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긴 하였어도 뭐라 입술 달싹거려 말 내뱉을 여유를 나는 잃었다. 급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숨가쁘기도 했거니와 저절로 지친 손가락이 자판 두드리는 일을 막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주끼던 일이 이젠 먼 옛일 같다.
포도를 따야하는데 아버님은 하루하루 정신이 혼미해졌다.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을 빼앗긴듯 자고 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을 못했다. 신새벽에 일어나 투석 갈 준비를 하였는데 그것조차 희미해져 늦잠을 주무시다 병원 셔틀 버스를 가까스로 잡아 타기도 했다. 이제 혼자서는 무엇이든 하기 힘들게 되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걸이도 불안하고 무엇보다 촛점이 흐려진 눈이 슬펐다.
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아버님을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아버님 한 열흘 포도 딸 때까지만 병원에 계세요. 추석 전에 아버님 모시러 올게요"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돌아 나오는데 자꾸 아버님의 눈빛이 밟혔다. 아흐랫날이 지나고 아버님을 퇴원시켜 집으로 모셔왔다.
그동안 좋아하시던 국수를 못 드셔서 저녁으로 칼국수를 끓여 드렸다. 국물 한 방울까지 맛있게 드시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신다. 집에 오니 좋으신거지...요강을 다시 한번 부셔 물기를 닦아 아버님 주무시는 발치를 지나 뒷물 앞에 놓아 두고 살며시 나왔다.
밤 열두시가 조금 지나 아버님이 마루로 나왔다. 밖에 불빛이 있으니 나오신게다. 나오더니 대뜸 우릴 보고 어딜가려고?하고 물었다. 우린 깜짝 놀라 어디 안 간다고 손사레를 치면서 아버님께 설명했다. 그러니 아버님은 저녁을 먹어야하지 않느냐고 했다. "아버님 저녁에 칼국술로 저녁 드셨잖아요. 지금은 잘 시간이예요. 조금만 더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제가 아침 진지 드릴게요"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밤, 마루에 불이 켜져 있어 자다가 깨니 세시가 조금 넘었다. 나가보니 아버님이 화장실 불을 켜 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돌아와 잠이 들었고 또 다시 눈을 떴는데 다섯시다. 그 때도 아버님은 여전히 화장실에 불을 켜 놓고 거기에 앉아 계셨다. 깜짝 놀라 화장실 문을 열어 아버님께 왜 이리 오래 계시냐고..."변비가 있어 똥이 잘 안 나와"
잠든 고서방을 급하게 깨워 아버님이 밤새도록 변비로 고생을 하신다며 관장을 부탁했다. 관장약이 하나 밖에 없어 그걸로 관장을 했는데 실패다. 고서방이 잠바떼기를 걸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약방 문을 두드려 관장약을 사왔다. 두번, 세번의 관장을 한 끝에 아버님은 화장실에 가셨는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내도록 아들 고서방과 아버님이 화장실 안에 있다가 고서방이 먼저 나오고 뒤따라 나오던 아버님이 화장실 밖으로 첫발을 내딛이며 미끌어졌다. 그러면서 주저앉았는데 아이쿠나....못 일어나신다.
급하게 아이들을 깨워 아버님 방으로 옮겨 놓고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대퇴골 골절로 진단이 나왔다. 주말이고 곧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 수술을 급하게 하였다. 수술을 하고 집중치료실에 아버님 깨어나신거 보고 집으로 왔는데 자꾸만 아버님이 방에서 손을 내저으시며
"이젠 틀렸어, 이젠 틀렸어"하고 고개를 흔들던 모습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시집오고 첨으로 아버님 안 계시는 추석 차례를 지냈다. 차례상을 차리면 아버님이 순서를 바로 잡아 주시고, 미처 놓지 못한 차례 음식이 있으면 하나하나 짚어 주시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냥 맹숭맹숭 차례 순서만 지켜갈 뿐이다.
추석 다음 날, 포도를 따고 작업을 하고는 저녁에야 아버님께 갔다. 아버님은 추석 전 날까지도 나를 알아봤는데 그날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아프다고 몸부림만 친다. 무의식 상태에서 링거줄을 뽑으려고 하고 벌떡 일어나려하니 간호원이 아버님 손을 침대에 묶어 놓았다. 여태 병원 입원하고 중환자실에 있었어도 손을 묶어 놓은 적은 없었기에 딸과 나는 충격이 크다. 고스방은 연신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아버님을 제대로 바라 보지도 못한다. 아버님은 전혀 우릴 알아보지 못하셨다.
실망한 모습으로 고스방과 집에 오니 간호사가 전화가 왔다. 내일 환자 상담을 의사샘과 해야하니 일찍 오라는 것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다음 날, 아침 아홉시 의사샘 출근에 맞춰 병원을 가니 수술 후 심신이 많이 허약해져 있어 감당해 낼지 모르겠다고 이삼일이 고비란다. 난 티비 드라마에서 이삼일이 고비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실제 아버님한테는 그 말이 적응이 안 됐다. 여느때처럼 아버님은 좀 아프시다가 일어 나실거라 믿었다. 아버님은 식사도 잘 하셨고, 며칠 전에는 내가 작업하는 포도 밭에도 와서 작업을 마친 포도 상자 5킬로그램짜릴 들어 옮겨 주기도 했다. 여전히 아버님은 의식이 혼미하고 눈도 못 뜨신다. 숨도 가쁘게 몰아쉬고 가래가 숨을 자꾸 가로 막는다.
집에 다시 와서 채 사십분도 안되서 병원에 문병가신 고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이 상민아, 어서 애비랑 빨리 좀 와야겠다. 아이고 오빠 어쩌노" 다급한 목소리와 정신없는 움직임이 전화가 끊기면서 여음으로 남겨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남편에게 연락하는 목소리가 벌써 울음으로 가득찼다. 병원에 급하게 도착해서 뛰어 올라가니 아버님은 임종하셨다. 아흔 셋, 그 생의 끈을 아버님은 탁, 놓아 버리셨다.
어머님 먼저 가신 길을 따라 아버님도 꽃상여를 타고 그 다음 세상으로 훌쩍 넘어 가셨다.
이제 양지바른 저 유택에서 어머님 아버님은 삼년 동안 못다한 얘기를 나누며 며누리 흉도 보시리라
아버님, 그 날 밤, 저녁 안 먹냐고 물어보실 때 아무 말 않고 저녁 차려 드릴걸....그게 내내 걸려요
겨우 칼국수 한 그릇 드시고 그 먼길 떠나시다니.. 아버님 죄송해요
따뜻한 밥 한 그릇도 못드시고 가셨으니...
어머님께 맛있는거 만들어 달라고 그러세요. 생선가시도 어머님은 찬찬히 잘 발라 주시잖에요
어제 상민이에게 감자 만두 쪄주니 "우리 할아버지 잘 드시든거였는데 이제 감자 만두도 못 먹구...."하며 상민이가 울먹였세요
살아가면서 우린 아버님 생각 많이 할겁니다. 오늘은 49제 초제 올렸으니 모쪼록 어머님과 같이 좋은 세상에서 편히 지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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