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동맹 여편네

원래..

황금횃대 2007. 8. 29. 21:21

대전 광역시 중촌동 선병원 3층, 동관과 서관을 연결하는 통로의 시작 부분에 놓인 이 컴퓨터는 100원짜리 전용 유료 컴이다. 그런데 우예된 셈인지 동전 넣는 구멍에는 미처 내려가지 못한 동전과, 하나 더 넣어서 걸린 동전을 내리기 위해 무리하게 집어 넣은 동전이 톱니처럼 맞물려서 동전 만큼의 시간이 경과하면 저절로 동전을 새로 더 넣으시오 하는 문구를 모니터에 떠올리는 기능을 상실했다.

언젠가 딩씨 성을 가진 옛 얘인(애인이 아님)은 가마우지 사랑에 대해서 A4용지의 1/4이 되는 편지를 써 보낸 적이 있다.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사냥(사냥이란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하는데 어부가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매서 굶주린 가마우지를 날려 보내면 가마우지는 배고픔에 물고기를 물어 올리지만 그걸 삼키지도 못하고 결국은 뱉어 낸다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사냥에 나서야 한다는 뭐 그런 쪼매 슬픈.

나는 그 때 그 편지의 결말은 자기가 가마우지와 같은 슬픈 사랑을 한다는 것으로 읽고 이해를 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 내용이 아닌 것 같다. 자기의 사랑은 삼키지도 못하는, 그래서 뱉어 낼 수 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복선. 아님 말구.

 

병원의 저녁은 괜히 부산하다.

일일 연속극이 끝나면 공영방송의 뉴스 시그널 음악이 요란스럽게 울려 나오고, 동안 숨 죽이고 화면을 바라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문을 열어 환자의 상태를 물어 보거나 이불을 덮어 주거나...그리고 간호사들이 마지막 주사를 놓기 위해 쟁반을 들고 환자의 링거줄에다 주사기를 꽂아 쌌는다.  나는?

 

내 뒤에는 이 컴이 공짜인지 모르는 방문객의 아기들이 줄줄이 서서 내가 그만해 주길 기다리는데 흐흥 내가 쉽게 자리를 비켜주진 않지. 나는 이 컴의 동전 투입구가 목 졸린 가마우지처럼 동전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상태라는걸 알고 있거등. 그래서 언제까지나...내가 꼬고 앉은 다리에 쥐가 날지언정 쉽게 비켜주지 않을 것을...

 

아, 바깥에 나가서 비 오는 거 보며 편의점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 할 수 있으면 내 저 꼬맹이들에게 컴을 양보할 마음이 있는데...그대들은 오늘 밤 내 소망하고 같은 소망인지... 어떠셔?

 

 

 

 

'탁주 동맹 여편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거운 나으 집  (0) 2007.09.07
열흘째..  (0) 2007.08.31
일상  (0) 2007.08.21
기록  (0) 2007.08.09
일상  (0) 2007.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