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꽃
지난 겨울 김장하고 남은 배추 신문지에 돌돌 말아 계단 아래
두었지요.
홑겹 신문지가 젖었다, 말랐다, 얼룩 우에 곰팡이꽃까지 피울 동안
세상의 겨울에는 조용히 눈이 내리고,
까마귀가 조으는 사이 팔순 넘은 어메를 두고
젊은 이장은 세상을 버리셨다죠.
꽝꽝 얼은 슬픔도 녹는 계절이 와 배추를 꺼내
처걱처걱 달라 붙은 신문지를 떼어내니
썩고 물러 터진 겉잎사구 몇 겹 안 쪽
시선도 닿지 않는 구중 궁궐 속고갱이에
배추 장다리 꽃대가 피었네요 뿌리도 없는 몸뚱이가
겨울 동안 얼마나 뜨겁게 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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