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전환의 논리

황금횃대 2009. 4. 18. 08:32

며칠을 인상 구기고 있어보니 그것도 참 할 짓이 못된다. 그러니까 유쾌,상쾌,통쾌의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나같은 여편네한테는 그게 잘 씨알 먹히는 컨셉이 아니라는 것이다.

먹은 것은 차곡차곡 차여서 내장 어디선가 부글부글 가스와 독을 뿜어내며 소화가 아니라 썩고 있다는 느낌도 강렬히 왔다. 이렇게 살다가는 참말로 기분이 나빠서 방귀나 드륵드륵 뀌면서 죽겠구나..싶었다. 그래서 나도 며칠 간의 똥씹은 인상 생활을 전환 시키기로 했다. 전환의 논리를 구구절절 주끼자면 책 한권도 나오겠지만, 그거 간단하게 요약하면 <내게 도움이 안 되니까 다르게 해 본다는 것>이지 싶다. 그게 전환이다. 논리고 나발이고 내가 불편하니 바꾼다는 것.

 

 

 

 

그 남자의 집에 가는 길의 시작은 돌보지 않는 복숭나무가 잡초에 쌓여서 고달픈 꽃 여남은개를 달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기나 말기나 노란 민들레는 헤헤헤헤 피어있다. 헤헤아줌마가 생각난다. 왜 생각나는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 민들레를 보고 헤헤 아줌마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그림자는 거수경례까지 붙인다. 

 

 

 

그 이의 집도 경부철도 너머에 있다.

우리집처럼 한 번만에 통과하는 굴다리가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매번 꺾어 드는 맛을

전율로 느끼게 하는 굴다리를 통과해야 그의 집에 들어선다.

상행, 하행, 종일 저 위를 오르내리는 기차 안의 사람들은 철길 그 아래 매번 집으로 드나드는 길에 둔각과 예각 사이를 절묘하게 꺾으며 생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차 안 꿈결에서도 모를 일.

 

 

 

해마다 이화에 월백하였다고 그는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그의 익숙한 손길은 달빛을 갖고 놀고 배꽃의 갯수를 가늠할 줄알고, 꽃의 향기로, 줄기의 튼튼함으로, 꽃잎의 낯빛으로 그 해 농사를 점칠 줄 안다.

점만 치는가? 그 점괘가 불행하게 나오면 대책없이 굿이나 한 판하라는 여늬와는 달리 밤낮으로 위로하고 떠먹이고 쓰다듬어 불행한 점괘을 환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능력이 있다. 가을, 그가 종이 상자에 가지런히 그믈망 옷을 입혀 오토바이 뒷편에 단단히 묶어주는 그의 가을자식들은 달고, 싱싱하고, 자태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배꽃과 경계도 없이 복숭꽃도 어깨를 겯고 같이 피었다.

그는 복숭꽃이 피었다는 소문을 내지 않았지만 봄이 터지고 꽃들이 눈찢어지게 웃는 일들이 어디 소문이 없다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인가.

소문은 하루에 백리길도 한 탕에 뛰고, 천리길도 한 달음에 도착한다.

 

 

복숭밭을 돌아 나오면서 그에게 전화를 한다

청주에 있시요

내 집에 가믄 전화할게요

 

약속을 헌신짝 던지듯 자주 차 뗀지는 사악한 상순이와는 달리 그는 일곱시가 조금 넘어 전화를  했다

이제 집에 왔시유

 

 

 

돌아나오는 길, 사과꽃이 망울망울 붉은 점들을 모았다. 저걸 붉은점이라고 하다니?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달리 뭐라 할 말이 없다. 저렇게 붉은 점이 한 나절 햇살을 함뿍 받아 마시고는 하얗게 꽃잎을 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도옹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제, 그립다 못해 버선발로 나의 살던 고향을 찾아오는 날들이 있을거다

그 때

그와 나는 구릿빛 얼굴에 누런 이빨로 그들을 맞으며

손을 내밀지.

 

 

 

아득히 멀어 보이는 저 흰 빛의 고향 언덕,

칠 벗겨진 오두막의 지붕 위로

전환의 기쁨을 맛본 내가 삼십리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다.

빛살이 어찌나 고운지

 엉기고 굳은 마음을

갱엿 녹이듯 살살 녹이며, 나는 저 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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