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요원의 불길
첫 해의 논농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8년 내리 대풍이라고 떠들던
때였던가?
해가 바뀌고 봄이 되어 새 농사를 시작하려면 먼저 논을 갈아야 한다.
가을갈이를 해야 흙이 뒤집어져서 해충도
죽고 잡초도 죽는데, 우린 어설픈 농사꾼이라 하여간 무엇이든 막바지에 가서 하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추수를 하고 짚을 들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봄에 물을 먹은 짚 들어 내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불을 붙여서 태우는데 논에 남아 있던 짚들이 불이 붙어 오는
모양을 나는 논둑에 쭈그리고 앉아 바라 보았다..
속으로 생각하길.. '음, 저걸 보고 요원의 불길 이라고 하는구나..'
머리 속은 온통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속에 깃발 날리는 중원 들판의 그림으로 가득했는데.
물에 조금씩 젖어 있기는 했지만,
짚삐까리에 불이 붙자 감당이 불감당이다. 너른 논은 온통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고 나는 놀래서 도망가기 바빴다.
그 날 농촌지도소에서
트랙터로 논을 갈아 준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왔었는데(아마 국제트랙터 존디언가 뭔가 피알하려는 행사이지싶다), 논 가는건 고사하고 새댁이 끄실라
묵는다고 다들 불 끄느라고 난리가 났다
뒤늦게 찾아 온 남편은 똥 씹은 인상을 하고서는
"어이구..몰라도 어찌 이리 모르누...끌끌"
요원의 불길!
그거 함 구경하려다, 죽을뻔 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