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흰빛을 동경하더니 눈이 나리었다
바람이 몹시 불어 문풍지가 밤새 떨었지만, 님 오는 기척은 영 아니 보였다
벗은
감나무 마른 가지가 삭풍에 아리듯 흔들리니
단단한 어린 잎눈들이 배냇짓도 멈추었다
얼어 붙은 눈길 위로 날리는 눈들이 엷게 쌓여
비단자락 쓸린 흉내를 낸다
너른 냇가에 얼음이 얼어 물길은 또 하나의 희고 맑은 길을 내 놓는다
방앗간의 피댓줄은 마른땀을 흘리며
돌아가고, 가래떡 뽑는 구멍은 뜨끈한 흰떡을
줄줄이 뽑아낸다. 아낙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돌아 그들이 흩어 놓는 웃음도 붉은 석류빛이다
길가로 내어 놓은 연통에는 씩씩한 김들이 뿜어져 나오고
몰아치는 바람에 연기는 갖가지 모양을 비틀며 하늘로 흩어진다.
먼
산은 백설을 이고 차분히 가라앉았다
길가에 내어 놓은 설 상품들이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난다
티밥튀우는 발동기는 탱탱탱 소릴내고
깡통마다 나란히나란히 담긴 하얀 쌀들이 추위에 바스라질듯 움츠린다
뻥이요!
흰튀밥이 이팝꽃처럼 망태기에 쏟아지고 한줌 집어
먹으면 달싹한 맛과 따뜻한 기운이
입 안에 가득하다. 추워도 따뜻한 풍경.
설이 오는 길목에는
강정도
바쁘고, 두부를 짜는 손길도 바쁘고, 비지를 띄우는 구둘목도 바쁘다
고향으로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촌로의 곱은 손길은 더욱 바쁘고
그들의 마음은 단내가 나도록 애가탄다
무엇을 먹일까, 무엇을 싸 보낼까, 손주놈들은 얼만큼 컷을까
하루해는 이런 걱정들로
뼘가웃씩 짧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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