경우에 척, 척, 일을 해 치울 때는 내 자신이 갸륵한거야. 사는데 벨로 어려운 일도 없응씨롱 자신이 마치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린 노란 민들레로 생각되는겨. 그러면 나는 마구 팔뚝으로, 다리 알통으로 삶의 의욕이 바짝 차 오르지. 그럴 때 참 자신감 있고 좋지. 늘 그런 마음만 챙기면 자신이 내뿜는 에너지가 충전 만땅일건데 ...ㅎㅎㅎ
사는기 말여..꼭 그렇지만은 아녀. 그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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