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란 말이 나옹께로 또 여기 왔다리갔다리 하시는 분덜은 또 저 여편네 스방하고 싸왔군...하고
이렇게 속짐작을 할지 모르겠다. 땡, 틀렸다. 서방하고는 안 싸왔다.
지난 월요일, 목포로 간 친구들은 토끼띠계모임 친구들이다.
나이가 같으니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아이들의 학년도 고만고만 비슷하고 지역이 좁은께로 시내 토끼띠들을 다 끌어 모아 삼년 전에 모임을 시작했다.
세월이 어찌 빠른지 그동안 계돈도 사백여만원이 넘게 알뜰하게 모았고, 매년 관광버스를 빌려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농사일 끝나고, 감 깎는 일까지 다 끝내고 나면 가볍게 하루 희추를 다녀왔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여서 여차저차 생각들을 모아 스트레스 한번 풀러 동네 밖으로 나가자는 의견에 동의를 했고, 곗돈도 일백만원 웃대가리 잘라 여행비용에 보태기로 하고는 각자 이만원의 경비를 갹출하여 길을 나섰던 것이다.
가기 전에도 밝혔듯이 매번 동해안으로 버스를 돌리더니 올해는 우찌된 일인지 서해, 그것도 목포 앞바다로 직행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불에 덴듯 놀랬지. 아니 얘들이 목포에 내가 정 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줄 어찌알고 그리로 가자는 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나서서 막 좋다하면 호사다마라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까바 노심초사 조심조심 그럼 그렇게 하자, 목포는 한 번도 안 가봤으니 그리로 한번 가보자 하면서 응근히 부추겼다.
날이 밝아 새벽 다섯시에 눈을 떠서는 아이들 교복이며 스방 유니폼을 다 다려서 문고리에 착착 걸어 놓고는 밥을 한 솥 하고, 국도 끓여서 만반의 준비를 하다.
여덟시 조금 넘어 황간 나들목을 빠져나갈 때는 모두 좋았다.
돌아가며 하는 회장의 인사가 있었고, 오늘 하루는 허락받은 하루이니 뽕이 빠지게 놀자는 둥,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하자는 둥 저마다 들뜬 목소리들은 낮츠막한 버스 천장으로 뜀박질을 하며 부딪혔다.
농사지은 집에서 갹출해온 햅쌀 백설기가 한 덩이씩 가슴팍에 엥겨지고 붉은 입술을 칠한 그녀들을 흰떡을 떼먹으며 배암같이 웃었다.
"작년에는 초장에 술을 너머 많이 먹어서 기운 빠져 못 놀았으니 이번에는 아주 한 시간에 소주 한 병씩만 마세가며 우리 조정을 해가미 놀자이"
열두명이 한 시간에 한 병씩의 소주를 마시면, 적어도 스무시간은 버티겠구만.
한 잔을 마셔도 가심패기가 씨원하게 싸르르르 내려가야 소주의 제맛이지. 소주병들이 젤 앞자리 바로 앞에 있는 버스 냉장고 속으로 차곡차곡 넣어졌다.
돼지고기 수육이 스티로폼 박스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꺼내지고, 어제 담근 김장김치를 차곡차곡 썰어 넣은 김치통의 뚜껑이 열렸다.
새우젓이 접시 귀퉁이에 놓여지고, 쌈장이 숟가락으로 동그랗게 떠서 자리잡고, 소주 일순 돌며 김장김치를 뒤집어쓴 돼지고기 수육이 아침도 거르고 나온 여편네의 입속으로 쏙쏙 밀어넣어졌다. 캬~ 역시 이맛이야.
그렇게 대전을 벗어나기도 전에 소주 두 병을 게눈 감추 듯 마셔버리고 한 잔 했으니 한 곡 불러야재..
열 두명이 모두 나와 버스 좌석 사이에 서니 버스는 좁도 않고 널르지도 않다. 딱 맞다.
놀며 웃으며 부르짖으며 박수치며 차는 목포에 닿았다.
유달산 만대이를 그들은 올라가고 나는 플샘과 아우좋아, 희야님을 만나러 올라 갔다가 금방 내려왔다. 별다로 볼 것은 없었다. 요기가 노적봉이래. 옛날 이순신장군이 여그다 볏짚을 쌓아 놓고 군량미 쌓아 놓은것 처럼 보이게 했다는.
올라 가는 계단에 쪼르르 앉아 사진을 찍었다. 몇 판을 찍었는데도 아이들이 뭉기적 거리고 있다
"와 카노? 안 올라갈끼가?"
"아침나절에 얼마나 뛰었든지 계단에 앉으니까 일나기 싫다. 아이고 녹작지근해 나이는 못 속이.."
벼라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점심을 먹으로 한참을 이동을 했다. 플샘의 차가 앞장을 서고 우린 뒤에 졸졸 따라가고.
뻘낙지 전문 식당 쪼브당한 복도를 지나니 식당 안은 제법 너르다.
미리 예약을 해놨기에 맛있는 반찬이 3곱하기 3 배열로 놓여있다.
들어 오는 입구에 낙지 담아 놓은 큰 다라이가 있었는데 화자년이 들이오면서 그놈의 낙지 대가리를 두마리나 손끝에 휘감아 와서는 정신없이 떠들어싸며 농갈아 묵는데 플샘하고 아우샘은 고만 입을 딱 벌리고 만다.
맛있는 낙지회무침에 밥을 한 공기씩 썩썩 비벼먹고, 시락국도 먹고, 맛있는 세발나물도 먹었다. 남도 음식이 맛깔지기는 아주 그만이라. 맵지도 그리 않으니 나는 입에 딱딱 맞다.
잎새주 한 잔씩 마시니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목포의 눈물과 추풍령 고개가 메들리로 상다리가락에 맞춰 매끄랍게 흘러나온다.
아주 난리가 났다. 어찌나 정신이 없든지..주인은 커피 주는 것도 잊어먹었단다.
선착장에 와서는 목포 앞바다를 유람선을 타고 돌았다.
나는 플샘하고 이야기 하느라고 유람선을 타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녀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뱃바닥을 아주 빵구를 낼뻔했단다. 어이구나...(몸살날까바 쌍화탕을 사 먹어가며 놀았단다 ㅎㅎ)
그러자 시간이 네시가 다 됐다. 벌써 바다 저쪽으로 해가 지고 바람은 어둠을 몰고 온다
블로그 친구들과는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분위기가 좀 그렇다.
"와 이래 분위기가 썰렁하노 잘 놀았다미"
알고보니 집으로 가는길에 대전에 내려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두어시간 놀다가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가 결사반대를 한것이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갔었는데 초저녁이라 나이트환경도 별로 안 좋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 우리끼리 노는데 영 서먹서먹한것이 좀 그랬다. 그래서 올해는 가기 전에 나이트는 가지 말자고 암묵적으로 그렇게 얘기가 됐는데, 놀다봉깨로 신명이 신명을 낳으니 가고 싶었던게지. 근데 그 친구는 죽자고 절대 안간다고, 작년에 그렇게 나이트가서 재미없게 놀았다고 갔다와서 돈 아깝다고 그렇게 뒷말을 해 놓구선 왜 또 가려구 하냐고. 나는 그런거 싫다면서. 아주 정색을 하고 말을하니 또 가고싶은 친구들은 다수결로 해서 간다구 하고 그렇게 말이 오가다가 아주 싸움이 났다.
남자들만 술 먹고 쌈하는줄 알았는데 여편네들도 어이구...둘이서 이년 저년 소리에 나쁜년이란 소리가 울먹거리며 나오고 풍경이 휘황찬란하다. 운전수 아저씨는 묵묵부답 운전만 한다.
싸우는 여편네 둘을 떼 놓으니 하나는 젤 앞자리에, 또 하나는 젤 뒷자리 구석에 앉아서 운다
분위기가 썰렁하다못해 아주 얼음이 언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가는데 앞쪽으로는 무조건 가자하는 친구들이 앉고 뒤쪽으로는 혼자 뒷자석에서 훌쩍거리는 친구 설득하느라 몇이 가 앉았고..아조 죽을 맛이다.
한참을 가다가 아저씨가 머쓱해서 틀어 놓은 음악을 좀 꺼달라고 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오늘 목포를 와서 참 기분이 좋애. 느그들 덕분이야.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내고, 선물도 많이 받고, 느그들 참 재미있게 잘 놀아서 너무 좋아. 근데 이기 뭐야..지금. 삼년 동안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친하게 지내던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얐잖애. 내가 대구에서 시집와서 황간 사는 느그들을 우찌 알았나...다 이렇게 계모임해서 날 넣어 주니 내가 느그들하고 이렇게 잘 지내지. 길 가다가 내가 순희를 농협앞에서 우짜다 보면 어떡하디? 아주 죽은 할애비 돌아오신 것보다 더 반갑게 인사하잖어. 맞나? 순희야...<맞다 맞다..순희가 맞장구를 쳐 준다> 그라고 경옥이를 내가 신협앞에 만나면 그냥 웃고 지나간 적 있디? 몸은 안 아픈가, 우째 지내나 꼭 물어봤재.. 그라고 화자가 무쏘타고 휙 지나가면 나는 지나간 차 뒷꽁무니에다 대고 손 흔들어, 가스나가 빽밀러라도 날 보고 웃지 싶어서...그렇게 나는 했는데 지금 왜 그러노.
옛날 내가 새댁일 때, 울 큰딸이 백일도 안 됐을 때 열차관광이 있었어. 목포 유달산이며 영산강 하구언 돌어 오는 코스였는데 그 때 울 시부모님 모시고 내가 들춰 업고 가게 되였어. 시집 와서 첨 나들이여.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니. 동서도 그 때 같이 갔어. 동서 애 둘하고 울 딸, 그리고 시부모님하고. 근데 가기 전날 애 업고 마땅이 신고 갈 신발이 없어서 저녁답에 고서방 들어오길래
저녁을 먹을 동안에도 눈치만 보고있다가 나가길래 신발 하나 사게 돈 오천원만 좀 주세요 했더니 우리 스방이 눈을 휙 돌리며 날 쳐다보더니 인상을 파악 쓰고는 돈 오천원을 꺼내 있는 승질 다 부리며 마루에 휙 집어 던지는거라.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그 돈 오천원을 주워 들고는 닭똥같은 눈물이 뚜벅뚜벅 떨어져. 속으로는 악에 받친 별 말이 다 떠오르지 그래도 그 돈 주워서 연두색 운동화를 신고 그 담날 시부모님 모시고 목포 갔다 왔어. 그 때 꼴란 돈 오천원 던져주며 눙깔을 그렇게 희번덕거리던 스방 하는 짓이 내겐 진짜 충격이라. 그게 평생 상처로 남아. 그 연두색 운동화 그거 지금도 눈 감으면 모양이며 빛깔이 눈에 선해...그러니 말이야 돈 오천원에도 상처를 받는기 사람이여. 오늘 느그들 그렇게 싸웠다고 내일 길에서 만나면 모른척 할거야? 그러지 말고 지금 풀어. 둘 다 내가 서 있는 이 중립지역까지 와여..
아무리 말을 해도 둘 다 그냥 있다. 중립지역 버스 중간쯤에 나오기가 그렇게 힘들었는가 앞에 앉은 봉남이가 날 돌아보더니 "됐어...둘이 이야기할께" 하더니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버스에는 음악이 깔리고 뒤에서 뭔 이야기를 하는지 둘을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한다.
한참을 가다가 휴게소가 나왔고 우동이나 먹자며 내리는데 일차 우동 시켜서 앉아 있는 애들에게 갖다 주니 이차, 삼차에 걸쳐 그 인원이 다 휴게소 식당으로 내려왔다.
죽어도 나이트 안 가겠다는 영신이가 돈 삼만원을 내 놓으며 '내가 작년에는 단감을 샀더랬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못했네 이거 받아..."
울어서 눈이 띵띵 불은 영신이에게도 우동을 갖다 엥긴다. 라면 시킨 얘들거 국물 농갈아 묵으며 조금씩 풀린다. 맵고 뜨거운 것들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마음도 풀리는갑다.
황간까지 다 와서 짐을 내리고 헤어지면서는 다들 몸살나지 말라고 걱정들이 늘어졌다.
저렇게 생각하는 거뜨리 싸우긴 와 싸우노? ㅎㅎㅎ
그나저나 저들은 쉽게 화해를 하고 헤어지는데 나는 무엇이 아쉬워 연두색 운동화, 돈 오천원, 그 스방놈 눈빛...이럼씨롱 옛날에 맺힌것과 화해를 못하고 이리 씨부리고 있다냐? 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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