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보약

황금횃대 2004. 11. 2. 10:55
-몸이 예전같지 않아

-그럴수 밖에요 나이를 묵는데

-아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여편네가 말귀를 못 알아 들어

'제 속에 들어 앉은 말귀를 내가 어떻게 다 알아 듣는단 말인가. 수천 수만가닥의 말귀를 다 알아 먹고 살라믄 그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일터인데. 부부간에는 적당히 못 알아 먹고 넘어가는 구석이 있어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수가 있는겨' 목 울대까지 이런 긴 항변이 쑤시고 올라 오지만 꾸욱 참는다.

-밖에 가 내 차 운전석 사이드 옆에 보면 일요신문 낑가놨는데 그거 좀 가져와 봐

-그건 머할라고?

-갖고 와보라면 갖고 올것이지 말이 많아

'팽, 말 많은건 누군데 나보고 말이 많티야?'

가져 온 일요신문 서너 페이지를 넘기니 00박사의 성크리닉이 한쪽에 있다. 작은 네모 안에는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깨어진 사랑마크와 남녀의 간단한 형상 그림이 있다.

<오랄로 밖에 발기 할 수 없다면 당신도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

내용이야 그렇지 사십 후반을 넘어서 오십 가까이 된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인데 나이가 들어 갱년기 장애가 오면 발기부전이라든지 아니면 뭐인가 젊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정까지의 시간이라든지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데 언제나 읽으면 자신의 경우와 비교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잘 읽어 봐 쪼뱅아
-이 사람들 원래 이런 거 써서 원고료받고 하는 사람들이라요 이게 당신과 뭔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햐, 이 여편네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가 오밤중에 니한테 이걸 왜 가지고 와서 보라고 하겠나 다 내하고 상관이 있으니까 갖고 와서 보라는 말이지
-끙....

남편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조금 오래 되었다. 혈압이 높아도 혈압약 복용을 미루어오다가 지난 칠월 건강검진 이후 먹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 들이면서 매일매일 일어나자마자 혈압약 한 알을 입안에 넣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어디서 들었는지 혈압약을 복용하면 성기능 저하가 오기 쉽다는 정보를 입수했나보다. 그 정보라는게 모두 차 안에 승객들이 놓고간 일요신문내지는 스포츠신문, 혹은 사건과 실화라는 잡지책의 귀퉁이에서 읽고 알아 낸 것이다.
건강노파심이 심한 남편은 어디서 누가 무엇이 몸에 좋다면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그 먹거리들을 사 들이기바빴는데 정작 자신은 그것을 잘 먹지 않았다. 그 먹거리들을 갈고 조리해서 먹는 사람은 언제나 아버님과 어머님이였다. 그런 그가 혈압약을 먹자마자 어디선가 읽은 기사가 생각났고, 자신의 나이는 생각지 않고 어쩐지 힘이 없는 자신의 그것이 다 혈압약 복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을 짓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남자 대부분이 그런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지론에 따르자면 남자는 자신의 고추에 힘이 있고 없고에 따라 인생이 살아 있는건가 죽은 건가를 가늠하는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뭘 그럴까바요 다른 가치관으로도 얼마나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것이 서고 안 서고를 가지고 인생이 끝장나고 안 나고가 판단이 되겠어?
-어허, 모르는 소리. 아무개도 그렇고 아무개 여편네도 바람이 났는데 알고 보니 남자가 그렇다더군. 다아 이유가 있지 그렇게 된데는 제아무리 날고기는 놈이라도 여편네가 그것에 만족을 못하면 말짱 꽝이야
늘 이렇게 제 고추의 힘 있음을 과시하던 남편이 자신이 어쩌면 그런 처지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 잔뜩 긴장을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였다.
그 밤중에 내가 잠옷바람으로 썰렁한 공기를 밟아 신문을 가져오게 된 이유인 즉

나락 타작을 끝내고 그것을 볕에 말려 종일 휘젓고 다니다가 저녁에 서른개정도의 나락 푸대를 아랫채 들마루에 들어 올렸다. 사십킬로그램 나락 푸대를 사단으로 쌓아 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여서 그걸 하고 나면 손가락 마디도 아프고 덧정이 없어진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들어와 새로 한시까지 티비를 보다가 들어와 한참 잠자는 나에게 요구를 하면 내 인상은 저절로 찡그려지게 마련이다. 아, 할라믄 쫌 일찍 들어와 하덩가 이말을 몇번이나 남편의 귀에 못박히도록 했지만 그의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질 않았다.
그 날도 한시가 넘어 방에 들어와서는 썰랑한 다리를 갖다 얹으며 속옷을 내리는데 잠결에 내 말이 무의식적으로 아이고 싫어라..하는 방향으로 한마디를 하게 된것이다. 그러자 남편은 세상에 두번 보지 않을 표정을 해가지고는 돌아 눕는 것이다. 그런 표정을 보니 순간 쏟아지는 잠이 화악 달아난다. 여편네가로 시작되는 서운하고 노여운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것이 아니고...하며 사태를 파악한 내가 그 한 마디 "으으응"에 대한 억양의 해명을 시도한다. 그래도 마음이 상할대로 상한 남편은 제 심기의 불편함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쌩파리 좆마냥 엥도라져있다. 참 암담하다. 뒤늦게 둘러대는 내 변명도 씨알이 먹히지 않고, 어쩌나..하는 불안감과 이거 이런식으로 질들이면 안되는데 싶은 불안감도 작용하고, 이 씨발, 내가 뭐 저 종이여? 맨날 내가 수그리해야하고. 입으로는 당신의 심정이 그런 정도인지 몰랐다고 아부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더럽고 치사한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렇게 치사한 꼴을 보이며 살아야하나..그러다가도 한편으로는 덜컥 겁도 나고...저렇게 자신감이 없어지만 마음의 부담감이 커져서 그 물건을 영 못쓰게 되면 어쩌나..하는 (생기기야 차암 잘 생겼지). 결국은 내가 미처 마음을 못 써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그 물건에 힘이 생기는 말을 귓속에다 조근조근 퍼부어 대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비풍초칠 화려한 개인기를 다 발휘해서 만족을 향해 같이 가는 것이다.

-나도 보약이란거 함 먹어 볼까?

-엉?

-그거 먹으면 좀 나아질가 싶어서


(이씨..보약먹고 싶으면 걍 먹고 싶다고 할 일이지 뭔 오밤중에 일요신문까지 대동해서 분위기 심각하게 만드냐 이 싸람아. 어쩐지 속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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