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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 입고 마당에서 찔락거리고 돌아댕기니 뭐언 설기분이 나긋어
설이라믄 아무래도 고래짝부터 내려오는 풍경이 있는게지
그것이 꽁꽁 얼어서 그 자리에 있어주던, 아니면 박제가 되어 물기없이 말아서 굳어졌던 것이든마랴.
하여간 이즈음 설날은 그 풍경에서 아주 삭막하네
제각끔 차를 몰고 와서는 삽작끌에 대어 놓고는 홀라당 집구석으로 들어가니 사람구경하기도 힘들지
옛날 같으면 공동 우물에서 이것저것 씻어대며 나누는 안부, 물 길어 나르며 <느그집에는 삼촌들 왔나? 동서는 같이 왔나?>이럼씨롱 호호호 나누던 얘기들이 있고, 그 얘기에 은근슬쩍 묻어나오는 시기심과 질투, 그리고 집구석 사정들이 이젠 원천 봉쇄가 된기야. 그러니 사람이 살아도 스토리가 없어. 아니지 스토리가 없는 건 아닌데 문 밖으로 넘나들들 않어. 그러니 이즈음 명절 풍경이 삭막할 수 밖에.
거 왜 옛날 이야기도 있잖아. 어떤 되련님이 옛날 이야기만 들으면 그걸 주머니에 넣어 꽁꽁 묶어 버리고
말았더니, 그 되련님 장가가는 날, 갖힌 이야기들이 새신랑 해꼬지 할라고 모의 작당했는데 그집 행랑아범이 그걸 알고 새신랑 목심을 구해줬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집구석 사정도 우물가에서 풀고, 밝고 맑은 하늘 속으로 날려 보내면 덜 곪아 터질 일들이
저렇게 삽작 밖으로 못 나오고 울타리 안에서 맴돌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는 엉겹결에 치명타를 입게
되는지도 몰라. 사람사는 일이 그렇지 뭐.
자...우리집도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잖여.
며느리가 너이나 되지만, 위로 형님 둘은 타지에 사니까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잖여
말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젤 힘들지해도 가마히 보면 속뜻은 그게 아닌거 같아. 그러나 뭐 사람사는 일에 일일이 속뜻 들여다 보고 살 필요가 있냔 말이지. 그런 속뜻이야 가끔 한 번씩 들여다 보면 될일이고, 나머지기는 그냥 데면데면 듣는 대로 인정해주고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겨. 그게 좋아 위장에. ㅎㅎ
차례를 지내면 시부모님께 세배를 드리지.
작년까지는 꼬박꼬박 아버님께서 며느리에게도 세배돈을 주셨는데 올해는 힘에 부치시나벼.
그래서 아이들만 세배돈을 받고 우리는 이제 세배돈이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내년부터 우리가 아버님께 세배돈을 드렸으면 좋겠는데 나 혼자 하기에는 좀 억울한 구석이 있지를. 그걸 넘어서야 나도 뭔가 인간의 경계를 초월한 느낌이 들텐데..ㅎㅎㅎ그게 안돼.
새배하고는 후딱 치우고 닦아 넣고는 막내 동서부터 친정으로 간다하네
인천형님도 한시 기차로 상경.
나도 아이들과 준비해서 세시차로 대구 갔재요.
대구에 친정이 있응께.
명절날 바로 친정에 가는 경력도 이젠 이년이 넘었네. 올해로 다섯번째가나?
그러니까 이젠 아주 자리가 잡혔다는 말씀도 되긋다.
기차타고 친정에 가니까 우리집은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네
울 아덜 유치원 다닐 때 사진관에 가서 가족 사진 한 번찍고, 그 후로 모두 결혼하고 했으니 아이들까지
모여서 한 번 찍자는게 그게 참 맘대로 안되여.
이번에는 아주 작정하고 막내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쇼파도 들어내고 거실 유리창에 커튼도 싸악 치고는
의자를 갖다 놓고 한 집 한 집 가족 끼리도 찍고, 부부끼리도 찍고, 아이들도 찍고, 마지막에 전체 가족이 다 찍었재. 울 아버지가 일녀 삼남을 두었고 식구수를 다 합쳐보니까 열여덟이여. 그래도 천하에 고스방
혼자 쏙 빠져서 열 일곱명이 사진을 찍었네. 웃어요 자연스럽게. 아하하하하.
웃으며 찍고, 눈 감아서 새로 찍고, 목이 너무 갸우뚱 기울어져 새로찍고...막내동생 가희아빠가 찍샤하느라고 바쁘게 카메라와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뛰어다니며 몇 판을 찍고는 가족사진 촬영이 끝났네.
사진 촬영을 다 하고는 모두 각자이 처갓집으로 가고 나는 친구 만나러 아리아나로 뛰어 갔지.
그 친구는 대구가 시댁이고 나는 대구가 친정이고.
며칠 전에 포도주 가지로 와서 만났지만 또 만났어.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약속한 그 사람.... 주현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갔더니 아직 안 왔네
커피숖 보카치오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왔어.
커피 한 잔하고 맛있는 케익도 먹고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대로 헤어지긴 정말 싫어. 그래서 아래층에 있는 브로이로 이동.
맥주 1700피쳐 두 통을 둘이서 어지가히 다 마시고는 살짝 취했어
이런 저런 이야기 있잖여. 여자들이 하는 수다.
술이 살짝 취했을 때 사람이라면 가 보는 경계 있잖여.
여기까지는 아니고 여기까지는 되는...뭐 그런 경계.
소주를 저렇게 마시면 그 선을 지키기 어렵지만 저정도의 맥주라면 경계의 이쪽저쪽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지를. 외국 그룹이 열심히 우리나라 노래도 부르고 외국 노래도 부르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나가서 춤도 추고 생일 축하도 하고..
장소가 밀폐된 곳이 아니고 확 트인 곳이라 식구들하고 놀기도 좋고.
친구가 가야된다고 배웅해주고는 울 딸과 아들 오라구했지. 탈래탈래 걸어서 왔네
옛날에도 삼촌들고 몇 번이고 와본 곳이라 둘이서도 잘 와요
맥주 1700피쳐 하나 더 시키고 꼬치구이 시켜 서이서 그걸 다 마셨세요
울 아덜놈이 석잔을 마시더니 화장실을 세번을 가네..ㅎㅎㅎ
다행인게 술에 관한 한, 즈그 아바이를 안 닮고 나를 닮아서 다행이여. 열 한시가 되어서 집으로 왔세요
한참 먹고 있을 때 고스방 전화가 와서 뭐하냐고 묻기에 애들하고 같이 브로이에 와서 맥주 한 잔 한다고하니 혼자 약이 오르고 심통이 나재. 내일 새벽 다섯시에 전화로 깨워달라고 얘길하고는 전화를 끊네
같이 와서 같이 즐기면 참 좋으련만...고스방은 그걸 못하네
다음 날 아침.
꼴란 그 술을 마셨다고 속이 씨릿해. 그래서 울 아덜도 속이 그럴까 싶어서 조기 매운탕을 끓였네
아버지도 잘 드시고 나도 시원하게 잘 먹고, 울 아들도 잘 먹고.
그냥 이렇게 속 풀어 주는 한 끼만 잘 챙겨도 인생에 비애는 십리나 달아나지?
나는 그렇더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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