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먹고 쓰는 편지

오늘

황금횃대 2012. 7. 2. 17:29

 

 

 

1.

 

내가 당신헌티 엽서 다섯장 보낼팅게 당신은 내게 뭘 해주실라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말로 어이상실 되시것다 ㅎㅎㅎ

 

 

2.

멕시코로 떠나기 전, 짐 정리를 하던 그녀는 내게 수채화 엽서를 주었다. 그림을 내가 그릴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된 엽서이다.

물론 글씨도 쓸 수 있다.

그 동안 손 놓았던 색연필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그녀에게 쌩유!

 

3.

젊어 들깻모 심기 싫어 들기름도 싫어하던 내가 이제 늙었나보다. 들기름 먹을라고 비를 맞아가며 깻모를 심는다

두 개씩 똑,똑, 떼서 호미로 젖은 흙을 파서 세워 심으면 이제 겨우 눈떠 바늘 만한 크기라도 잘 자란다.

아버지는 소출도 없는 이걸 말라고 심으려 하냐고 괭이로 풀을 매면서 말씀하시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이제 늙어서

들기름이 좋은 나이가 되었다

 

4.

쇠비름을 매다 뒤집어서 뿌리가 공중에 치들리게 땡볕에 던져 놓는다. 멧방석만하게 커진 쇠비름은 잘 죽지도 않는다.

비들비들 말랐다가도 물기만 조금 느껴지면 또 터미테이터 3처럼 살아난다.  난 터미네이터 시나리오 작가가 쇠비름을 보고

죽지 않고 살아나는 컨셉을 눈치챘을거라 믿는 사람이다.

 

5.

봉지싸기 전날, 그러니까 유월 스무 닷새날 아버지께서 오셔서 이런 저런 일을 거들어 주시다가 오늘 낮 4시 1분 기차로 대구집으로 가셨다

배낭에는 청국장을 띄워 오신다고 흰콩 두어되,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 마디 호박 다섯개, 그리고 올케와 조카들이 심은 고추묘목이 자라

달린 고추 서너오쿰, 그리고 부추가 한 단쯤 들어있다. 오토바이로 배낭을 역까지 실어 드리고 경로표 한 장을 끊는다

어제도 논둑에 난 풀을 뽑으셨다며 손이 흙물 풀물이 들어 엉망이다. 수세미로 씻어도 잘 안 씻어진다며 아버지가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나는 공연히 거칠어진 아버지 손이 서릅다.

내 손톱에 풀물도 만만찮지만 그래도 나는 괘안타. 아버지 손은 오랜 세월의 무게가 피부처럼 장착되어 서릅다.

플랫폼으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 어깨가 구부정하고 허리도 반듯하지 않다.

 

6.

아침절에 아부지가 캐오신 햇감자를 긁어 삶았다

잘 못 심어서 씨라도 찾겠냐...걱정했는데 흙은 배신하지 않는다. 작황이 좋지 않지만 씨감자보다는 많다. 다행이다.

감자를 긁어 소금 넣고 쪄서 목 메이게 먹는다

아부지...감자가 맛있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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