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시나 싶어 자주 내어다 보는 뒷마당에는 살구나무가 있어요
요즘 쟤나걔나 심어쌌는 양살구 말고, 오리지날 참살구래요
동네 초입 매화꽃이 화르륵 피어나면 뒷마당 늙은 살구나무에도 질세라 꽃이 피지요
울 시고모님 나던 해 심었다니, 올해로 시고모님 연세 여든 일곱이시니 나무도 또한 그만한 세월이 흘렀지요.
첫 딸을 낳고 가마골 밭둑가에는 벽오동을 심고, 집 안 울타리 안에는 참살구를 심었던 시할아버님의 마음을 지금은 도저 알 길 없으나 그 때를 기념하여 심은 참살구는 오래도 살아 남아 수령 백년을 향해 갑니다.
참살구 연분홍 꽃잎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뒷마당은 살구꽃잎 퍼다 나르는 풍경이 꿈결같어요.
장꽝 오짓독 뚜껑, 고인 물을 아침 새들이 먹으러 오면 살구꽃잎은, 우물가에서 급히 물을 찾는 총각의 바가지에 츠자가 버들잎 띄워 사래를 막았다는 옛이야기처럼 동동 떠다니며 새들의 사래를 막아주재요.
봄비라도 급히 몰아쳐 내리는 비가 두어번 내리면 나무는 어느 새 푸른 옷을 갈아입고 은행알만한 살구를 매달고 있시요. 며칠 쳐다보지 않으면 살구는 또 애기마고자 단추만하게 자라있어요
날이 새도록
밤 새워
설익은 살구 떨어지는 소리
툭,
툭.
사이사이로
달빛 옆에 앉는 소리
사브작,
사브작.
살구 소리, 달빛 품새에
잠 깨인 마음
꼼짝않고 누웠어도
귀 기울이는 몸짓
엎치락,
뒤치락.
설익은 살구가
장독 뚜껑을 두드리며
따당따당 떨어집니다
장마가 한창일 때
노란 살구는
뒷마당이 비좁도록 떨어져서
불개미와 나는
살구 주으러 다닌다고
정신 없을테지요
어제밤은
시할머님 제사였습니다
오래된 딸들도 와서
제사를 지내고
괴팍시럽던 당신들의 어머니를 기억하며
옛자락을 들췄더랬지요
십원짜리 민화투장 던져지는 갈피갈피에
피난 살림 구구한 사연과
일제시대 피죽도 못 먹고 굶었던 이야기
잠깐 사이에 만국기 휘날리는 운동회 풍경과
오래비가 구여워하던 세째딸 열병으로 죽은 이야기까지
울구고 되새김질한 질긴
삶들이
미제군용 담요 -한귀퉁이 청국장 띄우다 눌어먹은-
그 잔디같은 담요 마당에 좁다란 화투장과 같이 떨어졌지요
날밤을 새는 그 시고모님들의
가물가물한 청력 속으로
오짓독 뚜껑 대신 엎어 놓은 스뎅다라이에
살구 떨어지는 소리가 뚜당뚜당
들렸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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