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권력의 단맛!!

황금횃대 2005. 6. 21. 00:02



 

어제 포도밭에 비가림 시설을 놉을 얻어 했지요

낮에는 더우니까 아침 여섯시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식구들 밥 챙기랴 일군들 밥 챙기랴 아침부터 땀이 삐질삐질 나요

밥 먹여 출근시키고 등교 시키고 일군들 밥을 아버님 차에 싣고 포도밭에 가서 아침을 먹었어요

다섯시 반에 일어나 올뱅이국 한 솥 끓이고 반찬 챙겨 그릇하고 숟갈하고 함지박에 넣어서

가져 갔거든요.

 

아침 먹고 뭐 포도 알 솎기 한 골 하고 나니까 또 점심 먹을 때라, 또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점심으로 일군 중에 나 많은 이가 돼지고기 국을 끓여오래요. 자기는 그걸 좋아한다고

엥간하면 식당에 시켜줄라고 했디만 특별히 주문을 하니 푸줏간 가서 목살을 덩어리로 끊어다가

딩글딩글 썰어 무 삐져넣고 돼지고기가 더글더글하도록 국을 끓였어요

그걸 아버님 차에 싣고 한 시 다 되서 가는데 나는 점심먹고 일을 또 해야하니까 스쿠터를 타고

갔어요. 아시죠 매태지라는 이름이 붙은 50cc 오토바이.

 

날도 더운데다 밥 하느라고 후다닥 거렸으니 얼마나 더워요 그래서 스쿠터 타고 가면서 창모자만

쓰고 하이바는 안쓰고 기냥 달렸지요

근데 한 백 미터쯤 갔나 뭐가 뒤에서 빵빵거리는거라 나는 뒤 따르든 아버님 차에서 나는 소린가

싶어 뒤돌아보니 아이고 이게 뭐야 경찰 순찰차가 따라붙은거라요.

 

오토바이 하이바는 앞 바구니에다 실어놓고 그랬으니 더 민망하죠

하도 더워서 요기 잠깐 간다구 못썼네요 하면서 미안하고 겸연쩍게 이야기하니까 경찰관 아저씨

좀 봐달라고 부탁할까바 미리 선수 치느냐고 얼굴을 얼음짱 같이 만들어가지군 오토바이를 옆으로 세우래요. 그러고는 면허찡을 달라해요. 면허찡 없는뎁쇼. 그럼 무면허 운전이시네요 무면허는 현장체포입니다. 아 그러더니 자기 차에 타고 지서로 가재요. 이런 낭패가 있나

 

뒤 따라오던 아버님께서 차를 세우시고 지금 일군 얻어서 밥을 갖다 주러 가다가 그랬는데 하이바 쓰고 갈테니 쫌 봐주라고 몇 번 좋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현장적발인데 봐주는게 어딧냐구 기어이 끌고 갈라해요. 그래서 아버님이 우리 며느린데 내 면허증 보여줄게요. 나중에 밥 갖다 주고 지서로 갈팅게. 그럼 3시까지 오세요

 

내 이름하고 주민번호하고 물어봐서 알려주고 나는 그럼 세시까지 갈테요 하고는 오토바이 타고 밥 갖다주러 횅하니 갔죠. 원래는 오토바이 세워 놓고 걸어서 가야하는데

 

밭에 가서 점심 주면서 시동생한테 이야기 했어요

시동생이 방범대원이거등요. 그래 방범대장이며 이곳 저곳 알아보고 전화를 해대는데 다들 싫어하죠. ㅎㅎㅎ 요새 누가 그런거 봐 달라고 아쉰 소릴 대신 해 주것어요

결국 시간이 흘러 세시가 꾸역꾸역 되가네요

실쩌기 겁도 나데요. 생전에 내가 파출소라고는 놀러라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는데 여기 살아도 한번도 거긴 안 들어가봤세요. 오며가며 맨날 그 앞을 지나치긴해도.

 

맥이 풀리는게 벌금도 벌금이지만 고스방이 맨날 면허 따라고 노래를 불렀는데도 안 하고 있다가 이런 꼴을 당했으니 고스방 잔소리가 오뉴월 쇠부랄처럼 늘어지게 생겼세요. 아이고 듣기 싫은 잔소리.

 

갑자기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빽 하나!

그려 면장님한테 전화를 해보자.

다행이 예전에 연락 관계로 번호가 입력 되어 있어서 전화를 하니 일요일인데도 어디 갔다 오는 중이라며 좀 우는 소리로 무면허 적발됐는데 우째 쫌 해조요 했더니 알아보겠다하데요

허이구 한숨 돌리고 지서 주변에 가서 뱅뱅 맴돌고 있으니 약속한 세시가 다 됐어요.

먼발치에서 보니까 아침에 그 순찰차가 모퉁이를 돌아 지서로 쏙 들어가는거라. 그 경찰은 그 때부터 조서 쓸 준비를 하면서 목이 빠지게 날 기다렸겠죠?  십분, 이십분, 삼십분. 촌 여편네가 오란 시간에 오지도 않고 느닷없이 윗선에서 연락이 와서 고만 훈방조치 하라고 애기가 나오자 좀 거시기 했겠져. 그 경찰한테는 참 미안허구만요.

 

나중에 상황이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 후에 음료수 한 박스 사들고 지서에 가서 쌕,쌕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니, 그 경찰관 아저씨, 아지매는 아지매 할 일 다 하고 오능교? 하고 볼멘소릴 합니다.

농새꾼이 우짜것슴니까 일꾼 불러 놨으니 일부터 먼저 매조지고 와야재..지송합니다.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니 옆에 나이 좀 드신 경찰 아저씨가 됐다고 그만 가 보라 하네요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나를 적발한 젊은 경찰관이 그래요

"아줌마 그냥 가시게요?" 그러는거라요. 이건 또 무슨 염새이 물개똥 싸는 소리여 그럼 그냥가지..속으로 이렇게 생각이 들더만 홱 다시 돌아서면서 그 젊은 경찰한테 가서 내가 한 마디 했주

"그람 아저씨 함 업어 드리고 갈까유?"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일순 나타나는걸 놓치지 않고 면허시험 일자가 언제냐고 잽싸게 묻습니다

경찰관 아저씨 엉겹결에 날짜를 봐 준다고 책상 위에 붙은 메모지를 찾아보고 7월 11일이라고 대답을 해주내요 나는 여세를 몰아 준비할 서류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몰아서 숨도 안 쉬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고만 대화의 방향은 완전히 틀어져 버러 <그냥 빈손으로 가시는가요?>에 대한 더 이상의 말이 물 건너 가고 말았세요. 내가 생각해도 참 고단수고 사악합니다.

 

유유히 지서 유리문을 열고 나오면서 면허 따고 오토바이 타지 내 안 타리라 어금니를 깨물었세요

 

오늘 포도밭에 도시락이며 얼음물 싸서 가방 울러매고 포도밭까지 걸어갔세요

2킬로 족히 되요 포도밭까지 거기다가 흙탕물 굴을 지나야지..그래도 걸어갔세요. 내가 한 약속을 내 스스로 지켜야지 싶어서.

 

포도밭에 밥 가방 내려놓으니 옷이 흠뻑 젖었세요.

 

그러기나 말기나 어제 조서쓰고 벌금 했더라면 속이 디게 쓰렸을거인데.ㅎㅎㅎㅎ

이래서 사람들은 권력의 단맛을 좇나 봅니다.

 

 


 

포도가 하루가 다르게 커 나가네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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