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지난 10일에는 마산리 앞들 수리조합 부역이 있었다.
이제 슬슬 못자리 장만할 때가 되었으니 논에 물도 넣어야 하고, 그러자니 겨우내
농수로에 쌓인 흙이며 날려 들어와 쌓인 낙엽과 비닐 봉다리같은 것을 모두 나와서
치우는 날이다.
여덟시까지 오십셔~하면서 안내 우편엽서가 왔지만 나는 그렇게 빨리 나갈 수가
없었다. 후다닥 치우고 삼십분정도 늦게 갔더니 벌써 들판에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수리조합 반장 장정남씨가 오토바이 뒷자리에 삽 하나 꽂아서는 왔다갔다하며
사람들의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농로가 논 옆에 있는 것은 아모 문제가 없는데, 아랫마산리로 내려가면 농로가
하수도처럼 쓰여져 거기는 청소하는데 악취가 나고 쓰레기도 만만찮아 사람들이
한 둘씩 투덜대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이 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바로 흘려 보낸다.
"아니, 맨날 나오는 사람만 나와서 청소하고, 안 나오는 사람은 콧배기도 안 보이구
이거 불공평하잖아. 나도 내년에는 어지가히 다 해놓았을 시간에 어실렁어실렁 나와
야겠네. 쌔빠지게 하면 뭣해. 안 나오는 인간들은 한번도 안 나오는걸"
조기태씨가 깔구랭이를 치켜들고 막 소리를 지른다.
"그거참 형님도, 뭐 부역 오래 하는 것도 아니구 한나절 모여서 이렇게 청소하고
치우고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수리조합 이야기도 하고 그럼 좋잖여. 얼굴보고 그럴
라고 하지 뭐. 그게 머 대단한 일이라꼬 이렇게 목청을 높이 쌌소"
"아니, 목청 안 높이게 됐냔 말이지. 그라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작년에 논에 물
좀 댈라면 모터 꺼버리고, 새벽에 좀 일찍 퍼 주덩가. 그라면 새벽 일치그니 물 대놓고
다른 볼 일도 볼 수 있잖여. 이거 물 한번 댈라면 한 나절은 꼬박 붙어 있어야 하고,
그나마 내 논에 물 좀 들어가나 시프면 고만 물이 딱 끊겨 니미 그럴라면 말라고
수리조합이 있는겨"
서로 한 마디씩 거들어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걸 아지매들이 거들어서 가라앉힌다.
어지간히 떠들었나 싶어서 건네 주는 박카스 한 병마시고 깔꾸리 질질 끌면서
집으로 오는데 논둑비얄로 쑥이 많이 컸다. 저걸 퍼뜩 쇠기전에 뜯어 쑥떡을 한번
쪄 먹어야할낀데..
마음이 급하니 집에 가자마자 칼 하나에 꺼먹 봉다리 하나 챙겨들고 쑥 뜯으러 나선다
뽀얀 쑥들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모동모동 모여 앉았다.
하나하나 뜯고 있으니 지나가던 꼬부랑 할무이가 날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그래 뜯어서는 해 넘어가네, 그냥 쥐어잡고 썩썩 비 가지고 가야 많이 뜯지. 그냥
아무렇게나 뜯어서 봉다리 넣어가꾸 가 집에서 다듬어 그게 훨썽 편해. 어느 천년에
한 봉다리를 다 뜯을라구 그래"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걱정이다.
그걸 뜯어와 다듬다가 병원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담날 와서 다듬을려니 아주 조갑증이 난다
쑥 한봉다리를 네 시간이나 다듬었으니 손톱은 쑥물이 들어 쌔카맣고 뿌랭이를 손톱으로
잘라 냈더니 끝무렵에는 욱신욱신 아프기도 하다. 이녀르 쑥떡 안 먹어도 살 수 있는데
왜 이리 유난을 떠나 몰라.
그거야 이유가 있지..
친정엄마 아부지가 쑥시루떡을 참 좋아하시지
나도 다른 떡은 별로 안 좋아해도 이 떡은 참 좋아하지
많이 해서 친정도 나눠먹고, 병간호 해 주시는 형님도 서울 가실 때 좀 드릴라구
이런 저런 욕심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
그러나 뭐..일년에 한번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어제 시루떡 너되해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니..부자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