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동맹 여편네

옅어져가는

황금횃대 2011. 1. 22. 23:11

 

 

얇은 솜을 넣어 만든 양귀비자수 긴 치마를 한 벌 샀다.

입고 싶었던 옷이다.

22년차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나를 위해, 선물을 내가 주문해서 택배로 받았다

여름 저고리 두 벌도 같이 주문해서

양귀비자수가 수놓인 검은색 항아리모양 치마를 입고 나는 거울 앞에서 22년차 아줌마 모델이 되어 방 안을 두어번 왔다갔다 걸었다

 

병조는 결혼기념일이라고 피자를 한 판 주문해서 파마산치즈 가루를 듬뿍 얹어 한 쪽을 건네준다


"엄마, 내가 이거 궁뎅이 살 말려가며 게임해서 번 돈으로 산 피자야. 맛있게 잡솨"

<아빠가 차를 태워 주면 김천가서 내가 굴밥을 쏠려고 했는데 아빠가 안 가니 그냥 피자 한 판으로 땡이야.>

제가 말하는 모든 요구와 행위 앞에 <한 달 뒤면 군대가는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진짜 한 달 뒤면 군대 가는 아들 고병조는 공군 지원입대 합격을 하였다. 그것이 군대든 무어든 <합격>이란 말은 좋다.

"이야, 드뎌 네놈을 보내 버릴 수가 있게 됐구만, 축하해"

 

저녁도 먹으러 가지 않고, 케잌하나로 떼우려던 고스방은 내가 피자 먹었다고 케잌도 사 오지 말라고 말하니

여편네가 삐졌나 싶어 눈치를 살살 본다. 괘안아 고스방, 어제 당신이 부산 갔다 오라고 오케이 사인을 준 것만으로도 훌륭한 결혼기념일 선물이야.

 

장미꽃다발이 아니여도

고구마케잌이 아니여도

굴밥에 해물찜 저녁상이 아니어도

나는 괘안어라

이젠 그런저런 것들이 옅어져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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