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향교로 소풍가자

황금횃대 2005. 7. 20. 08:36



 

대숲 사이로 길이 있다.

모 군수가 <향교로 오르는 길이 수월토록> 길은 계단으로 환치되어 있다.

대숲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혼불>에서 징허게 읽었다.

그 뒤로 대숲을 지나면 바람이 어느 댓잎 사이를 빠져나오나 유심히 살피는 버릇도 들었다.

계단은 세 번의 꺾어드는 맛까지 선사하며 길을 열고 있다.

 

 


 

꺾어 드는 맛!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삶의 낌새도 넉넉 알아차릴거라는 믿음.

난장판이 되도록 한 따까리 싸우고 홧김에 마당으로 뛰쳐나와서도, 눈 안에 들어오는 밤 하늘을 보며 마음을 착 단숨에 내리깔 수 있는 그 꺾는 맛

방학이 되었다고 8시가 넘어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자식놈의 배 우에 홑이불을 끌어 덮어 주는 그 맛!  가만히 생각하면 생은 도처에 꺾어주면서 딴 세상을 열어주는 미묘한 맛이 있다.

저 봐라...돌로 만든 길도 한 번, 두 번, 세 번씩이나 접어 주는 맛이 있지 않는가.

 


 

 

돌계단 길이 끝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학루>가 나온다

좁은 길 한쪽으로 몇 그루 서있는 향나무가 세월의 고단함을 저절로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 아닌가. 여름에는 모든 잎들이 스스로 빛을 내야하는 원칙이 있다. 원칙을 내뿜는 그늘을 걸어가면 가학루가 나온다.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하다"를 줄여 편액하연 건것이 <가학루>

날개짓을 부지런히 하여 학이 날아가고 있는게 아니고, 이미 그 경지를 벗어나 바람을 타고 무심으로 나는 모습을 하였다 하니, 건물이 풍경 사이에 들어 앉는 일도 이렇게 <경지>가 있다.

애써 풍경과 조화롭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거기 그것이 들어섦으로서 풍경이 훨 아름다운 선을 가지게 되는..

 


 

 

모퉁이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모퉁이에서 살짝 정면을 엿보아도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하나 손 댈것없는 풍경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취향이 몬드리안적 면 분활이 아니드래도 나는 이렇게 크고 작은 면분활이 이루어진 풍경을 좋아한다.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더냐

썩어도 좋을 것은 사랑뿐이더냐

몇 백년의 세월이 흐르고도 남는 것은 사랑뿐이더냐.

편,편, 이어진 조각의 마룻장과 우뚝 솟은 기둥들이 조심조심 시선을 쪼개고 있다.

이쪽 기둥에는 내가 기대 앉고, 저쪽 기둥에는 당신이 기대 앉아, 꼭 그만큼의 거리로 사랑을 하고 싶다.

 

 

 

 


 

 

 

하트모양을 새기며 언약을 하던 시절은 이제 지났는가

난무하는 요즘 아이들의 낙서.

아마, 몇 백년 전에는 이런 낙서들이 있었으리라. <魚走九里> 혹은 <足家之馬>..등등

저 검은 글씨가 자못 무섭다. <구라까면 디진다>

매일매일 구라까는 나는 매일매일 죽었다 다시 사는 불사조뇨?

 

 


 


참깨가 꼭 고만큼의 그리움으로 하얀 꽃을 피우고, 꽃이 떨어져 깨꼬투리를 제 몸에 매달 동안

여름은 땀을 흘리며 계절을 관통하고 있다. 저 무성히 피고 지는 것들이 더러는 자연스런 몸짓으로, 더러는 사람의 깨알같은 손길로 피어나고 열매맺는다. 수천년 농경의 관습 속에 땅은 사람의 피땀을 먹고 살고, 사람은 땅의 피땀을 먹고 살고...그렇게 순환을 거듭하며 저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경작의 관습이 틀을 잡아 나가면서 우리의 조상을 무엇을 갈망하였을꼬...

 

 

 



 


향교의 대문은 이렇다

굳게 닫긴 저 문처럼 그 때도 저곳은 가고 싶다고 맘대로 갈 수 있었던 곳은 아니리라

깊은 밤, 달도 없는 밤. 저 문 앞에서 가지 못한 설움으로 땅을 치며 소리없이 통곡하던 그런 사람도 있었으리라.

 


 

향교의 변소간.

이건 옛맛이 좀 없지만...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재래식.

 


 

가학루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샛문.

저 쪽 맞은 편 문에서 바람이 들어와, 이 문으로 빠져나가는 날도 있었겠고, 이 문으로 꽃향기가 들어가 저쪽 문으로 흘러가는 날도 있었겠지.

 


 

변소간 옆에서 본 향교의 정문과 앞마당

 


명륜당과 건물 밑..

건물의 밑을 들여다 보는 일은 여자의 치마를 들춰보는 일에 비할까?

별 것 없다는걸 알면서도 공간을 보면 들여다보는 고상한 취미하며....

 

 


저렇게 기둥과 기둥사이에 집을 앉히면서 어떻게 수평을 잡았을까

나는 건축에 대해 모르니 고개만 갸우뚱하고 말일이지만...좌우균형을 위해 도목수가 뭔일을 했는지 누구 아는 사람없을까?

 


 

명륜당 옆에 서 있는 은행나무, 수령이 꽤 됐을텐데도 나무는 푸른기운을 쉭,쉭, 내뿜고 있다

그 아래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어 암.수나무가 서로 쳐다보며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돌담이 이쁘다.

 


 



대성전 오르는 계단.

아래서 내려다보면 꽤 위협적으로 높다.

오후 세시의 땡볕은 돌맹이계단을 달구어 나는 돌 위에서 굽는 신세다. 땀이 철철...

내가 왜 이시간에 여길 와서 사진을 찍나..의구심이 마악 들기 시작한 싯점.

 


 

대성전 정면

 

 

 


찢어진 창호지 구멍으로 들여다본 대성전 내부

공자의 위패가 있으리라.. 구멍이 어중간한 위치에 있어 사진찍을 때 진땀이 났다.

계단 올라왔지 땀 나지, 다리 떨리지...어디서 날아온 파리새끼는 집요하게 날 따라붙어 왱왱거리지....

 


명륜당의 뒷 페이지..지붕 선과 회벽, 나무 그림자, 돌 바닥, 그리고 햇볕..어느 것 하나 거슬리는게 없다. 다 그자리에서 다툼없이 조용할 뿐. 나 혼자 땀과 더위와 파리와 쌈을 한다 헉, 헉,....

 

 


 

샛문에서 바라 본 변소의 뒷모습..

내 취미중 하나가 뒷모습을 보는 일이다.

절간에 가도 꼭 대웅전 뒷편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온다.

이 뭔 독특한 취향?

 


내려 오는 길..

칡꽃이  피었다. 꽃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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