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참 헐일없었다. 저걸 맹글어놓고 재봉틀로 박기까지 했으니.밥상보처럼 뵈는지>
글쓰기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조금 힘든 일이다
조금만 느슨하게 잡아도 글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너무 급하게 손가락이 튀다보면 소나기처럼
정신이 없어지기 매련이다. 이런 조절은 금방 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하는 사항이기에 조금 너그러워지기로 한다.
어제는 만고의 모범생 고스방 친구들의 계모임이 있었다
결혼 십칠년을 살아도 따로 계모임같은 것은 없더니만, 이동네 사람들의 개띠들이 어느 날,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58년 개띠계를 조직을 한 것이다.
이곳 시골에는 한 동네 아니라도 면단위에서 학교가 딱 하나씩 밖에 없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동창들이 많다.
그래서 가까운 동네 단위의 모임은 부랄친구 모임이라 명명한 계모임이 있고, 조금 광범위하게 나간다는게 면단위 띠동갑들의 모임이 있다. "늙어 갈수록 친구밖에 존 것이 없어" 하며 계를 조직해서 이놈저놈 끌어당겨 맹글어 놓았으나, 이 심심 골때리는 동네에서도 마음 맞지 않는 놈들이 있는지라 이리 빠지고 저리 빠져 결국 일곱인가 여덟인가 밖에 남질 않았다.
처음에는 열댓명 시작한 모양인데, 계를 시작한지 두어달 만에 한 놈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저세상으로 먼저 가버리고, 제대로 계의 틀을 갖추기도 전에 주머니돈을 풀어 부조금 보태주기에도 바빴던 것이다. 그것이사 뭐 사람 사는 동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두 세번 모이더니, 드뎌 회장도 뽑고 총무도 뽑고, 회칙이란 것도 어데 넘으꺼 빌려다 이름만 바꾸고 조사만 몇 개 비틀고, 상조금 금액만 조정하더니 제법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한다고 고스방이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 오는 경우도 더러 생기는 것이다.
허기사 술 먹는 농사꾼 친구들이랑, 택시 운전하며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입에 안 대는 고스방이란 계를 한다는게 말짱 고스방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 뿐이지만, 이왕 맡은 총무라는 직함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제는 여름도 되얏고, 넘들은 해외여행도 간다는데 우리도 여편네들하고 함 희추나 다녀오지 하면서 날을 잡은 것이다.
완정리 친구가 화물차에다 음식이며 가스불이며 버너에 솥뚜껑 불판까지, 그리고 굽고 지지고 싸먹을 쌈장에 쌈야채에 조목조목 챙겨 실고는 반야사 사이 계곡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깔았다.
뚝딱뚝딱, 10킬로그램 프로판가스통이 내려지고 자동차 하브로 만든 아궁이에 솥뚜껑 불판이 턱 올려졌다. 여편네 몇이서 상추며 오이며 씻고 차리는 동안 수박은 쏟아져 내려오는 계곡 물에 첨벙 돌 울타리를 만들어 갇히고, 소주며 맥주며 음료수들이 연달아 물 속에 잠겼다.
백화산 작을 골을 훑어 내려온 계곡물은 시원하고 깨끗하고 수량이 푸지다.
모동쪽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은 이틀 전 내린 비로 흙탕물이지만 계곡물을 어찌나 깨끗한지 그냥 물을 떠 마셔도 아모 탈 날것이 없어 보인다.
그늘 아래 돋자리를 깔고 삼겹살에 목살에 오리로스까지 대한민국 대표 야외 메뉴로 지글지글 연기가 산속의 공기랑 몸을 섞는다.
점심만 먹기로 한 소풍의 시간이 물 좋고 배 부르고 공기 서늘하니 하냥 물가운데 돌멩이를 놓고 퍼질고 앉아 물 장난하기 바쁘다. 물 속에 들어오면 아이나 어른이나 한 마음이 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웃고 하다가 소나기가 들이쳤다. 모두 깔고 앉은 돋자리를 머리에 이고는 비를 긋는데 그 모습들이 어찌나 우습던지 등때기에 빗방울이 들이쳐도 깔깔 거리고 웃기 바쁘다. 물이 사람의 싸나운 심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검게 그을고 척박한 농사꾼의 발밑에 와우와우 떨어져 시름을 씻어낸다.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뭇잎은 매달린 빗방울 마다 밝은 해를 하나씩 숨기고 숲은 환하게 빛났다. 비 설거지를 하며 종일 먹고 마셔댄 것들을 담아서 집으로 왔다.
이렇게 여름 날, 산뜻한 나들이로 마감을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술이 문제다.
산 속의 풍광에 취해 소주를 마시던 인규씨가 이대로 헤어지기 뭣하다며 2차를 가잖다
고스방은 고만 얼굴빛이 돌아간다.
모임을 하면 항상 1차로 끝내고 말아야 한다는 지고한 믿음이 있는 고스방은, 술 먹고 노래부르며 휘청거리는 모습을 젤 싫어한다. 밥이면 밥, 술이면 술, 이렇게 한 가지고 승부걸고 자리를 옮겨 뭘 먹으러 간다는 걸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바인데, 술만 한 잔 들어갔다면 이차, 삼차를 부르짖는 그들의 습성을 도저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근 자기가 술을 안 먹으니 이핼 못 할 수 밖에.
고스방 늘 하는 말,
"개조또 계금도 얼마 적립되어 있지 않는데 맨날 이차, 삼차 가서 다 깨묵고, 나는 술도 안 먹으니 벨로 흥도 나들 않고만, 즈그뜰은 뭐가 그리 칠랄래팔랄랜지..끌끌"
그래도 개새끼띠들(자기네 말로)의 중지가 그러하다면 어쩌겠는가. 우리집에서 그랬다면 눙깔 휘돌리며 난리를 쳤을껀데 친구들이라 또 한꺼풀 접고 만다.
통산, 결혼해서 고스방과 같이 노래방 간 건 이번이 네번째다.
무엇이든 진지한 고스방은 노래방에서 꼬부라진 혀로 대충 노래부르는 것도 못마땅하다.
가사가 나오는 모니터를 차렷 자세로 쳐다보며 겸허히(?) 진지하게 가사전달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그게 마이크에 대한 예의라도 되는양 그리하는데, 다른 놈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충 건너뛰고 불성실하다. 아...못마땅하다. 그래도 친구들 노는데 기분 거슬릴까바 뒤에서 어정쩡 박수를 쳐주고 있다. 여편네는 어떠한가?
나야 뭐 술 한잔 안 해도 이런데 노는거 추임새 넣는 것은 전문가지러. 노래는 못해도 대충 몸 흔들며 박수치고 싸이, 싸이 하면서 가성을 지르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고 다른 여편네들은 곱게 사알짝 노는대 나는 거의 미친년 수준으로 노니까..ㅎㅎㅎㅎ
고스방, 참 기특하게도 그런거 가지고 암말 안한다. 내가 즈그들 친구 재밋대가리 없이 노는데 분위기 맞춰 줄라고 오바한다는거 아니까. 내가 권하는 술잔마다 시원하게 원샷! 해 버리는 것도 별로 고까와하지 않는다. 워낙 술이 강하다는걸 아니까. 그렇게 받아 마시고 해도 발걸음 하나 안 흐트러지게 졸랑졸랑 서방하고 잘도 걸어댕기니까 어디 발걸음만 그런가, 발럼은 또 어떻구...
그렇게 하루해가 갔다
노래 못 부르는 고스방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를 땐 내 손을 꼭 쥐고 가끔 힘을 넣는다.
사는 일이 팍팍해 잘 오지 못하는 노래방에 어거지로 친구들과 같이 와보니 술 한잔하면서 기 죽지 않고 노는 여편네가 퍽 이뻐뵈는갑다
'ㅇㅓ이, 고스방, 손에 힘주는 이기 뭔 사인(sign)이여?'
하루 일을 못해서 일당을 날렸으면 어떠리. 이렇게 오랜만에 부부간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는게 어딘데. 그 진지 모드의 스방 손을 잡고 딴 놈을 생각한다면 나는 죽일년이지. 껌껌한 불빛 아래 여편네 믹이살린다고 땡볕에 그을은 스방의 목덜미를 본다. 나잇살이 붙어 목덜미는 가끔 두겹으로 겹쳐지기도 한다. 턱수염까지 쇠어가는 남편을 보며...아! 사는 맛이란.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 에어컨을 빵빵 틀어주며 고스방 은근히 한 마디 한다.
<내 조금 일하다 들어갈테니 떡 뽀득뽀득 씻고 기댈려.>
아이고...오늘은 좀 거시기한 스방 맛 좀 볼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