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해방

황금횃대 2016. 11. 13. 21:36

아침 차리는 일에서 해방이 되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고스방은 어쩐 일인지 이맘때가 되면 혼자 아침을 차려서 그야말로 대강 먹구 일을 나간다. 스스로 그러함에 불만이나 비애감없이 차려 먹고 나가니 내가 좀 편하다.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이런 호강을 한다. 이틀에 한번 쯤은 일어나 내가 상을 차리기도 한다. 이것 저것 내놓으면 국만 있으면 된다고 극구 상차림을 만류 한다. 나는 점점 미안한 마음이 옅어 진다.

 

겨울이 살금살금 다가 오고 있다. 작년에 눈 오는 날 무 뽑으러 가서 손가락 열개가 낱낱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 첫 된서리가 오자마자 서둘러 무를 뽑아다 손질해서 갈무리하고, 잔챙이 무는 썰어 말랭이 작업까지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청을 시래기로 엮어 매다는 일이다.

 

이틀을 차고 한 쪽에 쌓아 두었으나 고서방이 엮어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머님 살아 계실때 시래기 엮는 것이 왜 그리 하기 싫었는지...짚 한줌씩을 이어 나가며 매시랍게 엮어내는 어머님 솜씨를 나는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엮어서 매듭을 들면 술술 이음매가 풀리면서 시래기가 땅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어머님 만큼 할 수 없다는 열등감에 더욱 무 시래기 엮는 일이 싫었던게다.

 

어머님 안 계시니 시래기 엮는 일도 꾀가 난다. 후두툭 떨어지는 짚으로 할거 없이 굴비 엮는 비닐 노끈으로 엮으니 시래기 다발을 얼마든지 엮어도 하자가 없다. 알맞은 길이로 엮어 옥상 감타래 옆에 가지런히 걸어 놓으니 이쁘기가 갈대 주렴은 저리가라다. 궁하면 통 한다고, 어머님 안계시면 암것도 못하고 살 줄 알았는데 이럭저럭 살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보면 저 말은 진리다.

 

추수철이 되면 뜬금없이 엄니 생각이 난다. 배추 농사가 잘 되서 속이 노랗게 차 오르며 알을 안으면

"어머님 살아 게셨으면 참 좋아하셨을텐데.."고추를 많이 따서 스무근 들어 가는 봉다리에 봉게봉게 묶어 놓은 것을 보면

"어머님 살아 계실 때 고추 농사 저리 잘된걸 보시면 얼마나 좋아 하실꼬.."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다아 부질없는 생각이다.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일이요 시절이다.

다시 그 시절 살아 보겠냐 하면 노땡큐 올시다.

이런 이야기가 해방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살아 본 사람들만 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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