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하늘이 내린 복

황금횃대 2007. 9. 3. 22:12

대전 중촌동 선병원 33병동 348호에는 다섯명의 환자가 있다.

젤 연장자는 87세, 그 뒤로 86세의 아버님이 뒤를 따르고, 그 담이 72세의 할아버지, 사흘전 옆 병실에서 옮겨온 67세의 스님, 문 앞 병상에는 50세의 아저씨 순으로 환자들의 신상이 밝혀졌다.

 

87세 할아버지는 대장암 수술, 아버님은 갈비뼈 골절, 그 담 할아버지는 전립선비대, 스님은 급성 간염, 젊은 아자씨는 위암 수술 후 항암 1차 치료중이다.

며칠 동안은 그냥 아모 연관 없이 자신의 병상 주위에서 움직이다가 사나흘 지나면 약간씩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오게 된다. 그러다 경계 내에서 음료수가 한번씩 돌고,  그 다음에는 과일이 돌고, 그 다음에는 간병인들끼리 식사도 모여서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10분이내에 그집 삼대에 걸친 사연들이 확 드러나게 된다. 이걸 알게 된것은 일이년 간병 생활에서 체득한 것이 아니다.

 

오늘은 스님과 사주팔자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스님이 내 생년월일을 말해 보라해서(재미로) 이야기 했더니 대뜸 날 보고 하는 말이 <일부종사>하는 팔자가 아니랜다. 아니 그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새는 뭐 그런게 흉이 아니니까 빠져 들지만 말고 적당한 선에서(?) 거시기 하면 된단다 ㅎㅎㅎ(이게 왠 하늘이 내린 복이란 말이야 글쎄 홍홍홍)

대장암 할아버지의 할머니는 내 사주 풀이가 끝나자 마자 당신의 아들 사주를 봐 주란다. 스님이 아이구 아니라고, 그냥 쉰소리 하는거라고 하니 그래도 할머니는 물어 보신다.

동짓달 아무날이라고 하니 스님이 대뜸 <남자 팔자치고는 몹시 드센 팔자>라고 규정을 지으신다. 딱 보믄 안단다. 그 할머니의 아들은 오십쯤 됐는데 아침이면 간병인과 교대하고 집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저녁이면 간병인이 집으로 간 사이 밤에 할아버지 간호를 위해서 오는데 그 때도 아들이 태워서 오는 것이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올라 온 날부터 어제 저녁까지 그 아들은 같은 체크 남방셔츠에 똑 같은 캬키색 바지를 입고 왔다. 내가 사흘째 그 옷을 입고 오는 아들을 보고 짐작키를 '아하, 저이는 지금 부인과 같이 살고 있지 않구나..'했는데 할머니의 말씀으로 그게 확인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올 때 비로소 다른 셔츠를 입고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림질한 흔적이 전혀 없다.

 

굳이 사주에 팔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의 입성으로 그가 살아가는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 살아도 물론 캬바레 제비처럼 다리고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혼자 사는 남자들의 차림은 어딘가 뺀지르르한 지름기가 좀 빠져 있는 느낌이다.

바람을 피던, 하늘이 내린 <일부종사 불가>팔자이든 부부중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왜 그리 후줄근해지는가. 그것참 이상한 일이다.

 

며칠 전부터 아버님은 잇몸이 부어서 틀니를 착용하실 수 없게 되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온 몸이 몸살을 앓으시는게다. 잇몸이 부풀어 무얼 씹어 드실수 없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일인가. 종합병원 치과는 예약을 해야 하는 관계로 당장 아픈 걸 치료를 해야하니 어떻게하나. 할 수 없이 휠체어를 끓고 길 건너 치과를 찾아 아버님을 모시고 갔다. 달리 치료는 없고 항생제 복용과 틀니를 빼 놓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하니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와서 드리는데 그게 빨리 안 낳으니 속이 상하신게다

 

일요일인 어제는 일껏 고아서 만든 쇠족곰국을 바쁘게 집까지 가서 가져왔는데 그걸 드려도 안 드신단다. 어머님은 뜨뜻하게 거기 밥 말아 먹어야 얼릉 낫지 왜 안 먹으려고 뻗대느냐고 전화기에 대고 나한테 뭐라 하시지 몇 번을 이렇게 드세요 저렇게 드세요 권유해도 쇠심줄 처럼 아버님은 끄떡도 안하시지. 잇몸이 아프시다면서 틀니를 빼 놓으시라니 그것도 안 하겠다고 눈을 질끈 감고는 내 이야기를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어찌나 부애가 나던지 나도 그동안 사근사근한 얼굴을 버리고 표정이 바로 굳어 버렸다. 속도 상하고 먹은 음식은 체하고 변비도 걸리고 위는 부어서 아픈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병원에 있는데도 아버님이 저러시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게다. 샤워를 하고는 좁은 간이 침대에 누워서는 혼자 부채를 펴들고 화닥화닥 얼마나 부쳐댔는지.

 

겨우 화를 진정시키고 잠이 들어 아침에 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참아서 가라 앉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곧장 내려가 타이레놀을 삼킨다.

편의점에 가서 달달한 과자도 사 먹는다. 화가 났을 때는 단 음식이 효과적이란 말을 어데서 주워 들은 듯 하다. 계속 죽만 드시다가 낮에는 밥을 해서 된장 끓여 드리니 곰국은 안 드시고 그걸 드신다. 그 와중에 어머님은 또 전화를 해서 곰국을 먹느냐고 물어 보신다. 전화기에대고 꽥꽥..."아버님이 곰국은 비위에 안 맞아서 안 드신데요"하고 고함을 질렀다.

아침에 하도 속이 상해서 고서방한테 전화를 해서 아버님이 그러신다고 꼰질르니 이놈으 서방좀 봐라

대뜸 하는 말이<그래서 어쩌라구>한다.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끊는다.

 

그러나 화를 간직하면 뭣 하겠는가. 그게 뭐 삼년 묻어 두어 황모가 된다면야 얼마든지 내 가슴 속에 묻어 두지. 풀자, 비우자....이렇게 마음 먹고 저녁 무렵에는 아버님 병상에서 의자를 멀찌감치 띄워 놓고 앉아서는 티비를 본다. 티비 보면서 스님하고 할매하고 이야기 한 내용이 저 팔자 이야기다.

자...어떤가. 화를 풀고 이야기 하다보니 저런 복있는 이야기도 듣게 되는거 아닌가...내 복에 크흐흐흐흐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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