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고스방과 컴퓨터

황금횃대 2005. 4. 26. 15:34

세상 사람들이 다 컴퓨터를 배워도 나만은 절대로 배우지 않겠다는 고스방의 마음이 변했다.

 

 

로또니 조또니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매주 이만원 내외의 현금을 투자하면서, 이번에는 당첨번호의 숫자 배열이 ㅁ모양이네, 아니면 사선모양이네, 이번의 경우에는 뭐 북두칠성의 국자모양이래나 나름대로 그 숫자배열의 모형에 매번 연필을 들고 여섯 숫자의 기하학적 모양에 매달리더니, 이제는 스포츠 신문에서 본 정보로 어데 컴퓨터로 번호를 찝어낸다는 방법을 알아냈나보다.

 

 

아무리 연필을 들고 가로 왈, 세로 줄, 그어봤자 매번 본전도 건지지 못한 상태인데, daum운세에 나오는 믿거나말거나표 그날 운세조차 신주단지처럼 귀히 여기며 철썩같이 믿는지라, 컴퓨터가 찝어내 주는 번호야 말로 인간이 근접치 못하는 하늘이 내리는 번호라 믿을 것이 뻔한 일이다.

 

 

우리(여기서 우리라 함은 컴을 자유자재로 쓰는 나, 아들, 딸 이렇게 셋을 말한다)가 컴퓨터에 의자 세 개를 붙여놓고 히히낄낄 하고 있는 동안 고스방이 조용히 다가와 내 뒤통수를 치면서, 세상이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사정의 칼날이 허공에 열십자를 긋는 순간인데도 그냥 히히낙낙하는 사람은 조선에 이 여편네 혼자 뿐이리라는 극단적 멘트를 날리고는 비켜봐!하고 우리를 밀쳐낸다.

 

 

우리는 하나같이 우리가 컴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기막힌 인터넷의 세상을 정당화시키느라 남편 혹은 제 에비에게 컴을 배워보라고 간곡히 이야기 한다. 그제서야 계면쩍게 웃으며 컴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얹어 보는 고서방! 실로 우리가 구닥다리 헌 컴퓨터를 들여놓고 밤낮으로 껌처럼 달라 붙어 산 세월이 사오년 남짓인데, 오늘 처음으로 컴 앞에 정식으로 고스방이 앉은 것이다

 

 우린 너무 감탄해서 잽싸게 한글자판 연습하는 곳으로 고스방을 인도한다.

 

"여기다 이렇게 손을 갖다 얹으세요 스방님."

"여기 도돌도돌한 부분이 검지가 올라 앉는 자리야 아빠."

 

 

모르는데는 장사가 없다. 그냥 그 승질 디러븐 고서방이 고분고분 손가락을 얹어서는 자판 연습 프로그램이 작동하는데로 손가락을 눌러보지만, 츠암내, 그것이 뭐 자다가 떡 먹는 일처럼 쉬운 일인가..아직 손가락에 힘도 없고, 자리도 생전 처음 보는 것에다 기억,니은 파자로 나오니 제대로 눈에 들어 오지도 않고, 조금만 길게 누르면 같은 글자가 다다닥 찍혀 나오니 이마에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 중이다. 그러면서 한 십분 용을 쓰며 연습을 하고, 빽스페이스 어설프게 누르는 동작까지 배웠다.

 

 

우리는 뒤로 고개를 빼물고는, 험, 험, 머 그기 그렇게 빨리 되능기 아이고 인내심을 가지고....이럼시롱 잔소리를 해대며 돌아보면서 우리끼리 눈길을 맞추고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손목이 아프네 손가락이 희안하게 힘이 들어가 경직이 되네 하면서 의자를 뒤로 빼 버린다

 

 

"어허, 그기 그래 쉽게 되는기 아이라카이까네" 하면서 또 한마디 한다. 그러나 이 고스방이 어떤 고스방인가? 이십여년을 피워오던 담배도 단칼에 끊어버린 위인이 아닌가? 오늘은 시간도 없고, 손가락이 아파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하더니 볼펜을 꺼네 손가락 위쪽에 기본자리 글쇠를 써 가지고 일을 나간다. 차 안에 앉아서 심심할 때마다 연습을 하겠단다. 허걱!!!

 

 

장난삼아 권했던 것인데 저렇게 열심을 내어 배운다면 금방 자판을 깨치고 우린 그나마 셋이서 머리 터지게 쟁탈전을 벌리며 차지하던 순서에 고서방을 끼워 넣어 줘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지금부터 걱정이다.

그 큰 눙깔을 부라리며 비키라면, 순서야 어찌되었던, 설령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일지라도 아바이가 하겠다면 당장에 자리를 비켜야하는데...그리되면 꽃 피고 새 우는 좋은 시절은 그냥 물 건너 간 일이 될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는 없는 돈에 적금을 들어 남편 몰래 노트북을 사야 할 것이며, 고스방이 피시를 차지하고 자판 연습이나 채팅을 하는 동안 우린 숨 죽이며 소리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 쓰고 후렛쉬를 켜고는 노트북을 두둘기고 있을지 또 모를일....

 

오 주여! 그럴 일은 없기를.

 

부록

고스방은 지금도 컴퓨터 모니터 스위치 눌러 모니터가 깜깜해지면 컴이 꺼졌다고 알고 있슴. 아무도 이 사실의 진실을 꼰지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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