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에다 구멍을 뚫고 금속을 끼우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여름,
신체의 끄트머리 어느 부분에 넘들 다 하는 그 곳에 나도 풍경 하나 매달고 싶은
욕구가 문득 넘쳐났다. 그래서 구멍을 뚫었다.
마음에 생겨나는 자연발생적 구멍은 인생에 휑한 연민을 던져주지만, 내 의지로 무엇을 매달기
위해 뚫은 구멍은 그
아픔을 감수하고라도 달랑거리는 기쁨을 제공한다.
작년 4월 말쯤 작은 큐백 귀걸이를 끼워놓고 있으니 귀가 일상생활에 그렇게
부대끼는 장소가
되는 줄 처음 알았다.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도 그것은 언제나 저의 존재를 알려
왔고, 나는 뾰족한 침 뒤에 걸린 수건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잘 때도 그랬다.
그것이 없었을 때는
어떤 형태로 베개를 베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귀걸이가 달리고 부터는
어떻게 누워도 그것이 걸렸다.
그러나 세월이
어떤 것인가. 무엇이든 잡아 먹고 무엇이든 이겨내지 않는가. 걸릴 때마다 "아야"
하는 아픔을 주던 그 구멍도 차츰차츰
익숙해질즈음.
귀걸이의 존재를 재삼 인식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내 성감대는 귓볼이야"
이
한마디 신혼 초에 내질러 놓았더니 죽으나사나 세월이 흐르나 마나 거기가 아직도 거시긴줄
알고 줄기차게 애무하는 고스방이 주인공.
벌써 귀걸이 몇 개를 잡아 먹었는지
몰라. 내 악세사리 통에는 한 쪽만 남겨진 불쌍한 귀걸이가
세개나 있는데, 어제는 애써 장만한 진주귀걸이를 잡아 먹었다.
몰랐다.
그가 귀걸이를 즐겨먹는 취향이란걸
정말,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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