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면 심심촌빨 날리는 이 촌동네에도 대문을 다 닫아 건다
밤 늦도록 서발 막대 휘둘러 대문빗장이 안 걸구적 거리는 집은 우리집 뿐이다.
타작을 해서 마당에 널어 놓았다.
멍석을 마당에 깔고 나락을 말리는 집도 촌구석에 우리집 뿐일게다
모다는 길거리에서, 혹은 농로에서 건조망을 펴고 나락을 말려서 들인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하면 누가 밤에 신작로 나가서 나락을 지켜야하는데 그걸 누가 지키느냐고한다
면민 모두 그렇게 말려도 나락 도둑 안 맞는데 우리 나락은 뭐 금티두리 둘렀나?
그러면서도 나락 쌓아놓을 곳간이 없어서 아래채 마루에다 둥개둥개 나락가마니를 올려 놓는다
다시 말하지만 새벽 두 시가 되어도 대문을 잘 안 닫는 집이 우리집인데 그럼 저 나락은 왜 해마다 무사하냐? 사람의 머리에 한 번 박힌 인식은 팔십이 넘어서 변하지 않는다.
지난 이 주일은 걍 병원 들락거리다가 시간이 다 갔다.
왔다갔다 할 때도 있었고 병원 보조침대에서 오글시고 잘때도 있었다.
아버님은 병원 침대 위에서 밤에 몸이 근지럽다고 벅벅 긁었다
자고 나면 내가 덮고 자는 아래쪽 담요 위에 살비듬이 한 바가지씩 떨어졌다.
계단쪽으로 담요를 들고 가서 툴툴 털면 내 몸이 근지러웠다.
그래도 아침 밥이 나오면 아버님과 병상에 붙은 밥상을 올리고 마주 앉아 눈꼽도 떼지 않고 밥을 먹었다. 병원 반찬이 맘에 들지 않는다하여 청국장을 끓여대고, 쪼구새끼를 쪄서 살을 발랐다.
환자식판 위에 얹힌 반쪽짜리 사과는 내가 먹었고, 신부전당뇨식으로 나온 무염 반찬도 나는 잘 집어
먹었다.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는것도 아닌데 나는 병원밥을 너무 잘 먹었다.
나는 그저 비위가 약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여 비위가 강철처럼 강한 사람으로 진화되었나보다 <호모사피엔스비위조아스>라는 신인류의 기원이 혹시 내가 아닐까 ㅎㅎ
퇴원하기 하루 전날, 위내시경 검사가 있어 금식하고 링거액을 꽂는데 좀 서툰 간호사가 왔는가 아니면 아버님 엄살이신가 바늘이 들어가면 아버님이 아프다고 깜짝 놀래며 움직이는 바람에 두 번을 새로 꽂았다. 세 번째 시도하다가 아버님 고함소리에 혼이 빠졌는가 간호사가 다른 선생님을 보낼 테니 조금 있다가 맞으라고 얘길한다. 나는 옆에 앉았고 아버님은 "가시나들이 서툴면 좀 잘 하는 사람을 보내든지 하지 놓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찔러싸서 아파 죽겠네"하시기에 "아버님 바늘이 살 뚫고 들어 가는데 안 아픈 사람이 어딧어요 조금만 참으시면 괜찮아지는데 막 움직이시니까 혈관이 도망가잖아요"하며 내가 그정도도 못 참느냐는 의중을 담아서 한 마디 했다. 그러고 조금 뒤에 서글서글한 간호사가 와서 아버님을 달래며 다시 링거액을 꽂았다. 간호사가 달래는 말에 아버님은 어린아이처럼 우신다. 아이고 내가 참 민망해서리..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주 흐느끼며 운다. 그 심정 이해 못하는바는 아니지만, 양쪽, 앞쪽 환자들은 모두 암환자라 아버님보다 훨신 더 아프고 못 먹고 그래도 아픔을 참고 밝게 지내는데 아버님은 아픈곳도 없으면서 그저 바늘 꽂는게 아프다고 운다.
링거액을 다 꽂고 간호사가 나가면서 날보고 할아버지 좀 달래 주세요..하는 눈짓을 보내는데 나는 그냥 간호사에게 슬쩍 웃어주기만 하고 아버님 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을 우시던 아버님 바깥으로 나가신다. 나는 매정하게 뜨게질만 했다.
어제 나락타작을 하면서 새참 챙겨주고 병원으로 가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집에 오니 어머님은 아버님이 못 먹어 병이 난 것처럼 짭쪼름한 반찬을 몇가지나 헉헉거리며 해 놓았다.
작은집 동서가 선지국을 끓여다며 작은 냄비에 가져다 놓았는데 아버님만 드리란다
어쩌나 볼려고 어머님도 떠드리니 되갖다 부으신다. 어머님은 안 드신단다. 그러면서 시동생이 오니까 그 선지국을 떠서 주란다. 먹어 맛이 아니고 그깟 선지국 못 먹으면 내가 죽냐 싶으다가도 어찌저리 당신 남편에 아들만 귀하게 생각하는지 혀를 끌끌 찼다.
반찬 한 가지라도 더 해서 밥상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나는 영양가 많은 멸치호두볶음과 아삭고추, 그리고 시래기국에 콩장으로 밥 한그릇을 먹는다
속으로는 그냥...오냐 그누무 선지국 느그덜끼리 많이 묵어라 함씨롱 씩씩 욕을 했다
이런 말하면 내가 좀 추잡스러워지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매한 인격도 가끔은 금이 찡그렁 갈 때가 있나니...ㅎㅎㅎ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호모사피엔스비위조아스라는 신인류가 아닌가.
<호모사피엔스비위조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