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시집살이

황금횃대 2005. 3. 6. 16:10

 

<1>

 

 

너그 아부지는 장질부사라나 그기 걸리가꼬, 사람이 설사를 하이까네 힘다구가 하나도 없는기라. 자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죽어나가제 증말로 무서운 세월이였지. 밥이든 뭐든 묵기만 하면 밑으로 좔좔 쏟아내니께 뭘 묵을 수가 있나. 아침상 물려 놓고 방에 오면 느그 아부지 내 무릎 비고 누웠는데, 바로 방문 앞 쪽마루에서 까마구가 날아와 까악까악 울어싸앗지. 정말로 사람 환장할 노릇인기라. 동네 사람들 느그 아부지 다 죽는다 캤는데 그래도 살아 남아서 이날 이때까지 살아서 가치 사네.

 

 

열일곱 봄날에 날 받아 놓고 그 해 동짓달 시집 가는 날까지 울었어. 그 식구 많은데 가서 우예 살꼬 싶어서. 그래도 사람 목심이 모진기라. 날이면 날마다 울면서 살았재. 집 앞으로 기차가 지나가면, 그냥 눈에서 눈물이 쭈르륵 막 흘러. 그래, 앞치마로 훔치고 있으면 느그 아부지가 와서, 그렇게 집이 조으만 고만 꺼대가라고 막 고함을 지르며 밀어 내. 그러면 나는 안간다고 작은 문에 다리며 팔이면 벌려서 버팅게를 해서 버텼지. 참 그 때만 해도 사람이 어리석어서 시집 가면 그 집 문지방 못 넘어보고 죽어야 되는 줄 알았지.

 

 

벼락시러분 시어무이하고, 호랭이 시할무이까지 참 어린 나이에 어떻게 말도 못하고 그 시집 살이 다 했어. 호랭이 시할무이는 얼마나 무서운지 집안 삽짝 끝에 디딜방애가 있었는데, 동네 여편네들이 할무이 있는가 없능가 삽짝끝에 살모시 들어와서 눈치를 살피다가 할무이 소리가 나면 얼매나 똥줄이 빠지게 도망을 가던지. 그 시할무이 보는데서 사기그릇이라도 하나 깨바 그거 갖다 버리지도 못하고 우물옆 흙담배락 밑에 놓아 두고는 볼 때마다 그럭 깨 묵었다고 지청구야. 그럼 저걸 눈에 안보이는데 치워 놓아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또 난리가 나지. 그게 겁나서 어데 그럭 깨지면 아모데나 버리지도 몬했어

 

 

밥상은 왜 그렇게 채리 묵었나 몰라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들, 시동생, 아이들 다들 각자 상을 봤지 모야 . 두레판으로 겸상을 봤으면 좋았을 것을 뭔 내외를 한다고 다들 밥상을 따로 받아 먹었어. 작은 상에 반찬이라꼬 조금 만들어 놓으면 이 밥상 저밥상 찢어 발기면 뭐 우리한테는 돌아 오는것도 없고. 보리등겨로 죽을 끓여 놓으면 시동생이 이랬어. 형수님요, 한 그릇은 그럭저럭 먹겠는데 두그릇은 도저히 안넘어가네요 그 보리죽에 호박잎 한오큼 뜯어와서 쥐어 뜯어 넣고 씨감자 할꺼 몇개 빡박 긁어서 채 썰어 넣어서 끓이면 좀 넘어가기가 수월헤.

 

 

아침 해 먹고 밭 좀 매고 나면 금시 또 점심해야지 그 더운 여름날에도 보리쌀 닦아서 보릿짚으로 불 때서 밥을 하면, 적삼이고 치마고 할 거 없이 홈빡 젖어. 오직했으면 한 철 입고 나면 치마주름 있는 말기가 다 땀에 절어 삭아서 척척 쳐저 내릿을까 참 굶어죽기 딱 맞은 세월이었어

 

아이들 가져도 낳기 하루전에까지도 새빠지게 일을 해야지. 막내 낳을 때는 그 전날까지 모심고 얼마나 봄에 일이 대근해? 그렇게 땡볕에 동동걸음으로 배불러 일하고 와서 또 집에 오면 밥해 먹어야지 모심고 그 담날 배가 아파서 주리틀고 아를 낳아 놓으니, 세상에나 이건 아이가 아니고 뭔 짐승같아. 몸에 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 팅팅 살껍데기가 불어서 쭈글쭈글한게 무시워라, 노랑털은 얼매나 많이 났는지. 아를 낳구서도 쳐다보기가 겁나. 참 그 때는 살까시프잖은 것이 지금은 젤 크고 덩치도 좋으니... 아이 낳았다고 조리를 하는기 어딧어? 한 삼일 누웠다가 그 담날 부터는 내 손으로 꿈쩍거려야지

 

 

<2>

 

 

요새는 참 여편네들 살기가 좋아졌지 빨래만 해도 그래 물색옷이 어디 있었나? 전부 흰 무명으로 옷 하고 이불 호청을 했지 불을 떼니까 이불이고 옷이고 끄을음이 묻어서 빨리 새까매지지. 수돗물도 없는데 큰 물에 빨래를 하러 가. 솥하나 니야카(리어카)에 싣고 장작 실어서 큰 물에 가면 얼음이 허언히 얼었어. 빨래 방매이로 팡팡 두두려깨면 얼음이 잘 깨지지도 않아. 빨래거리 담그고 적실 구멍하나 재우 뚤버각고 맨 손에 잿물 앉힌걸로 빨래를 다 하고 나면 손가락이 어디에 붙었나 째비도 아프지도 않아. 그저 얼얼하니 화닥화닥했더랬지.

 

이불 호청은 빨아서 잿물에 불때서 삶았어. 빨래 다 해서 한다라이 이고 집에 오면 또 볼쌀 닦아앉혀서 점심해야지럴. 호청 풀해서 말려 밤에는 다듬이 방매이로 팡팡 두들기 패서 밴질밴질하게 맹그러야지. 일도, 일도...시상에나..해도해도 끝이 없었어.

 

 

시어무이 바느질 솜씨가 참 좋았지. 보선 볼을 받아 놓으면 꿰맨 자국이 하도 이쁘고 솜씨가 고와서 시아버님이 아꿉다고 신지않고 개지고 놀았어. 뒷주무이에 가마이 넣어가지고 댕기셨지 닳으면 아꿉다고. . 그대신 성질도 별났어. 옛날에는 치마주름을 다 뜯어서 빨래를 했어. 그러군 다시 매만져서 치매주름을 다시 잡아 꼬매고 그랬지.

 

나는 위로 오빠도 많아서 올케들도 많고, 언니가 다 알아서 해서 바느질 같은거 겨우 배워왔어. 근데 시어무이 솜씨가 하도 좋으시니께 내가 한 것이 맘에 들지 않는거야 . 하루는 더운데 잠 안자고 치매 주름 잡아 바느질 해 놓고, 아침에 일어나 그거 갖다 드리니 주름모양새가 매음에 안든다고 젓가락을 땀새에 넣어서 확 뜯어버리시는거야. 하늘이 노랗재. 우짜면 저 꼼꼼한 시어무이 성미에 맞춰서 살아갈까 싶어서.

 

푸새질도 여간 꼼꼼하게 하는기 아녀. 모시적삼 풀 맥여서 빨래줄에 넣어 놓으면 그게 우예 딱 달라 붙어서 아무리 잘 잡아띠여 걷을라해도 마주 붙어서 잘 안떨어져. 둘째 시누, 그러니가 서움마(동네이름) 고모가 빨래를 걷다가 고만 풀이 달라 붙었는걸 잘 띤다고 했는데도 아이쿠나 적삼이 쪽 잡아 째졌어. 하이고 이거 큰일났다 고모야, 둘이서 얼매나 놀랬는지 얼른 모시적삼을 가지고는 바느질 잘 하는 아즈마이한테 갖고 갔지. 이만저만 어무이 아시면 큰일이 나니께 아주 표안나게 잘 꼬매 주시요 하고 부탁을 했지만 어데 그게 표시가 안나간? 그거 어무이 한테 들켜가지고 둘이서 혼줄이 나고 그래서 나는 아즉도 모시적삼 입기 싫어. 풀멕여서 손으로 다독다독해 싸악 다려놓으면 참말로 잠자리 날개 가튼기 여간 시원하지 않아. 그런 줄은 알지만 선뜻 그 옷에 손이 안간다니까 .

 

 

 버스타면 차멀미 하지만 불멀미도 있어 방에다 화롯불 놓아놓고 인두질이며 대리미질을 하는데 어른들 옷 차례로 다리고 하다보면 뒷골이 땡기는게 눈앞이 어찔어찔한게 불멀미가 나 . 그럼 네방구석이 어딘지 방바닥이 어딘지 그져 빙빙 도는기 암것도 못해여. 그러면 대림질이고 인두질이고 때기나발치고 가만히 쪼그리고 머리박고 앉았으면 좀 가라앉아 그걸 보고 울 시어무이는 내가 지랄병이 있다고 막 뭐라하셨지. 참 야속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어머님도 딸이 있고 넘의 집에 시집살이 보내셨으면서도 우찌 그리 메누리인 나한테 모질게 허셨는지..

 

 

 

그리 깔끔하던 양반도 노망에 걸리니까 할 수 없데. 자고 나면 방바닥이고 벽이고 똥을 매때기칠 해놓고, 방바닥 종이를 박박 긁어서 다 잡아 뜯어놔요. 그리고 잠시라도 눈을 피하면 옷을 벗고 어디로 나가시는거야 홀딱 벗으시고 하루는 밭에 지심을 매고 왔더니만 어무이께서 안보이셔. 사방팔방 찾아 댕겼지. 아무리 찾아도 못찾고 있으니까 전화가 왔어. 지서라고. 그래서 온 식구가 가봤더니 아무것도 안 입으시고 지서에 앉아 계시네. 우찌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순경들이 민망해하믄서리. 할무이 고속도로 올라가셔서 막 차 지나가는데 건닐라해서 신고가 들어와 델구 왔어유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있는 모양이 챙피하셨던지 정신은 놓으셔도 아들 이름 대라니까 입을 꼭 다물고 아무소릴 안하셨다네. 누구 엄마라면 아들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는가 아무리 갱찰이 물어바도 이름을 얘기 안허시더래. 그렇게 칠년을 살다 가셨네.

 

늙어 죽는것은 하나도 겁나지 않는데 며느리한테 그런 꼴 보일까바 내는 젤 걱정이여. 그져 자는 걸음에 고대로 갔으면 좋겠어. 자는 걸음에 고요히 델구 가라고 맨날 부처님한테 빌지......

 

 

 

*울 시엄니 시집살이 하신 이야기를 구전하시는대로 옮겼네요

 

 

 

2002/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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