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촌구석 사는 재미

황금횃대 2005. 4. 28. 08:45

 

 

 


<자주괴불주머니/ 광주사는 박아무개씨가 담양 근방에서 찍었다고 얘기해줬다>

 

 

 


 

예전에는 눈만 뜨면 한 줄 못써서 안달을 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 그 시간이란게 세월이란 명찰을 붙이고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니 그 짓도 시큰둥하다. 겨울 동안 담궈놓은 김치에 아랫채에 쌓아놓은 쌀가마니만 축내며 한 철 지내고, 이렇게 요즘같이 산뜻 발랄한 봄이 찾아오면 묵은 김치 냄새만큼이나 생이 구차스러워 지는거라. 그러니 봄날이 되면 날씨의 기운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라면 등산화에 옷에 울긋불긋 갖춰입고 삽짝을 나서 콧구멍에 새바람을 넣으러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즘 꽃피는 촌구석에는 새순 뜯어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집 뒤안에만 하더라도 가죽 순에다, 옆집에서 날아와 씨가 벙기어 제법 뒤뜰에 제 식구를 불려 놓은 취나물 각시가 있는가 하면, 죽어라도 끊어내어도 어느 틈엔가 살아나 빌빌한 배나무를 타고 올라 무성한 덩쿨을 내놓는 으름순이 있다.

 

 

 한참 으름덩쿨은 보라색 꽃을 망울망울 게워내 놓았는데 이 덩쿨이라는게 얼마나 생명력이 있는지 한 뼘 떨어진 곳이라도 제 몸이 기댈 여지가 있으면 죽으라고 그곳으로 손을 내밀어 기어이 그 곳에 착지를 하고 마는 것이다. 배나무 위에는 전선이며 유선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는데 온통 으름 덩굴이 뒤덮여 아주 원시림의 한 조각을 보는 듯 우거졌다.

 

 

 저렇게 꽃이 많이 피면 늦가을 어름이나 떡, 떡, 벌어지게 매달아 놓으면 좋으련만, 어디서 열매는 다 빠트리고 봄이면 꽃만 비누방울처럼 팡,팡, 터져 준다. 그 으름 순을 따다가 삶아서 무쳐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아버님이 아침 밥상에서 미나리를 드시며 말씀하신다.

 

 

 다문다문 산쪽에는 제법 고사리도 올라오는 모양이다. 부지런한 새처럼 일찌감치 뒷산을 돌아 산책 삼아 나가는 사람은 제법 앞섶에 두어 오큼의 고사리를 뜯어다 삶아서 볕드는 평상에 자랑스레 널어서 말린다. 그걸 본 사람은 샘이 나서 앞다투어 산으로 시도때도 없이 오르는데 바야흐로 산에는 뱀이 다니는 보이지 않는 길 옆으로 고사리 끊으로 가는 발길이 다져 놓은 새하얀 길이 생긴다.

 

 

 동네 회관에서는 바쁜 와중에도 한번씩 밥을 해 먹는다. 김천아주마이가 뜯어다 놓은 시금치에 부추로 반찬을 하고, 가죽나무 순을 뜯어와 장떡을 구워서 된장 맛있게 끓여 모둠밥을 해 먹는다. 무료한 하루를 보내던 할머니들은 봄날의 기운을 그렇게 받아 들이고 해가 지도록 세상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세상 이야기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이 아니고, 들으면 꿈 속에서 듣는 이야기 마냥 아득하고 아늑하다.

 

 

 감나무 아래 빨래를 널러 가면 빨래줄 아래 그늘이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굳이 고개를 들어 감잎의 크기를 가늠하지 않아도 그늘을 보면 감잎사구가 어데만큼 컷는지 알 수 있다. 탁, 탁, 털어 빨래감을 널면서, 며칠 뒤에는 감나무 평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도 햇볕이 들이치지 않겠구나..이런 가늠을 해 보는 것도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사람의 일도 그러하고, 사람이 살면서 깨달아야 할 일도 역시 그러하다. 미루어 짐작해 보는 일, 그것은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쓰면 또 목 울대를 건드리며 넘어가는 막걸리처럼 꿀떡꿀떡 쓸 수 있는데, 자주 게을러짐은 무슨 연고인지...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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