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그 자리, 내 자리

황금횃대 2005. 4. 24. 22:31
그 자리


촌으로 시집와서 비교적 욕심을 많이 낸 것이 뭐냐면
봄이면 철둑 가에 지천으로 핀 제비꽃 여인숙입니다
시남시남 꽃대를 밀어올려 보리쌀만한 꽃망울을 만들어
"얼레? 여인숙 문 열었네, 봄이 왔나봐"
한철 장사- 제비꽃 여인숙
철 없던 신혼시절 그걸 꽃삽으로 퍼 옮겨와
우리집 화분마다 심어서 졸래리 놓고선 제비꽃 방갈로를 맹글었지요
욕심처럼 방갈로는 번성하지 않고 매번 망했습니다
씩잖은 불륜의 냄새 팍팍 풍기는 방갈로보다
화물트럭 운전사 고린내 나는 발가락 요대기 밑으로 들이 밀어도
여인숙 간판이 좋았나봅니다

그 자리가 내 자리라 굳게 마음 먹은 모양입니다




내 자리



신혼 초에야 친정가믄 그리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신하니 앉아 있지 않아도 되고, 시도 때도 없이 채리는 밥상도
거기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고 잠 자려고 누웠으면 머리통
땅바닥에 대이기만 하면 꿈나라에 떠나 버렸던.

하나, 둘씩 내 새끼가 생기고, 기저귀 가방 챙겨들고 업고 걸리고
친정 다녀오는 사이사이에, 이상하지요? 내 자리 꽃자리가 어느듯
스리슬쩍 내 사는 곳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트럭 시동 안 꺼진 소릴 내며 코 골고 불 불며 가끔 무호흡으로
사람 가심 놀래키게 하는 고스방의 요란한 효과음을 듣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삼일 친정 갔다오믄 눈이 옴팡 꺼져버리는 이유를 제비꽃 여인숙
에서 찾습니다
판판한 방바닥도 내 몸의 굴곡을 따라 세월만큼 꺼져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기사,
그렇게 밤마다 난리지랄을 하는데, 방바닥 그건들 견디겠습니까?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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