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거기에 뭘 담을거냐고 물으시면..

황금횃대 2005. 8. 16. 13:44


 

 

1. 빨간색

실이다. 505장미표 모사(毛絲)
초등학교 이학년부터 내내 풀고 짜고, 풀고 짜고 했던 빨간색 독고리. 스웨터 팔길이가 짧아지고 입구로 머리를 넣을 수 없을 만큼 크기가 작아지면 풀어서 내 엄니가 다시 짜 주시던 옷. 낡을수록 탄력도 보온력도 떨어졌지만 조금씩 보태서 짜졌던 엄마의 솜씨.
아직도 그 실은 내 뜨게질 바구니에 단단히 뭉쳐진 한 덩어리의 실로 남았다. 한 벌 옷으로의 완성과 와해의 시간을 겪으면서 결국 따뜻함도, 푹신함도 읽어버린 단단한 공으로 뭉쳐진, 그러나 변하지 않는 빨간색, 엄마의 심장처럼 내도록 따뜻한
'한 덩어리의 실'



2.여린 풀빛


그녀는 수녀원 가기전 3번째의 자작시집을 내밀었다
타자며 프린트며 제본까지 자신의 손으로 하여, 푸른 물감으로 쓴 제목
-배추닢 보다 더 여린 풀빛-을 건네주었다
책을 열어보면 풀빛보다 더 여린 그니 마음이 행간의 사이사이에 이슬처럼 달려있다 그 중 몇 이슬은 나하고의 공감이다
책을 묶은 리본의 빛깔이 십수년이면 저렇게 바래는가
짙은 보랏빛이 세월에 기울어 다 쏟아내고 희미한 자욱만 남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저 보랏빛 피를 토해내고 있나.
'그 시집 세 권'


3.넣어보시게

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쌓여진 것들도 많지
그래서 세월은 흐르는게 아니고 쌓이는것이라 하지않나
누가 나에게 천년만년 보관할테니 딱 두가지 넣어 보라면
저 두가지를 넣으리라
찬바람 불 때면 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던 엄마의 정성과 젊은날의 시간들을 오롯이 지켜내주던 친구와의 밀담같은 편지와 그녀의 시


그거 두개 넣으면..
난,
다 넣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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