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발렌타인데이

황금횃대 2008. 2. 14. 22:06

 

 

오늘이 그 시끌벅짜한 발렌타인데이랍니다.

아침에 어머님 약타러 김천 병원을 가는데 버스 두 구간 정도를 걸어가요

운동겸 뭐 찬바람도 쐴겸, 겸사겸사

툭툭한 잠바에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주머니 손 넣고는 걸어가면 괜히 뿌듯해요

택시비 천 팔백원 아끼는것이지만 실제적 돈의 가치보다 마음이 더 뿌드득해요 ㅎㅎ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이런 시도 외어보죠

 

호주머니/윤동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양쪽 주머니에 거칠고 큰 손을 하나씩 넣고는 주머니가 비잡도록 꾸셔넣어요

주먹 쥔 손을 궁글리면서 갑북갑북 욀 때엔 운율에 맞춰서 이리저리 귀퉁이로 찔러도 보고요

나이 마흔 여섯에 허는 짓은 맨날 아홉살이여.

내 아홉살 때는 초딩 삼학년짜리였세요

담임 새임 성함은 유영숙 새임이셨세요. 좀 마른 몸매에 성질이 불같으셔서(여자 샘이신데) 호랑이 같이 느껴졌어요

하루는 체육복을 입고 가야 하는 날인데 학교 가다 봉께로 그게 생각이 나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와 하얀 체육복을 갈아 입고

학교에 가니 지각이여. 다른 애들은 공부하는데 내 혼자 유리창에 매달려 창문 유리를 닦았세요

그 공포스런 마음하며...뒷문에 손을 대고 문을 열 때, 모두 내 쪽으로 뒤꼭대기를 돌리며 돌아보았세요

지금은 뭐 뻔순이가 다 되서 그런 상황이 오면 한 번 야단맞고 말지 뭐..하겠지만, 그 땐 정말로 숫기도 없고 얼마나 여렸는지 선생님이

뭐라 하시면 달구똥같은 눈물만 뚝뚝 떨궜재요. 혼자 유리창에 올라가 유리를 닦는데 눈물은 뚝뚝 떨어지지 유리는 닦아야지

유리가 흐린 건지 눈물 땜에 내 눈이 흐려진건지...그 때가 아홉살 때였네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열살씩 먹었으니..쩝.

울 엄마가 정월 초 이랫날(음력) 날 떡 하니 낳았잖여. 그래서 한 살 일찍 학교 들어갔세요.

한 살 적은 여식애가 호랭이띠하고 같이 놀려니 얼마나 부댔겼겠어요. 그래도 차츰 학년 올라가면서 고무줄 놀이만은 끝내주게 잘해서

나는 에핀달래(경상도에서는 그렇게 말해요)가 되서 어느 팀이 하던 무조건 뛰어주었어요. 고무줄 하다가 죽은(고무줄에 걸려 아웃되는 걸 죽었다고 했어요^^) 애들이 있으면 걔네들걸 다시 내가 첨부터 끝까지 해서 살려주었어요. 다섯명 죽으면 다섯명 다 살리고. 그렇게 살려 놓으면 한 단계 높은 과정으로 넘어 갔지요. <가랑잎 타박타박 엄마 무덤 찾아서 엄마 엄마 불러 봐도 대답이 없어 그리운 내고향을 찾아 갑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며 찰랑찰랑 고무줄을 넘어 댕겼재요.

또,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파리바게뜨 빵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가게 안에 빵은 없고 전부 상자들만 쌓여 있는거라

아하..오늘이 그 날이구만. 초컬릿 신이 내린다는...

 

상민이는 회곤이 준다고 초컬릿 상자를 만들었어요

가마히 보면 상민이는 공부보다 이런 거에 더 소질이 있습니다. 어마이 닮아서 그런가 ㅎㅎ

 

 

 

 

상자 만들고 호박세스 펄구김지 사다가 접고, 바람개비 장미 접고, 진주 붙이고..허, 참 일이 많습니다.

자그만치 저 호박세스 안에 121개의 키세스 초컬릿이 들어가 있어요

즈그들 만들고 남은 걸로 나도 고스방 것을 하나 만들었어요.

우리 같이 늙은이는 저런거 벨로 안 챙겨도 되는데 고물이 떨어져 있어서...ㅎㅎ

딸래미 만들고 남은 찌끄래기로 금방 만듭니다.

 

 

 

 

 

고스방 밥 먹으러 들어 오길래 쪼르르 달려가서 발렌타인 선물이라고 전해줬더니 맞은편 쇼파에 휙, 집어 던지는거라

다시 집어서 갖다 내밀며

"이쁘잖아요 차에 가져가서 앞에다 갖다 놓지..."하고 은근히 바라보니 손으로 휙 밀어내며

"야, 그런거 올려 놓으면 쪽. 팔.려!"

에잉 닌장맞을...

 

저녁이나 잡솨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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