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은수저

황금횃대 2004. 10. 28. 09:09
십년쯤 됐나? 시고모 큰아들 장개가면서 고모님이 아버님 어머님 쓰시라고 은수저를 기념품을 보내셨더랬지. 복복자가 수저 끄트머리에 새겨져있고 붉은색과 푸른색이 새긴 글자에 메워져있는. 일테면 상감이야 하하하

 

 

그걸 어머님은 또 뭔 귀한 거라고 아버님 푸른색 한 벌, 그리고 붉은색은 아들인 고서방 몫으로 남겼다.
그걸 한 수저통에 꽂아 놓고 십년쓰다보니 수저의 끄뜨머리 색상이 많이 바래 이젠 조금씩의 빛깔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번은 고스방이 숟가락 찾기 귀찮다면 똑같은 수저를 열벌 사가지고 와서 아버지 수저만 남겨놓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스뎅 수저로 먹도록 해 하였다
그 후론 굳이 자기 수저 찾겠다고 눙깔 뒤집을 필요가 없이 뽑으면 내 숟갈이요, 내 젓가락이다. 물론, 고서방이 쓰던 붉은 색 은수저는 보관용 수저통에 담겨 씽크대 윗쪽으로 올라가고.

 

 

얼마전 녹즙기에 마늘을 가는데 마늘이 롤러 사이로 잘 안들어가 위에서 급하게 마늘을 쑤신다고 붙잡은 것이 해필 아버님 숟가락이였는데 그게 내가 행동을 민첩하게 하지 못해 숟가락 몽뎅이가 고만 스쿠류에 딱 끼여서 같이 돌아갔다. 그 숟가락이 스뎅숟가락이였으면 뭐가 절단나도 절단이 났을건데 은수저가 되놔노니 같이 굽어서 들어간 것이다 급히 스취치를 정지시키고 뺄려고 혼자 용을 용을써도 안 빠져 나온다. 아이고 이 꼴을 어머님이나 고스방이 보면 또 걱정이 늘어질 것인데 싶어서 혼자 스위치를 넣다 말다 별짓을 다해도 숟가락이 꽉 끼여서 꼼짝을 안한다.
이제 기계도 고장나고 아버님 숟가락 물어내게 생겼다 싶어 땀을 질질 흘리는데 어랍쇼 역회전 스위치가 있다 그걸 누르니 숟가락 몽뎅이는 뒤로 빠져나온다 헐..근데 숟가락이  이렇게 됐다

 

 

 


 

플라이어를 가져와 꽁지를 바를게 펴네 어쩌네 해도 스크류가 감아부친 꽁지는 좀처럼 원상회복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잔머리 굴린다는게 얼른 씽크대 윗칸에 있는 남편의 숟가락을 내려 놓는 것.

꾸부러진 숟가락은 깊고 깊은 산 속 옹달샘옆에 쥐도새도 모르게 감춰두고 흠, 흠.

 

바꿔치기한 숟가락은 아직도 발각되지 않고 그냥 아버님 걸로 쓰고 있는데 저번에 아버님 병원 다녀오신 이후로 젓가락 쓸 일이 없어졌다.

아버님이 당뇨가 있어 잇몸이 망가지기 시작하여 치아는 물론이고 좀 버텨주던 이빨들이 우수수 빠져버렸다. 이젠 무슨 음식이든 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새로 틀니를 해서 넣었지만 덜거덕 거려서 요즘 매일 국을 끓여 거기에 밥을 말아 천천히 드신다. 야채니 뭐니 아무것도 이로 씹어서는 못 드시니, 아버님 틀니 하시면서 새큼한 배추 김치를 먹어야지..하는 꿈을 얼마나 단단히 꾸셨는데 잇몸이 제대로 아물지 못하니 틀니를 해도 아파서 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 국물과 밥. 이 두가지가 필수이고, 물김치에 도토리묵...이렇게 무른 음식만 드실 뿐이다. 하루는 생선을 뼈를 발라 조려놓고 드시라고 젓가락을 꺼냈는데 어랍쇼...은 젓가락이 금젓가락이 됐다. 그 이유는 젓가락을 안 쓰고 그냥 수저통에 오래 꽂아 두었더니 변색이 되어서 그렇다. 어머님은 어쩌다 아버님 숟가락을 보시면 수세미로 얼마나 매매 딲아 놓으시는지 그야말로 흰 은빛이 눈이 부시도록 닦아 놓으셨다.

 

깜짝 놀라 젓가락을 싹싹 닦아서 얼른 놓아 드리긴 했지만 마음에는 한정없이 쓸슬한 바람이 분다. 먹는 일이 즐겁다함은 송대관이 나와 선전하는 씹는 맛에 있을터인데 그걸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하시겠는가.

 

그 이후로 젓가락은 또 수저통에 꽂혀 있기만 하는 존재로 되고 말았지만 사람의 일생이란게 꼭 저 젓가락 같아서 부로라도 이즈음은 젓가락을 반짝반짝 닦아 놓게 된다. 쓰임이 있건 없건간에...윤이라도 나면 영 저를 내친 것같은 기분은 들지 않을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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