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라시대에 게바랑偈바郞)이란 중이 살았다
게바랑이 통일신라 때의 사람인지, 아니면 삼국이 머끄댕이 쥐뜯으며 열라리 쌈박질 때의 신라인지 더이상 묻지말라
어차피 이 게바랑이란 인물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그 중이니까.
게바랑은 중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살신성인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고즈넉한 산사 아랫동네에 사는 반짝거리는어금니 츠자의 집에 있는 자그마한 강쉐이를 보는 눈이 언제나 '저 눔이 언제커서 덴장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치의 문자를 세상에 타전하고 있었고, 하다 못해 저수지 똥물에 저녁 노을 비늘이 반짝이는 것만 보면 그자리에 주저 앉아 애마 아방태(阿房態)의 엉덩이에 특수 장치된 서랍을 열어 낚시대를 꺼내는 걸 마다 않는 위인이였다.
가끔은 그도 부처의 도를 실행하느라 정선행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뭐 도라는게 별건가 그냥 깨우치면 도인 것을...
그 정선행에서 그가 깨친 도라는게 밤에 고속질주하는 아방태의 앞대가리에 가미가제식으로 달라들어 화끈하게 죽어가는 불나방의 죽음에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데, 그 깨달음이 얼마나 오랜만이고 큰지 늘 깨달음치부책에다 적어 놓곤 하였다.
정선에는 행님이라는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라는 현판을 입구에 기울어지게 걸쳐놓고 될 수 있으면 익은 것은 오 노! 날것만 먹을테요 하는 생의 행동강령을 걸어 놓고 사는 총각이 있었는데, 게바랑은 참선을 한다는 이유로 거기가서 삼겹살이며 소주대가리를 겁대가리 없이 따 대기도 했다.
해엥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말로 가당찮은 땡중임이 틀림이 없으나, 게바랑의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살인미소의 매력 때문에 그를 문간에서 내치고 싶은 마음이 죽도록 가슴을 물들여도 쉽사리 그리 못하는 것이였다.
어제도 게바랑 그놈은 먹다 남은 소주를 돌아가지도 않는 냉장고 문짝에 얌전히 박아 놓고 아방태를 타고 사라졌다.
기실 그 놈이 여기와서 하는 말이래야 늘 씨잘대기 없는 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는 기 와 이렇소 또는 일전에 만든 허공카페에 올라오는 글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서 늘 상수니아짐이라는 글을 보며 질투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뭐...그렇게 참선도 하고 소주로 위장도 말끔하게 세척하면서 한 올의 터럭이라도 꼬부라짐 없이 살라고 지리산에도 가서 수행을 하고 천안에도 가끔 가고, 바다에도 자주 간다던 게바랑이 어느날 죽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것은 자연의 이치라.
하기좋고 듣기 좋은 말로 땡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 하지만, 게바랑의 죽음은 뭐 좀 아까운 구석이 있다
한창 작업중이던 파도다방에 미스킴을 한 번 안아 보지도 않았는데, 그 미스킴 꼬실때야 어디 한 잔 먹고 싶은 커피도 두세잔 배달을 시켰으니 본전 생각 아니날리 없건마는...머 그래도 사람 죽는 것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기에.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그의 절에서는 마지만 그를 위한 성대한 의식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이름하여 다비식.
그 애절한 슬픔이 재로 화할 때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미어지고도 옆구리가 터질 지경으로 아프고 쓰린 것이지만, 도저 사람의 마음은 그와 다른 또 하나의 욕구가 있었으니
사이버세상에 이름이 드높았던 게바랑의 다비식에 얼마의 사리가 나올 것인가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가 평상시 면벽 수행을 했다거나 동안거 하안거를 착실히 숙제하듯 치뤄 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나, 그가 중으로서 보여준 희안한 수행의 방법을 기억한다면, 한 두알로는 성도 차지 않고, 기왕 나와주는 김에 대두로 한 됫박쯤 사리가 나와주었으면 하는 기대치가 다비식을 거행하는 불꽃위에 욕망처럼 일렁거렸다.
드디어 장엄한 다비식이 끝났다
너나 없이 현미경과 돋보기를 들이대며 사람의 육신이 재로 화한 현장에 달려들었는데, 얼래? 아무리 찾아봐도 사리같은 붉고 푸르고 혹은 녹색에다 보라색, 또는 흰색도 있다는 전설을 매정하게 잘라내며 사리는 도저히 찾아지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 러시아제 망원경을 들고 다비식 언저리에서 침을 삼키고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유레카!
게바랑은 죽어 딱 세알의 사리를 남겻다
그냥 육안으로 볼 때 그것은 붉고, 푸르고 녹색을 띠고 있는 듯 보였지만, 현미경 대물렌즈 위에 얹어 놓고 유심히 관찰한 결과 전대미문의 희안한 사리임이 밝혀졌다.
그 사리 세알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띨. 띨, 이.
뜨악??????????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사리탑을 근사하게 지어 사리탑에 문패까지 달아 놓았으니 이름하여 <띨띨이 사리탑>
그 후로 헤아릴 수없는 세월이 흘러 사리의 문패도 삭풍에 떨어져 나가고 그 사리탑의 소재지도 확인 할 수 없지만, 들려오는 카더라전설의 한 도막에 이런 기막힌 사리탑도 있었음을 엽편기록으로 남겨놓다.
게바랑이 통일신라 때의 사람인지, 아니면 삼국이 머끄댕이 쥐뜯으며 열라리 쌈박질 때의 신라인지 더이상 묻지말라
어차피 이 게바랑이란 인물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그 중이니까.
게바랑은 중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살신성인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고즈넉한 산사 아랫동네에 사는 반짝거리는어금니 츠자의 집에 있는 자그마한 강쉐이를 보는 눈이 언제나 '저 눔이 언제커서 덴장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치의 문자를 세상에 타전하고 있었고, 하다 못해 저수지 똥물에 저녁 노을 비늘이 반짝이는 것만 보면 그자리에 주저 앉아 애마 아방태(阿房態)의 엉덩이에 특수 장치된 서랍을 열어 낚시대를 꺼내는 걸 마다 않는 위인이였다.
가끔은 그도 부처의 도를 실행하느라 정선행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뭐 도라는게 별건가 그냥 깨우치면 도인 것을...
그 정선행에서 그가 깨친 도라는게 밤에 고속질주하는 아방태의 앞대가리에 가미가제식으로 달라들어 화끈하게 죽어가는 불나방의 죽음에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데, 그 깨달음이 얼마나 오랜만이고 큰지 늘 깨달음치부책에다 적어 놓곤 하였다.
정선에는 행님이라는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라는 현판을 입구에 기울어지게 걸쳐놓고 될 수 있으면 익은 것은 오 노! 날것만 먹을테요 하는 생의 행동강령을 걸어 놓고 사는 총각이 있었는데, 게바랑은 참선을 한다는 이유로 거기가서 삼겹살이며 소주대가리를 겁대가리 없이 따 대기도 했다.
해엥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말로 가당찮은 땡중임이 틀림이 없으나, 게바랑의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살인미소의 매력 때문에 그를 문간에서 내치고 싶은 마음이 죽도록 가슴을 물들여도 쉽사리 그리 못하는 것이였다.
어제도 게바랑 그놈은 먹다 남은 소주를 돌아가지도 않는 냉장고 문짝에 얌전히 박아 놓고 아방태를 타고 사라졌다.
기실 그 놈이 여기와서 하는 말이래야 늘 씨잘대기 없는 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는 기 와 이렇소 또는 일전에 만든 허공카페에 올라오는 글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서 늘 상수니아짐이라는 글을 보며 질투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뭐...그렇게 참선도 하고 소주로 위장도 말끔하게 세척하면서 한 올의 터럭이라도 꼬부라짐 없이 살라고 지리산에도 가서 수행을 하고 천안에도 가끔 가고, 바다에도 자주 간다던 게바랑이 어느날 죽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것은 자연의 이치라.
하기좋고 듣기 좋은 말로 땡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 하지만, 게바랑의 죽음은 뭐 좀 아까운 구석이 있다
한창 작업중이던 파도다방에 미스킴을 한 번 안아 보지도 않았는데, 그 미스킴 꼬실때야 어디 한 잔 먹고 싶은 커피도 두세잔 배달을 시켰으니 본전 생각 아니날리 없건마는...머 그래도 사람 죽는 것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기에.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그의 절에서는 마지만 그를 위한 성대한 의식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이름하여 다비식.
그 애절한 슬픔이 재로 화할 때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미어지고도 옆구리가 터질 지경으로 아프고 쓰린 것이지만, 도저 사람의 마음은 그와 다른 또 하나의 욕구가 있었으니
사이버세상에 이름이 드높았던 게바랑의 다비식에 얼마의 사리가 나올 것인가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가 평상시 면벽 수행을 했다거나 동안거 하안거를 착실히 숙제하듯 치뤄 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나, 그가 중으로서 보여준 희안한 수행의 방법을 기억한다면, 한 두알로는 성도 차지 않고, 기왕 나와주는 김에 대두로 한 됫박쯤 사리가 나와주었으면 하는 기대치가 다비식을 거행하는 불꽃위에 욕망처럼 일렁거렸다.
드디어 장엄한 다비식이 끝났다
너나 없이 현미경과 돋보기를 들이대며 사람의 육신이 재로 화한 현장에 달려들었는데, 얼래? 아무리 찾아봐도 사리같은 붉고 푸르고 혹은 녹색에다 보라색, 또는 흰색도 있다는 전설을 매정하게 잘라내며 사리는 도저히 찾아지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 러시아제 망원경을 들고 다비식 언저리에서 침을 삼키고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유레카!
게바랑은 죽어 딱 세알의 사리를 남겻다
그냥 육안으로 볼 때 그것은 붉고, 푸르고 녹색을 띠고 있는 듯 보였지만, 현미경 대물렌즈 위에 얹어 놓고 유심히 관찰한 결과 전대미문의 희안한 사리임이 밝혀졌다.
그 사리 세알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띨. 띨, 이.
뜨악??????????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사리탑을 근사하게 지어 사리탑에 문패까지 달아 놓았으니 이름하여 <띨띨이 사리탑>
그 후로 헤아릴 수없는 세월이 흘러 사리의 문패도 삭풍에 떨어져 나가고 그 사리탑의 소재지도 확인 할 수 없지만, 들려오는 카더라전설의 한 도막에 이런 기막힌 사리탑도 있었음을 엽편기록으로 남겨놓다.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집어 보믄 서방 자랑이지 (0) | 2005.04.08 |
---|---|
거름지고 장에 간다더니 (0) | 2005.04.08 |
내나이 스물일곱에.... (0) | 2005.04.07 |
달과 같이 가겠소 (0) | 2005.04.06 |
심심해서..신장대 이야기 (0) | 2005.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