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수리수리 마수리, 마흔 일곱이여.

황금횃대 2009. 1. 22. 21:18

 

 

 

 

 

오늘은 결혼기념일, 그러니까 고스방하고 나하고 한 날, 한 시에 어른 된지 꼭 이십년이 되는 해이다.

세세한 이벤트는 없어도 날짜를 꼭 기억하는 고스방이기에 저녁도 안 먹고 기다렸더니 그냥 넘어가는 눈치다

살짝 서운해지려다 그만 그러구 만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이십주년을 기념하여 행주를 두 개 이쁘게 만들었다.

작은 천조각을 이어 붙이고 그걸 또박또박 바느질을 하면서 한 쌍의 행주를 만들었다.

그거 만들고 나니까 다른 이벤트는 기대도 안하고 내 안의 이십주년 기념의식은 이걸루 됐다 했지

그냥...일테면 이제 나이 먹어서 그런 것도 다 구찮다는거지.

 

 

스무살 딸아이가 마흔 일곱 지엄마 머리 쉰꼴이 보기 싫어 염색을 해주겠단다

저번에 반하고, 반 남은 염색약을 짤아, 매매 섞어서 미장원핀을 꽂아가며 뒷머리카락부터 세세하게 염색을 해준다. 어찌나 꼬부리고 진지하게 해 주던지..나중에는 허리가 다 아프다고 한다.

염색을 마무리하고는 머리를 밸밸꼬아서 옛날 티비 어린이 드라마 수리수리 마수리삼촌 머리모양처럼 해 놓았다

이마에다 염색약으로 황칠을 해놨다.

나는 점점 더 나이들어 갈거고, 한 이십년 후면 오늘 대목장에서 차례상에 올릴 가오리건어물세트를 사던 종기할머니처럼 얼굴이 쪼글쪼글해지겠지. 그 때 이 사진을 보면 이렇게 말할거라. 어이구, 이 때가 차암 좋았을 때야, 피부 피둥피둥한거 좀 봐.

 

결론은 말야

인생은 언제나, 먼 훗날 어느 시점보다 지금 이 때, 바로 이 순간이 활짝 피어난 꽃봉우리라는게지.

 

 

 

염색하니까 머리색깔이 까매졌다.

눈꺼풀이 내려와 나는 점점 꺼벙이가 되가는갑다.

 

근데, 저 마수리삼촌 머리모양을 한 사진말야

참 이쁘지 않나?

눈매가, 보기 드물게 슬프게 나온거 같어.

이렇게 써 놓고 다시 스크롤해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데, 눈을 마주쳐서 말야

눈물이 퍽 쏟아지네. 어이쿠 암맘봐도 쪼매 모지란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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