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2월

황금횃대 2008. 2. 1. 19:11

 

 

이 달력은 언제 만들었는지 몰라요. 아마 칠년 전에 만들었을거라요

그러니까 2001년에 만든 달력이예요

세월이 참 빠르죠

칠년이란 세월 동안 나는 글씨체도 안 바뀌고 살았으니.

오늘 아침에 아버님이 식사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세요

오늘이 섣달 초하루지?

아니 아버님 오늘이 섣달 그믐이면 엿새 뒤가 설날이게요?

그럼 오늘이 섣달 그믐인가?

섣달 그믐이면 내일이 설날이잖아요

대답을 부지런히 주워 섬기고 난뒤 아차 하는 생각.

 

저번에 대전 선병원 MRI촬영실에 잠깐 대기중에

한 할머니가 엠알아이 촬영 하기 전에 문진을 하는데

거기에 내용이 날짜에 관한게 있었다.

순간 그 생각이 퍼뜩 들면서 아버님을 다시 바라보았는데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 진지를 잡수신다.

 

나는 가만가만 짐작만 하고..있지.

 

 

오늘은 상촌장이래요

상촌장은 하룻날, 여샛날, 그래요

상촌 양주골 아지매가 블로그하는거 좀 가르쳐달라고해서 오후에는 거길 갔어요

영동에서 시작된 케이티엑스 터널을 기차가 치고 들어가면

처음 빠져 나오는 곳이 양주골 동네 입구래요

거기서 두시간 주끼다가 상촌에서 버스를 탔세요

아마 이 버스는 상촌이 종점인모양이여

버스에 올라타니까 기사 아저씨가 버스 바닥을 밀대로 깔끔하게 닦아 놨세요

물 자욱이 아직 아직 채 마르지 않았어요

나보다  먼저 한 아줌니가 타고 있고 그 다음에 내가 타고

다음에 저 장꾼 할머니가 오늘 팔고 남은 채소를 보따리보따리 동여서 버스에 올립니다.

할머니의 외투에는 가죽주머니가 달려있고

반들바들 손때가 묻어서 저 옷이 수십년의 겨울을 견뎠음을 알 수 있었재요

아저씨는 할머니가 억지로 꺼 올린 케리어를 기사 아저씨가 오더니 꺼 내려요

할머니가 깜짝 놀래서 질질 매달려갑니다.

"와 이카노. 이거를 와 자꾸 끌고 가노"

"아따 할매, 여기 발통에 흙 묻은거 보소. 내가 그거 털어서 다시 올릴팅게 걱정하지 마이소"

"그거 묻은기 뭐 어떻다고 궁시렁궁시렁"

발로 발통을 굴려 눌어 붙은 흙을 떼낸 기사가 케리어를 실어줍니다

"할매, 어디 사시능교"

"황간 살재"

"아..맞다. 전에도 할매 내 차 뒤로 타면서 돈 안 내고 내린 적 있지요"

"내, 돈 안 내고 탄 적은 없는데.."

"없기는요, 그 때 할매가 짐 많다고 버스 내리는 뒷문으로 짐 올리고는 내릴 때 주는가 싶어 기다릿디만 그냥 내?잖아요"

"아이고, 내가 정시이(=정신이) 없어서 그랜나보네."

"그때 할매가 돈 안 내서 내가 돈 무라(물어)였구마"

"하이고 내가 참 정신을 어따뒀는지 모르겠네 (그러면서도 연신 내가 차비는 꼭 주고 타는데..)"

그러면서 버스는 해 지는 촌길을 달린다

 

 

그러다 수동 어디쯤 와서는 길 가에 차를 세우고 아저씨는 둥구나무 밑 수도가에 가서 밀대를 씻는다

차 속에 앉은 사람들은 그냥 차 안에서 아무 말없이 시간을 견딘다.

밀대 물을 줄줄 흘리며 차에 올라 타며

"밀대 빨기는 여기 물이 최고여 히히"

동네 회관에서 놀다가 저녁하러 집으러 가는 동네 아지매가 그걸 보고는

"아이고마, 물을 쫌 짤아서 각고 올라가야지 그냥 들고 가만 우야노"

"아입니더. 여기 발판도 물을 좀 묵어야하니까 여기 얹어 놓고 쪼매 가다가 옮기노만 되요"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도 우리는 견딘다.

해는 부대 뒷산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고

매곡면을 지나고, 경부고속도로 밑을 지나서

황간에 이른다.

 

황간 주차장에 도착하니 뒷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부시럭부시럭 곱은 손으로 봉다리를 만지니

"할매 퍼뜩 내리소 짐은 내가 들어 내라주께"

키가 멀대같이 크고 눈이 왕방울만한 기사아저씨는 가뿐하게 보따리들을 주차장에 내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운전석에 앉는데

주춤주춤 할머니가 앞 문으로 다시 올라온다

"할매 와요?"

"이거..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랜나봐. 미안해"

꼬깃꼬깃 저번에 못 냈던 차비가 아저씨의 손에 쥐여진다.

"에이..미안쿠로 할매"

"내가 더 미안해"

 

시간은 느리게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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