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뒤안 청소를 했어요. 봄부터 삐죽삐죽 올라온 것들이 성시를
이루었어요. 거기다 감꽃이며 불두화, 으름꽃들이 떨어져 자잘한
부스러기들이 하수구 구멍을 막아싸서 죽것어요
우후죽순 올라온 골담초를 잘라내고, 박하 가지도 단호히 잘라냈어요
어머님 아버님이 거들어 주셔서 나는 대략 삽들고 가지들을 모아 치우고
뒤안에 버섯 올라온 것도 잘라서 말려 놓습니다. 촌집은 아무리 치워도
거기서 거기야요. 뒷마당 치웠으니 내일은 앞마당을 치우실래나.
보름정도 신경을 바짝 썼더니 내가 좋지 않아요.
오후되자 식은땀에 심장 부근이 또 답답해집니다.
멀리 사는 친정남동생, 그러니까 막내야요. 막내동생이 안부전화를
걸었는데 "여보세요" 이 한 마디만 듣고도 동생이 그럽니다
"누나, 몸이 많이 안 좋아요?" 핏줄이란 또 이런건가...싶어서
마음이 울컥합니다. 괜찮은데 하고 숨겨도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구만 하며 걱정이 늘어졌습니다. 혈압의 수치를 묻고 약은 꼬박
꼬박 먹는지 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지 챙겨서 묻습니다.
그녀석은 나와 여덟살 차이가 나지만, 내가 구입해 놓은 책을
녀석은 꼬박꼬박 읽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마음의 교류는
그 애와 가장 밀착되게 했었지요. 막내인데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날 생각하고 친정부모님께 살갑게 잘 합니다. 그런 것도
나이드니까 참 고마운 일입니다.
수도물이 밤 10시부터 나온다고 해서 샤워하고 잘려구 기다리고 있어요
2.
어젯밤, 고스방이 체했는가 밤새도록 고생을 했어요
새벽 세시쯤..속이 영 불편하다며 자는 나를 깨워 등을 두드리라고해요
몸은 일어나고 눈은 그대로 감은 채 등을 두드리고 있는데 우웩 하더니 토하기까지 합니다
꽉, 체했나봐요
얼른 화장실에 가서 대야를 갖다주고 방에서 그걸 보고 있자니 잠이 달아납니다.
고스방은 계속 아구 죽것어~하며 토하고 나는 그걸 보고 있고, 아! 그런데 그 때 오시기 시작했어요 비님이.
자는 방 옆에는 이렇게 붉은 양철지붕의 아랫채가 있어, 빗방울이 시작되면 금새 양철지붕은
또닥또닥 빗소리를 생산해냅니다.
점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잦아요 나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고스방은 어지간히 토했는가 날 보고 헹굴물을 가져오라하고 수건을 달라내요. 그러고는 휴지를 찾아 뒷처리를 합니다. 스방이 술을 잘 먹고 가끔씩 이렇게 한 채반씩 내 놓으면 스방이 웬수같아지지 않을까.ㅎㅎㅎ
약을 먹고 너무 힘든지 고스방은 금새 잠이 들었어요
나는 한참을 빗소리를 더 듣다가 잤지요
아침에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서 콘크리트 바닥에 비가 티읕티읕 내리는 소리가 많이 나네요
몇 십년 세월을 빗물이 핥고 내려간 양철지붕은 가장 자리가 저렇게 낡았습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 양철지붕 처마 아래 누굴 기다리며 낙수물을 손바닥에 받아 본 기억이 있지요?
줄줄이 흘러 내리는 낙숫물을 받으며 쪼그리고 앉았노라면 등때기 슬쩍 한기가 건들기만해도 그 날은 감기야요. 그래도, 까짓 감기 함 걸리더라도 누굴 기다리며 낙숫물 받던 놀이를 문득 해 보고 싶다는.
그게 뭐그리 좋은 거라고 마음에 생각이 일자 고만 간절한 눈빛이 되고 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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