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장꽝을 소개합니다

황금횃대 2005. 6. 20. 00:20


 

어제는 오래만에 옥상에 올라갔다

뒤안에 날라래미 놓여있는 장꽝 풍경이 한낮의 햇살을 스폿라이트처럼 받고 있다

나는 나비넥타이를 메고 줄이 긴 마이크를 손에 잡으며 줄을 밟지 않으려고 잠시 오른손으로 마이크 줄을 슬쩍 들어 준다.

 

장독 소개를 해 볼까?

젤 뒷줄 퍼런 플라스틱 다라이덮어 놓은 것부터 소개를 하면 올림차순 서열이 된다.

젤 앞줄부터 소개하면 내림 차순이 되겠지.

젤 앞줄에 보이는 납다그리하고 희미한 돌멩이가 보이지. 이건 짱돌이라고 초겨울 지고추를 담그고 짚으로 아구리를 단단히 치고는 고추가 붕 떠 오르지 않게 눌러 놓는 돌멩이다. 저게 장꽝 바닥에 빈대처럼 엎드리고 있어도 울 시어머님 시집 왔을 때부터 있었으니 시시하게 명짧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저 돌이 생길 때부터의 시간을 생각하자면, 사람의 칠십평생, 백수기념..이런 것들이 갑자기 우스워지지.

 

납다그리한 돌멩이 옆에 있는 항아리. 요건 작년 장물 단지다. 작년에 장 담궈 찔레꽃이 장물 위에 피고 맑은 콩나물국물처럼 연하던 장물이 달여지고 일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제법 장물 빛을 낸다. 저것이 장빛을 내기까지 장꽝의 사계는 수천년의 되풀이 프로그램을 한 번도 거스른적이 없었을게다.

 

첫째줄이 끝나고 그 다음 두번째줄 장독 소개

하얀뚜껑을 덮고 있는 장독은 올해 뜬 된장독이다. 고 옆에 독에 가득 담았는데도 된장이 조금 더 남았다. 이 때 우린 아쉬운 한 소리를 하게 되는데, "아이고, 요것보다 쪼매만 더 컷으면 좋겠네" 희망이 이렇더라도 장독은 고무통이 아니라 늘어날 생각은 꿈에도 않는다.나란해 된장독 두 개 건너가면 고추장 독이 나온다. 작년 묵은 고추장도 쪼매 남았고, 햇고추장은 아직 개봉조차 안 했으니 고추장 단지가 세 개로 졸래리 어깨를 겯고 앉았다. 작은 독은 왜 앉았다는 표현이 앞서고, 큰 독은 졸래리 섰다는 느낌이 먼저 오는지.

 

희멀거니 허연 플라스틱 통은 계량김치통이다. 고서방이 차를 세워두는 주차장에는 상주하는 홈쇼핑 매장이 있는데 심심풀이로 들른 그곳에서 고스방은 자주 세간살이 부엌살림을 사다나른다. 저것과 같은 계량 김치통을 두 개나 사다놨고, 어느 날은 분쇄기를 또 어떤 날은 후라이팬을 사오기도 한다. 라면을 끓이면 맛있다는 유혹에 자루 달린 냄비를 사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생선을 굽는 마주덮힌 네모난 후라이팬을 사오기도 한다. 이유가 궁색한 날은 숟가락 젓가락을 10쌍 사와서 먹던 숟가락을 모두 거두며 하는 말,

"숟가락이 똑 같으면 내 숟가락 젓가락 골라야하는 번거러움을 덜어주거등 좋지?"

"퍽이나 좋겠수"

희멀건 플라스틱 김치통 옆에는 무엇이 있나..올커니 빈 독이다.

 

그 뒤로 소금 독이 두 개가 있고 양은 솥뚜껑 옆에 있는 것이 햇장물 독이다. 얼마전 메주를 건져내 된장을 뜨고 장을 다려 다시 부어놓았다. 저 장물독의 용량은 대두 열 말 짜리다

 

대두 열말의 계산을 어떻게 할까. 일점 오리터짜리 썬키스트 오랜지 쥬스 133.33333병이 들어가는 용량이다. ㅎㅎㅎ이래도 뭐 실감이 될까?

 

젤 뒷줄의 단지는 주로 쌀이나 곡식, 고추를 넣어 두던 장독인데 대개 쌀 두 가마니 분량이 거뜬이 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뒷줄에 절간 사대천왕처럼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우리의 옛 질그릇 독장이들이 얼마나 아기자기 했냐하면 한 아름도 넘는 독을 만들면서 독 둘레에 둥근 선을 치고 돋을새김 된 선 위에 살짝 살짝 간격을 두어 돋을새김을 눌러 주어 무늬를 만들었다. 마치 장 담그고 새끼줄을 꼬아 감고 숯이나 고추를 끼워 넣은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같다.

 

지금은 큰 독의 뚜껑을 열면 세월의 거미줄이 얼기설기 엮여져 볼썽 사납지만 한 시절 작은 집 식구에 꼴머슴 상머슴에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할머니, 그 아래로 퍼진 식솔들의 먹거리를 일년내내 말 없이 저장해 주던 공간이였다.

 

장독 뚜껑 위 빗물이 고이면 날아가던 새들도 내려 앉아 목을 축이니 사람을 살리는 공간도 되었지만 자연도 쉬어가는 공간이였던 것이다. 새들이 그러했음에 햇빛인들, 바람인들......

 

 


 

보이는가 힘껏 팔을 휘둘러 그려넣었을 저 둥근 무늬가. 도공의 마음도 둥글둥글 둥글었을거라.

 


사철나무 그늘 아래로 퇴진한 오짓독들. 떡 시루들...퇴역장성들의 자리는 췻덩 향기 날리는 그늘이여라.

 


 

감히 빨래건조대도 앞을 가로 막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높은 자리 터줏대감.

시월 초사흗날 터주는 새옷을 갈아입는다. 짚옷을 벗기면 작은 항아리가 있어 새로 찧은 쌀, 젤 처음 받은 쌀을 기억하여 넣어준다.

터주는 사람으로 치면 대주(가장)과 통한다.

터주의 안전이 곧 집의 대주의 안전과 연관이 되어 항상 터주 주변은 청결하다. 그러나 돋아나는 풀들은 호시탐탐 터주의 옆자리에 끼어들고.

 

 


 

철 없던 새대기시절, 고스방과 싸우면서 부애가 나 이 단지의 뚜껑을 터주 머리에 때기나발쳐서 박살이 났다. 옛날에도 이야기했었재..ㅎㅎㅎ 그 후로 이 단지는 뚜껑없는 세월을 홀애비로 살았다. 지금은 저런 장독을 덮을 만큼 큰 뚜껑이 아예 생산이 되지 않는다. 귀한 걸 겁없이 때리뿌싸뿌릿다.

 

옆으로 씽크대 스뎅판 덮어 놓은 곳이 돌확이다. 빗물이 들어가 자꾸 모기가 생겨 내가 덮어 버렸는데 예전에는 저기 돌확에 콩고물도 빻고, 고춧가루도 빻고, 약초도 찧고...그렇게 해먹고 살았다.

 


 

장꽝의 배경은 서로의 손을 잡으려 애쓰는 담쟁이들이 있고, 골담초가 자라고, 가죽나무가 담장 너머의 풍경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도란도란 늘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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