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흰구름 한 밭뙈기
먹구름 한 밭뙈기
사이에 푸른 하늘이 실개천처럼 흐른다
시절이 어느 때라고 솔개 한마리 공중을 선회한다
요즘 누가 병아리새끼 마당에 내어 놓고 기른다고
아니아니아니아니 꼭 먹는 걸 위해서 저것이 제 날개를 펴
급하지도 않는 각의 움직임을 만들며 천천히 날겠는가 그져,
높이 날으면서도 자세히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재
빨래
물기를 털어내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빨래는
제 스스로 제가 얼마나 게을러졌는지 모르리라
저절로 돌아가는 기계가 손에 묻을 것도 없는 수분만 겨우 남긴채
제 몸을 비틀어 짜댈때 그저 좋아라하고 옆에놈 사타구니에 다리를
걸고 팽팽 돌기만 하였으리라
이제 빨래는 한 겨울이면 서슬 푸르게 얼어 버릴 능력도 상실하고
바람 한 줌, 햇볕 한 됫박만 있어도 치열하게 제 몸을 말리려던
전의도 잊어버리고..
조용한 베란다 한 켠에서 시체로 굳어간다
방 안
초경을 벌써 치른 딸년이 옷 벗어 놓은 꼴이라니
블라우스 벗어 놓은 꼴좀 보소
한 쪽 소매는 침대에 걸쳐있고 다른 한 쪽을 땅바닥에 닿아서
늦은 밤 전봇대 붙잡고 주정하는 술꾼을 닮았다
가방은 영 못 일어날 나뭇짐 얹은 지게처럼 엎어졌고
스타킹은 벗어서 뒤집혀 진채로 컴퓨터 본체 위에 집어 던지고
웃도리 교복은 반으로 접어 반달 쿠션에게 아무것도 피곤할거 없는
자세로 기대고 있다
치마는 어느 방에서 벗어 놓았는지 꼴도 뵈지 않고
빈 옷걸이만 재봉틀 위에서 하릴없는 하품짓이다
나도 이제 더 이상 따라 다니면 걸어 주기 싫다
학교 갈 때 구겨진 은박지처럼 몰골이 싸납던 말던 두고 보리라
씨~푸~알!
조용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방구석은 왜이리 조용한가
약발이 없는가 부엌의 뻐꾸기 시계가 쉰 목소리로 울고있다
울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서너번 쁘허꾹 하다 잦아 들면
속으로 생각키를, 저 생명없는 것도 미리 보채는 양 애닯다
어데서 목련이 단속곳까지 다 피워 냈다는 소문이 들리고
어데는 또, 축제 기간 보다 일찍 피워내는 벚나무에게 개화기를
인간의 시간과 맞출려고 나무에다 얼음찜질을 해 준단다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을 사람들이 버젓이 하고 있다
내일부터
따숩다 하니, 산 등성이 야트막한데는 산나물 올라 온다는 소식도
듣기겠다. 뒷마당 골담초 가시 사이로 입이 뾰족하니 물고 나오면
가죽나무 늙은 등걸에도 붉은 순이 돋아, 나날이 쳐다보며 어린 순
따다 장아찌 담을 궁리를 하고, 허물어진 뒷담 그늘 아래도 울 밖의
따순 바람 불어서 난초 이파리 힘차게 올라 오는 기상도 보게 되리라
앵두나무 우물가에 츠녀 총각 바람 난 이야기가 없어진 지금
봄, 봄, 이 봄은 어데서 제비새끼 주둥이에 고운 이야기 한 토막
물려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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