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갓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달에 십만원을 주는 작은 주물회사 경리로 취직했을 때였다. 한여름에도 시뻘걸 쇳물을 성형틀에 붓는 작업의 기막힌 땀 솟음을 이야기 할려는 것도 아니다. 그 공장 공장장이 그 일을 하게 된 배경이 흙으로 조물조물 탁탁 두드려 어릴 적 모래성을 만들던 기억이 자신을 그리로 내몰았다는 이야기를 할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대학생 놈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건 개척교회를 하면서 첨 봤던 울 뒷집 아파트 307호에 살던 놈이였다. 개척교회는 뭐 달리 다른 학생이 있을리 없고 결혼하고 새로 시작하는 목사님부부와 우리 둘이 고등부 예배를 봤던 것이다
그러구러..만나서 차한잔하고 좀 걸어댕기다가 그래도 내가 한달에 십만원 남짓 번다고 밥이랑 쓴 커피랑 내가 다 사 댔던 것이다. 그넘이 내게 늘 자신의 꿈을 이야기 했는데 열심히 살아서 자신은 한 권의 책을 남기는게 소원이라했다. 대학교 댕기는 놈이 그리 말할 때 가방끈 짧은 츠자는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그게 니 소원이구나.
그러던 어느날..회사로 전화가 와서 나가봤더니 돈을 삼만원 꾸어 달란다..필시 어디 미팅가는데 용돈이 급히 필요했나보다. 나는 의심도 없이 선뜻 돈을 내어주고 두어달 지난 뒤에 그넘이 연락이 왔다. 돈을 갚을래나...
근데 이야기는 딴 물결을 타고 있었다. 놈은 심각한 어조로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이러는거였다
나는 그때 참 어리석어서 회사와 집 밖에 몰랐는지라 암것도 아닌 관계(?)였는데도 놈이 그렇게 말을 하자 고만 오뉴월 곁불이 소나기에 폴삭 꺼져 버린 것처럼 허전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일전에 빌린 돈 삼만원은 꼭 갚을께...나는 삼만원짜리 오점을 인생에 남기기 싫다"
나는 그래도 참 순진하였다 한 동안 그 놈이 그걸 아마 갚을거라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돈 삼만원은 영 물을 건너 숲 속에 그림자도 안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돈 삼만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 돈이 없다구 굶어 죽지 않는다
단지..그 넘이 삼만원의 汚點을 등때기 짊어 지고 살 일이 가슴 아픈 것이다
아마...그넘은 꿈을 앞당겨 책을 이미 한 권 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내고는 거품처럼 스러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게 돈을 돌려 줄라고 사방팔방 찾아 댕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연한 것은 내가 아직 돈을 못받았다는 것이고 그넘은 여전히 인생의 汚點을 업고 있다는 것이다
그 汚點을 업고 책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내 츠자적 사랑 안테나는 자꾸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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