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납량특집

황금횃대 2005. 7. 14. 18:04


 

94년 이맘때도 디게 더웠나보다

친구에게 서늘한 그림을 보낸다는게 고작 거미줄 그림이다

영화나 만화에보면 흉가나 귀신 나오는 집을 묘사할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이

저런 거미줄 늘어진 모습이거나 아니면 삐그덕거리는 계단 소리가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책이 한 권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하다못해 <나 오늘 한가해요>하며 책 중간에 규격보다 길다랗게 접혀져 수영복 입고 찍은 여배우 사진이 있는 <썬데이 서울>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잔돈푼 들고 뛰어가면 눈치껏 책을 훑어보는 만화방은 틈만나면 ?i아가는 내 아지트가 되었다. 허기사 그 시절 만화방을 들락거리지 않고 성장했다면 나와는 아주 환경이 틀린 사람들이였을게다.

학교를 오가며 만화방 나무 미닫이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만화책의 표지를 보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였는데 우린 그 때 <기대 심리>가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지금 어디 가서 학부모 교육을 받으면 십중팔구 강사새임이 하는 내용 중에

"자식을 망치려면  자식이 뭘 사달라고 할 때, 그 말에 고물도 묻기전에 사주라"라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기다렸다가 고대하고 학수하고 (뭐가 바꼈나?) 가지는 것이 아니고 말 떨어지자마자 사다 받치는 부모는 바로 자식을 망조의 길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냐는 말이지. 만화방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 돈 10원 얻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다음편 만화가 나올 때까지 무던히 기다릴줄 아는 인내심까지

만화방은 그 시대에 악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이렇게 교육적 측면이 더 많았다. 이렇게 무한 가치를 가진 만화방에 엄마가 한번씩 들이닥쳤다. 없는 살림에 넘이 하는 군것질 침 질질 흘리며 쳐다보는 꼴이 안되서 돈 한 푼 쥐어주면 그걸 냉큼 컴컴한 만화방 나무 의자에 꾸굴시고 앉아 만화책 쳐다보는데 갖다바치는 딸년이 한심하기도 했겠다. 그럼 집으로 끌려와 엄마에게 된통 혼이나고도 그 담날  학교 가는 길이면 만화방 미닫이 문으로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엄마는 모른다. 내가 이즈음 요만큼의 빛나는 상상력으로 살아 갈 수 있는게 다 그 때의 만화방 덕분이란걸..

 

내가 68년도에 초등학교 일학년을 들어갔는데, 그 때 일학년 담임새임이 박명숙새임이였다

입학식 하는는 일학년 오반 초록색 깃대를 들고 우리는 옹기종기 삐뚤빼뚤 줄을 서고 발을 동당거리며 삼월 입학식을 하였다. 삼월이래도 춥기는 매 한가지고 선생님이 우릴 쳐다보며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못 찾겠거등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여자선생님 찾아 오세요"

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새임이 입학식날 하신 말씀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한글이며 다 익히고 학교에 들어가지만, 그 때는 한글 익히고 오는 애들이 드물었다

처음 학교 가서 한달 정도는 붉은 색연필 반, 푸른 색연필 반 이렇게 만들어진 색연필을 가지고 흑표지에 갱지시험지를 오십장씩 철끈으로 묶어서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빨래줄, 전봇대 함씨롱 손가락에 힘키우는 공부부터 먼저 하였다. 점점 크게 동그라미, 점점 작게 네모모양...물결모양, 산모양, 파도 모양...온갖 모양을 먼저 배우고 아버니, 어머니를 배웠다. 아이고 ㄱ, ㄴ,ㄷ,은 또 얼마나 색연필로 썼던가. 뚱뚱한 색연필을 고사리 손으로 힘있게 쥐고 모양을 그리고 한글 자모를 배우고 익히니 글자가 아니 이쁠 수가 없다 ㅎㅎㅎ

 

 

하루는 그 새임이 책을 가져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아용 세계이야기 책이다. 책 낱장이 굉장히 두꺼운 일곱여덟장이면 백설공주 이야기 한편이 끝나고 그림이 더 크고 글줄을 간단한. 그러니까 그림동화책이다.

책이 많이 없으니 새임이 그 책을 가져와 분단별로 돌아가며 번호 순으로 빌려 주셨는데, 나는 이야기 그림동화책을 그 때 처음보았다. 백설공주 그림과 일곱난장이, 왕비와 마녀왕비의 그림이 내게는 너무나 경이로운 것이였다.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있으며 그렇게 이쁜 그림이 책 속에 있다는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책을 수십번도 더 읽고 약속한 날이 되어 책을 반납해야 하는데, 그 책을 선생님께 건네줄 때의 내 안타까운 손가락 모양이 지금도 선연히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분단 책상 사이로 차츰차츰 다가와 내 앞에까지 와서 책을 거둬가기 위해 손을 내밀고, 나는 반납하기 아쉬워 한 없이 책 표지를 쳐다보다가 선생님 손에 건네기까지의 숨막히는 시간을.

 

 

만화책이 오기 전, 이야기책은 그렇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으시시한 귀기 서린 그림을 그리고 주인공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데 어디서 독거미가 쉭쉭 내려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함 써보고 싶은데 어이구 재주 없음이야.

 

 


 

그냥 애들에게....요게 거미야..하고 웃기기나 할 밖에.

 

 

지금도 꿈이 있다면 넘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오금 저리게 하고, 모저리치게도 하는 그런 그럴 듯한 이야기 잘 꾸며대는 공부 좀 했으면 하는 것.

 

 

 

 

 

* 납량특집이 뭐 이래??하고 물으신다면 할말없슴이라고 말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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