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한껀 올리다

황금횃대 2004. 12. 8. 15:34
때가 때이니만큼 연말이 오면 괜히 불안시럽다
만고에 걸구칠거 없이 살자고 다짐다짐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여서
밤이 되어도 가라 앉을 줄 모르는 어깨 통증과 더불어
심사가 아주 뒤틀린 날들이 연이어 계속 되었다.
마치 펑펑 솟아 아랫도리가 시원할 정도로 하던 달거리가
이유도 없이 빤스 밑만 쪼매 무치고 하는둥만둥하게 할 때처럼
무슨 병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찝찝한 마음이 들때의 그런 기분같이
한마디로 아주 조까탰는데


겨울이라 12월의 문턱도 벌써 넘어섰건만, 이넘의 날씨는 꼭 미친개이처럼
따뜻하여 장꽝에 놓아둔 김치 한통을 시어 빠지게 하더니 드뎌는 동치미 국물까지
위협을 하며 나섰다.
애써 담근 것들이 쉬어터지는 이 판국에 스방은 반찬 타령이라.
오징어 국을 좀 끓이지 김치국이 뭐냐에서 동태찌개에 돼지고기고추장숯불구이가
먹고 싶네 어쩌네...이러구 있다

언제부터 어머님은 청국장을 띄우라그러시는데 그거 하기가 싫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제는 작정을 하고 콩 한 말을 물에 불려 놓고는 오늘 그걸 솥에 얹고는 가스불을
대어 놓다
가스불이라하면 가정용 가스렌지 이런걸 연상하기 쉬우나 가마솥(양은)에 콩 한말
삶으려면 그걸로는 하루가 꼬박걸리는 일이라 업소용 버너(그러니까 건강원에서 사용하는)
에 불을 붙여놓고 어제 장날 사온 도라지 오천원어치를 손톱이 아프도록 까고 나가니
어이쿠나 이무슨 일이야 난리가 났다.

콩물이 넘쳐서 물이 다 쫄아붙고 반경 십리 이내는 콩이 타는 냄새로 진동을 한다.
집 안에 들어앉아 그것도 바깥하고 제일 먼 부엌에서 도라지를 깠으니 냄새가
집 안까지는 들어오지 않아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
솥뚜꼉을 열어서보니 솥벽에 콩은 모두 까무잡잡하니타고 아이고 이를 어째..하며 바가지로
다라이에 콩을 퍼담으니 갑자기 버너 아래쪽으로 콩이 쏟아진다. 이 무신 일이고???

콩이 아래로 주루룩 흐르자 실체가 드러났다. 솥이 타다못해 녹아서 대지비만한 구멍이 났다
우째 이런 일이...세상에 불이 너무 세었던 모양이다. 어머님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내 하는 꼴을 보고 있다. 얼마나 지청구 한 마디 하시고 싶겠는가
밑으로 흘러내린 콩을 몇번이나 물을 갈아대며 헹궈낸다. 한 구석이라도 탄 콩은 쓸어다가
황소 구시통에 부어놓고 결국 두 솥에 나눠 다시 끓인다

가마솥 안을 들여다 보니 처참하다. 콩이 그래도 붙어 있어 볼라고 한쪽은 타고
한쪽은 노랗게 익어서 붙어있다. 참 가관이다. 얼른 구석자리로 치워놓고 혼자 동당거리는데
고서방이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대뜸..이 무슨 냄새야

"콩이 탔지 모야"
"콩만 탔냐..솥 하나 다 처댔지"

기가 막힌가 고서방....기술자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이런다

소마구 구시에 웬 까만콩을 줬나 싶었더니만 그게 모두 탄 콩이구만.


끌끌...


(나의 끌끌거림이 영원한 끌끌거림이 안되도록 조심하란 말야 이 여편네야)




손도 발도 시리고 가심도 시리다고 <뜨거운것이 좋아>했더니
너무 화근내나게 뜨거워졌나벼 쩝.
솥 밑구녕 하나 둘러 빠지게 뜨거워지고 나니 그 동안의 우울은 오데로갔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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